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2010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주관한 
"아깝다 학원비" 단행본 출판 기념 국민 수기 공모전에 장려상으로 당선된 글입니다. 



“엄마, 여름방학 때는 영어학원 쉴래요”


정미경 (37세, 주부, 경기 성남)


 

아이를 어떻게 하면 제대로 잘 키우는지에 관해 전혀 고민해 보지도 못한 채 스물 일곱 살 이라는 나이에 저는 첫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호기심 반, 걱정 반하며 조금씩 육아와 교육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해 본 적도 없고 주위에 이렇게 갓난아기를 키우는 걸 본 적도 없던 터라 나만 믿고 태어난 아기를 위해, 무엇이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 적어도 후회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글로벌시대에 강조되고 있는 영어는 엄마나 아빠가 영어전공자이거나 원어민이 아닌 이상 해 줄 수도, 아이의 영어교육을 맡아서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며 영어전문 원어민교사가 있는 학원으로 보내기에 바빴습니다.

엄마의 소유물 마냥 엄마가 세운 목표와 계획에 그저 아이들이 순종해 주길 바랐고, 학교와 학원에서 내 주는 숙제를 성실히 해가는 모범생이기를 강요했습니다.

책을 읽고 있던 아이의 손에서 책을 빼앗고, 학원 숙제를 먼저 하라며 다그쳤던 수많은 지난날들.

그러던 중, 2009년부터 현재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에서 사교육실태 조사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 당시 사교육 실태 조사서에 저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과목과 수강료를 적으며 ‘우리아이는 남달리 뛰어나니까 당연히 수준 높은 학원으로 보낼 수밖에 없는 거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희 초등학교가 사교육 없는 학교로 지정되면서 사교육을 받지 않는 아이들로 만들겠다고 2010년 1학기 내내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이하 전교직원, 그리고, 뜻있는 학부모 운영위원들께서 동서분주하던 때에 저는 조금 먼발치에서 불구경하듯 반신반의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여름 방학을 앞두고 전교생이 영어 Star Test를 보았고, 각자의 Reading Level을 받아서 스스로 레벨에 맞게 책을 선택하여 읽고, 퀴즈를 풀고, 포인트를 쌓으면 학교에서 시상을 하겠다는 소식을 들은 저희 집 아이들이 저에게 와서 조심스레 건의를 했습니다.

“엄마, 여름 방학 동안만 영어학원을 쉬고, 읽고 싶었던 영어책을 학교에 가서 실컷 읽으면 안 될까요? 포인트를 열심히 쌓아서, 잘하면 상도 받을 수 있고 .... ”

두 아이를 모두 영어 유치원을 3년씩이나 보내고, 또 이제껏 영어학원을 쉬지 않고 달려온 저에겐 큰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교육을 맹신하고 있는 어미 마음을 알고 있기나 한 듯, 아이들 뜻에 선뜻 따라주지 않는 저에게 다시 한번 초등학교 1학년인 딸아이가 물어봅니다.

“엄마, 영어를 잘 하려면 꼭 쉬지 않고 학원을 다녀야 하는 거예요? 방학동안만 이라도 영어학원을 쉬고 영어책만 많이 읽으면 안 되는 건가요?”

저는 아이가 기특하기에 앞서, 아이 뜻에 따라주지 않고 망설이고 있었던 제 자신이 너무나 창피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모국어로 된 한글 책은 강조하면서도, 영어를 잘 하길 바라면서 아이가 재미있게 읽고 있는 영어책은 빼앗고, 영어학원의 writing, grammar, reading practice 프린트 숙제를 빨리 하라고 다그치며 한 달에 100만원에 가까운 큰 돈을 영어학원으로 보내며, 생활비를 아껴 자녀를 위해 큰 뒷바라지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물론, 이렇게 영어책을 즐기며 읽게 되기까지 영어학원의 도움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매일 3시간씩 영어학원은 빠지면 큰 일이 날 것처럼, 학원숙제를 안 해 가면 내 아이만 뒤쳐질 것 같은 조바심으로, 아이들이 스스로 고른 영어책을 읽을 자유마저 빼앗아가며 거금을 들여 학원으로 내몰고 있었던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름은 아이들을 잘 키우고 뒷바라지를 열심히 한다고 자부하던 저였는데, 변화하고 있는 공립초등학교를 통해, 그리고 아이들을 통해 마음을 조금씩 바꿔나가기로 했습니다.

“그래, 이번 여름방학엔 영어학원을 쉬고 영어책에 푹 빠져 살아보자.”

영어책에 굶주려 있던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2010년 여름, 유난히도 폭염이 잦았던 방학 내내 초등학교에 있는 3층 영어도서관을 오르내리며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손으로 훔치는 아이들 눈엔 즐거움과 재미로 반짝거렸습니다.

엄마가 시켜서 하는 과제라면 이맛살을 찌푸리며 1시간을 버티기도 힘들어하던 아이들이, 방학 한 달 동안 작은아이는 260여권, 큰 아이는 120여권의 책을 학교 도서관에 와서 읽고, 퀴즈를 풀어서 포인트를 모아 각각 최우수상과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여름방학 내내 오전, 오후, 저녁 8시 마감시간까지 하루 평균 4~5시간을 거의 매일 오가며 스스로 책을 선택하여 읽고, 퀴즈 풀고, 또 차곡차곡 쌓여가는 포인트에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맛보는 성취감과 자존감!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상을 받아 온 날, 아이 둘을 꼭 안아주는데 저도 모르게 목이 메여오며 눈에선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아이들을 믿고 기다리며 키워주지 못했던 지난날에 대한 미안함과 저 스스로에 대한 반성의 눈물이었지요.

처음엔 한 달만 영어학원을 쉬고, 학교에 가서 영어책을 읽겠다며 영어학원을 계속 안 다니면 실력이 떨어 질까봐 불안해하던 아이들에겐 이제 두려움이 없어 보입니다.

비단 영어뿐만이 아니라, 이러한 자기주도적인 학습을 통해 스스로 즐기면서 학습하는 생활 습관이 몸에 베여 다른 과목으로도 확장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 작고 미약해 보였던 영어도서관에서 저는 스스로 영어거인을 만들어 나가며 하루하루 즐겁게 책을 읽는 아이들을 오늘도 만나고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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