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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원 소장의 부모역할 조언⑨] 억지스런 공부와 자연스런 공부...?

 

짧은 질문이지만 부모로서의 고심이 생생합니다. 긴 답이지만 이론과 실재가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너무나 훌륭한 답 글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을 정리해봅니다.

삶과 앎의 문제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삶에서 앎의 욕구가 생기면 배움이 일어납니다. 너무도 유익한, 살아있는 배움이 주류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형태의 학교가 만들어지면서 삶에서 떨어져나간 앎이라는 것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삶에서 분리된 앎은 그 자체로는 매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교과과정이 만들어지고 평가제도가 도입되면서 상황은 역전됩니다. 앎을 통해 경쟁에서 이기게 되면 삶이 달라지는 일들이 벌어지면서 뒤죽박죽 엉망이 됩니다.

삶이 주인이고 앎은 하인이었는데 이제는 반대로 앎이 주인 행세를 합니다. 앎이 삶을 지배하면서 곤란하게 되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우선 삶의 문제로 인해 앎의 기회를 빼앗기거나 불리한 경우가 있습니다. 앎의 기회는 충분하지만 삶과 분리된 앎의 방식에 적응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배우면 되는데 앎만을 위해 따로 만들어진 교육과정과 평가방식에 적응하기가 어려운 사람들이 분명 존재합니다. 물론 삶에서 앎으로 주류가 바뀐 상황에서 그들은 적응하기가 어려운 사람들이 아니라 적응력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입니다.

경쟁심보다는 협동심이 강하면 주류 공부에 적응하기 어렵습니다. 의지가 약한 사람으로 분류되기 마련입니다. 교과공부보다는 체험학습에 강하면 주류 공부에 적응하기 어렵습니다. 산만하고 이해력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분류되기 마련입니다. 시험공부보다는 호기심 추구가 강하면 주류 공부에 적응하기 어렵습니다. 기억력이 떨어지거나 도전정신이 부족한 사람으로 분류되기 마련입니다.

이번 상담 글을 읽으면서 주류 공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비주류 학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읽기 싫은 책을 억지로 읽으면 산만하지만 자신의 삶에서 찾아낸 호기심을 발전시켜 줄 책을 만나면 놀라울 정도로 집중할 것이 분명합니다. 삶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고 어렵지 않은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면 분명 글쓰기에도 의욕을 보일 것이 확실합니다. 자신의 삶과는 전혀 상관없는 억지 글쓰기를 거부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자신의 삶과 쉽게 연결되지 않는 교육과정과 평가방식에 대한 거부감은 강하지만 자신의 삶을 존중하는 사람이 자기 삶에 필요한 앎을 위해 친절하게 안내하고 도움을 주면 분명 반길 것이 확실합니다. 주류인 앎을 중심에 두면 비주류인 자기주도적이지 못한 학습자로 분류되겠지만 비주류인 삶을 중심에 두면 자기주도학습자의 주류에 포함될 것이 분명합니다.

천상천하 내 아이 독존

기준에 따라 관점에 따라 극과 극이 될 수 있습니다. 우등생은 전반적으로 우등한 삶이 아니라 주류 교육에 적응하는 능력이 우등이라고 봐야 합니다. 열등생은 열등한 인생이 결코 아니지요. 주류 교육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주류에 대한 열등일 뿐 자기 삶에서는 분명 우등일 것입니다. 주류 교육은 온갖 수단을 총동원하여 우등과 열등을 구분합니다. 진정한 삶을 위한 진정한 앎이라는 교육 본질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에 비교육적인 분류와 선발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주류 교육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열등생이지만 개인의 존엄성과 잠재력에 주목하면 우등생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주류 교육의 시각이 아닌 결코 주류가 될 수 없는 소중한 개인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단어나 문장 이해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주류의 시각입니다. 부모님까지 그런 부정적인 시각에 사로잡힌다면 아이는 점점 어렵게 되지 않을까요?

주류 방식에 적응하기 어려우니 아이에게 맞는, 삶에서 진정한 앎이 일어날 수 있는, 아이만의 관심사를 발굴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주제를 다룬 책을 찾아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삶에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억지 글쓰기가 아니라 진정한 앎을 통해 얻은 그 무엇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교과과정에 관심이 없으면 교과서를 펼쳐보면서 다양한 소재와 주제, 인물을 탐색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적극적인 관심의 발굴을 통해 억지가 아닌 자연스럽게 교과공부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실력이나 성적을 비교하여 경쟁으로 내모는 분위기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더 이상 희생시키지 않으려면 자신만의 관심사를 자신만의 속도와 방법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잘 적응하지 못하는데 계속 강요하면 억지스런 공부가 되겠지요. 다른 방법, 그러니까 자연스런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하지만 어떤 방법이 아무리 효과적이라고 하더라도 아이 입장에서 잘 적응할 수 있는지, 어려움이 있다면 어떤 준비과정이 필요한지, 정말 아이 처지에서 살필 수 있어야 아이가 무능력 또는 무기력자로 낙인찍히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모든 배움, 진정한 앎의 중심에는 비교와 경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아이만의 삶이 있다는 사실,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