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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교육/행복한 진로학교(1~2기)

[행복한 진로학교] 7강 유이분 - "우리가 세 모녀를 응원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우리가 세 모녀를 응원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작년 한겨레 신문 인터뷰 때 만났던 유이분 선생님을 행복한 진로학교 마지막 강의에서 9개월 여 만에 만났습니다. 여느 때처럼 눈가의 잔주름을 만들며 환하게 웃으시는 얼굴로 삼각지 강의장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유이분 선생님은 (보리출판사에서 일하시다가 최근 작은책 출판사로 옮겨) 편집자로 일하시는 직장맘이기도 하십니다. 선생님은 강의 제목처럼 당당한 선언을 할 수 있는 당당한 엄마가 아니라, 스스로를 불량 엄마라고 소개하며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엄마기에 아이를 이렇게 키울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미리 답을 해주시려는 듯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야학을 통해 배움의 의미를 찾으며...


부모님이 힘든 상황에서 저를 낳으면서 3일동안 물만 먹으면서도 울지 않고 순하게 자라는 저를 보고 ‘이쁜아, 이쁜아’ 불러주셨습니다. 그러다 한자 이름을 찾다가 ‘(유)이분’이가 되었는데, 배우지 못한 집안에서 제대로 된 한자 뜻을 찾아주지 못하고 ‘저 가루’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이 들어서 보니 사람들이 저의 특이한 이름을 잘 기억해주니 좋더라구요. 크면서는 여러 가지 꿈을 가졌어요. 농구선수, 소설가, 사회사업가, 부흥전도사, 야학교사, 목사, 수녀 등이 되고 싶었어요. 교사가 되고 싶기도 했는데, 엄마가 학교로 찾아오는 아이들만 좋아하는 교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실망을 많이 하고 교사가 절대 되면 안되겠다 생각했죠... 그리고 초등학교 때도 야학교사가 되고 싶었는데, 이것과 관련해 글을 쓴 적도 있습니다.

 

<야학을 하고 싶어>라는 제목의 글인데, 배우지 못한 엄마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야학을 경험한 이야기였습니다. 창밖으로 빗소리가 들리고 조용한 목소리로 글을 낭독하는 유이분 선생님의 강의는 웬지 강의라기 보다는, 어린 시절 할머니 무릎위에서 듣는 옛날 이야기 같기도 하고 다정하고 따뜻했습니다.


저희 언니가 저랑 6살 차이가 났는데 대학생이 된 언니를 보면서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저렇게 밖에 대학생활을 못하나 실망스럽기도 했습니다. ‘내 딸이 대학에 대한 허상을 갖지 않기를 바랬다.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세상을 향해 짱돌을 던지기를 바랬다.’는 글도 쓴 적이 있습니다. 첫째 딸이 고등학교를 자퇴한다고 했을 때엔 대학을 경험해보지 못할 딸을 생각하면서 학생운동은 못해보겠다는 우스운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참 이상한 엄마죠? 

 

 

 


아이들 이야기보다, 한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떤 어린 시절을 보내고 어떤 어른으로 성장하게 되었는지, 그런 과정이 자녀 교육 철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본격적으로 두 딸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학교를 그만 둔 두 딸의 이야기


제 딸 이야기를 해보자면요. 17살 때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하고 싶은 일 배우면서 살고 있는 첫째 딸이 이제는 23살이구요, 15살 때 인도로 간 둘째 딸, 지금은 17살입니다. 저희 엄마가 저한테 그러죠. ‘너 대학 보내고 시집 잘 가 잘 살 줄 알았더니...’ ‘너는 공부시켜줬는데 왜 너네 딸은 공부안시키냐...’고요.


어느 날 제가 부모 교육을 하고 있는데 딸에게 문자가 왔어요. 평소에도 억압적인 학교 시스템을 힘들어하던 딸이 이번에는 정말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연락해왔습니다. “엄마 걱정 안하시게 제 인생 제가 책임질게요.”라고 말했던 딸을 굳게 믿었지만 딸은 1년 동안 잠만 잤습니다. 그냥 둘 수 없어 대안학교에도 보내보려고 했지만, 딸은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서도 잦은 지각으로 애를 태웠습니다. 그러다 다시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합니다. 대학 진학과 취업 준비로 바쁜 친구들 틈에서 딸은 방황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딸이 제 방으로 찾아와 울며 말했습니다. “어른이 되는게 너무 무서워요... 그동안 해놓은게 아무것도 없는데 제가 뭘 할 수 있겠어요.” 삶에 대한 처절한 고민이었습니다.


“아직 뭘 해야 할지 모를 땐 더 고민하고 기다리면 되. 그럼 언젠가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될거야.”라고 위로해주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딸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옷 만들기 재미에 빠진 딸은 동대문을 다니면서 봉제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명절에 친척들이 모이거나 모임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누구네 애는 어느 대학 갔다더라 하는 아이들 학교 얘기뿐이다. 아이도 나도 처음엔 스트레스였는데 이젠 이력이 났다. 그래서 딸과 내가 입을 맞췄다. "난 옷 만드는 일을 하는 게 꿈이에요. 내가 만든 옷을 많은 사람이 입고 있는 걸 보면 행복할 거 같아요." "내 딸은 봉제사가 꿈이야. 내 딸은 전태일의 후예야! 푸하하!" (오마이뉴스 기사 중에서)


2011년 5월에 “1년 동안 잠만... 딸, 이러려고 자퇴했니?”라는 제목으로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싣기도 했습니다. 오마이뉴스에 딸 이야기를 쓰고 이것이 각색되어 <TV 동화 행복한 세상>에 나온 적도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와 딸의 이야기를 듣고 다양한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오마이뉴스에서 13만명이 읽고 포털사이트에 실리면서 17만명이 읽었어요. 이래저래 합쳐서 30만명이 제 딸의 이야기를 읽었는데 이런 댓글들이 달렸습니다. 그나마 양호한 표현들만 골라봤어요...

 

이건 자유를 가장한 방치네요. 계획도 목표도 제대로 없이 자퇴하는데 동의해주다니 자녀 하고 싶은대로 하게 놔둬서 엄한 부모 역할은 피해갔으니 몸은 편안하셨을듯...


어이, 고슴도치 엄마.... 내가 좀 불편한 진실을 말해줄까? 당신의 그 사랑스러운 딸은 말이야 쉽게 말하자면 쓰레기야. 정규학업이 쓰레기 시간낭비란건 나도 알아. 그래서 용감하게 그걸 깨고나와서 스스로의 길을 찾는 애를 나는 존중해. 하지만 당신 딸은 그게 아니야. 단지 게으르고, 재능도 없고, 무기력하고, 생각도 없는... 그냥 쓰레기일 뿐이야.


그나마 여자라 다행입니다.여자는 어찌됐건 시집만 잘 가면 고생 끝 이니까. 하지만 시집도 좋은 대학나와야 잘 가는겁니다. 만약 남자 였다면 당신 인생은 종 친겁니다.

 

우리 사회의 무서운 생각들을 엿볼 수 있죠. 반대로, 위로를 건네주는 사람들 중에서는 이렇게도 말합니다. 봉제를 좋아하는 딸을 보고 사람들은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제 친구 딸은 미용사가 되고 싶다고 하는데 부모들은 헤어디자이너가 되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걱정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 역시 성공의 길은 한두가지로 정해놓고 있었습니다. 이런 다양한 반응들을 살펴보면서 한국 사회의 직업의 차이, 직업의 차별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댓글을 보면서 딸도 힘들었던지 저에게 항의합니다. “엄마, 나 1년 동안 잠만 잔거 아니잖아...” 제 나름의 은유였는데 포털 사이트의 댓글들로 인해 상처 받으면서 딸과 제가 댓글을 더 이상 보지 않기로 했습니다. ‘왜 남과 다름을 인정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무서운지...’ 가슴이 너무 아팠고, 이 사회가 지독하게 무서웠습니다. 우리 딸들은 자라면서 이런 차별을 받은 적이 없는데 포털사이트의 댓글들을 보면서 새삼 차별받고 우리 사회가 무섭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우리 모녀가 이 사회에서 잘 살 수 있을까... 고민되었습니다.

 

 



‘남과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가 나를 괴롭힌다


저는 학벌 사회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해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내가 그 힘을 길러주는게 아니라 아이 스스로 키워나가는 거 같아요.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딸이 택한 길을 존중하고 인정하고 믿어주는 것, 그리고 제가 바르고 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이 사회에 유익이 되게 살면 그걸 딸이 배우겠지, 나의 실천을 아이가 배우겠지... 그리고 한가지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게 사는 내 모습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아이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이죠. 그렇게 나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내 딸이 나를 보고 배우며 이 사회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극복하게 해줄 수 있는게 없어요.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기 쉽습니다.

“너부터 잘되고 남을 도와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어떤 교사가 학교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너희들 경쟁자가 줄어들었어."


저는 이런 사회에서 우리 딸들을 키우고 싶지 않습니다. 딸아이가 자퇴한다고 했을 때, 아이가 어떻게 지낼지 걱정이 되기도 해서 어느날 집회에 나갔다가 유명한 진보 교육자 한 분을 만나고는 딸 이야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그래요. “잘 관뒀어요. 학교에서 배울게 없어요. 검정고시 학원 좋은데 다녀요. 검정고시로도 좋은 대학 갈 수 있어요.” 이 대답에 너무 놀라고 실망했어요. 저의 고민은 제 딸들이 어떻게 자기 자신을 찾아가고 자기만의 진로를 찾아갈 것인가 하는 거였는데, 그분의 대답은 전혀 달랐습니다. 결국 학벌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우리 사회를 다시 확인한 겁니다. 봉제를 하든 무엇을 하든 아이 스스로 사회의 편견을 깨트려 나가며 행복할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강의를 들으며 어쩌면 사회가 주입하는 대로 사는 삶은 ‘이야기가 없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학교를 다녔다. 중학교, 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 학교를 다녔다. 대학교, 학교를 다녔다. 30대, 취직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50대, 은퇴했다. 나만의 삶의 이야기는 온데간데 없고 이지현이든 최지현이든 황지현이든 누구와도 비슷한 이야기로 점철된 나의 삶을 생각해보니... 갑자기 나는 왜 사는 것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인가란 질문이 떠오릅니다.


강의를 하던 중 종종 눈시울을 붉히는 유이분 선생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사실 그 삶이 얼마나 외롭고 지치기도 할까... 그리고 이 사회가 요구하는대로 살지 않으면서 겪는 장벽과 상처는 어떤 것일까... 마음 속에 숨겨둔 상처들이 보이는 것 같아 마음이 찡해져오기도 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한국 사회의 거대한 차별의 벽에 가로막혀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특히 두 딸을 부모의 성공의 발판으로 삼지 않고 바른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유이분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숭고한 마음이 들기까지 했습니다.



탯줄을 끊음과 동시에 너와 나는 남이다


아이가 힘들어도 그 힘듦을 내 힘듦으로 여기지 않고, 아이의 삶의 몫을 아이의 몫으로 고스란히 두려고 하는 노력을 보여주셨습니다.


아이들과 거리두기를 하려고 합니다. 아이가 노동자가 될 것이기 때문에 나의 노동하는 모습을 건강하게 보여주는 것.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나갈 세상의 변화를 위해 저 역시 세상의 변화를 위해 적은 돈이라도 후원을 합니다. 제가 생명보험, 암보험 같은게 하나도 없습니다. 대신 단체를 많이 후원하려고 합니다. 제 딸이 언젠가 힘들 때 누군가 내 딸을 도우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후원을 합니다.


“우리 딸들, 훨훨 자유롭게 자기 꿈 이루며 살면 좋겠어요...”


 

 

 


광진구에서 오신 수강생의 질문이기도 했는데요. 바쁘게 직장생활하는 중에 어떻게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나요? 라고 질문하셨습니다. 어떻게 두 딸과 친구 같은 관계를 유지하는지 궁금하던 차였습니다.


A.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으면 된다. 잔소리를 안하면 관계가 나빠질래야 나빠질수가 없다. 대화를 많이 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잔소리를 하지 않는게 중요합니다. 말을 많이 한다고 소통을 잘 하는 건 아닙니다. 저는 아이가 즐거워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수다 떨며 같이 놉니다. 제가 하는 잔소리는 딱 한가지 뿐입니다. ‘청소해라!’ 그런데 이 말도 일년에 한두번 정도 합니다.



 


세 모녀를 응원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작년 한겨레 신문 인터뷰에 동행하고 나서 유이분 선생님과 두 딸들 생각에 밤잠 이루지 못하며, 페이스북에 짧게 썼던 글을 다시 꺼내 읽어봅니다. 그때 그마음, 지금 그대로 세 모녀를 응원하고 싶습니다.


“가끔 드라마에 나오는 막장 자식들을 보면 그 뒤에는 항상 자식들을 대신해 막장사건을 수습해주는 부모들이 있다. 자신의 삶을 책임지지 않고 남에게 떠넘기기 시작할 때 그 인생의 막장이 시작된다.


여기, 부모로써 가장 용기있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한 분이 계신다. 우리나라에서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딸을 가만히(!) 두는 것은 웬만한 용기가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영어 연수나 스펙 관리 등의 목적이 아니라 그냥 인도에서 살고 싶다는 이유를 들이미는 중학생 딸을 조용히(!) 보내주는 것도 아무나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선택하신 분이 있다.


그의 이야기를 옆에서 직접 들으며, ‘와-와-’ 황홀한 얼굴로 감탄사만 내뱉었다. 나는 가끔 부모님에게 마음 속으로 '엄마, 내 인생이잖아. 내가 알아서 잘 할게요. 나 좀 믿어줘 봐봐~'라고 외칠 때가 있으니, 내가 우리 부모님에게 바래온 부모의 역할과 모습으로 살아가는 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두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헤어지기가 아쉬웠다.


유이분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는 2시간은 자식의 삶으로부터 떨어져나온 엄마의 마음에 짠해지기도 하고, 호락호락하지 않은 이 사회를 생각할 때 이 가족이 앞으로 부딪힐 편견과 장벽들에 조마조마해지기도 하는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무엇보다도 나는 그와 그의 두 딸에게 축복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부디 이 땅에서 가난하고 낮은 곳에 거할지라도 행복한 삶 사시길...!“(2013.11.12.정지현)


 

 


 

 

 

 



 

 

 

 

written by 정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