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로 세월호 사건 90일째, 아직도 가족을 찾지 못한 분이 열한분이 계십니다. 50번째 1인 시위 나와 주신 '서애란' 회원님께서 들려주신 살아가는 이야기를 올려봅니다. 속히, 그리고 제발 원없이 이 일이 마무리 되기를 바랍니다. 

 


 

▶◀ 세월호 참사 관련 정부 대책 촉구 1인시위


" 이것밖에 할 게 없어서...

오랜 미국 생활을 마치고 2011년 귀국하고서.. 아이가 하나이고, 장성했지만 한국교육 현실이 참담하게 다가왔어요. 그래서 당장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찾아서 후원하고, 정책 캠페인 등 참여해왔어요. "


50일째 참여자 서애란 님, 참여 한마디



  뭐라도 하고 싶었는데 내가 팽목항에 매번 가 있을 수는 없고 이거라도 할수 있을거 같아서 나왔다. 언젠가 피해자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정말 내 이야기 같았다. "이번 세월호 사건으로 둘째딸 아이를 잃은 엄마인데.. 이 일이 내일이 아니라고 생각지 말라, 이것은 언젠가는 당신의 일이 될 것이다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약 10년의 미국(시카고 북부)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오니 나는 너무 좋았다(사람들은 왜 돌아 왔냐고 했지만). 그런데 어느날 자살한 아이의 보도를 보고 너무 놀라서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가, 기말고사를 못봐서 죽는 것을 보고 정말 이것은 아니다.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찾아서 후원하기 시작하고, 그때부터 여러 정책 캠페인에 참여해왔다. (안솔비)이 하나이고, 그 아이도 대학교 3학년이라 거의 다 키웠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자살하는 아이들이 있는 상황이 내 일이 아니라고 할 수가 없었다.

 


 미국에서 그림을 공부할 때, 마을에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서 그림을 그리는 어르신들 모임에 약 7년간 관계를 맺는 기회가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돌아가며 책도 한권씩 정하고, 함께 읽고, 모여서 책이야기와 삶의 이야기를 나누며 그림을 그리는 모임이었는데 늘 정말 건강한 모임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중의 한 할머니는 하루에 두시간 정도씩 맞벌이하는 부부를 도와 손주를 케어해 주셨는데, 그 시간에 아이들과 그림을 그리는 것이 참 인상적이었다. 이 외에 손주까지도 다 장성한 연세가 80세정도 되시는 분들이 마을의 도서관에서 정기적으로 마을 아이들에게 미술 수업을 해 주는 것을 보며, 정말 건강하고 행복한 공동체다라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SBS 방송에서 격대교육(할머니의 손자교육)” 관련한 특집을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많은 노인 층과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떠올리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한 공부가 미술이고 그림 그리는 거라 미국에서의 경험이 떠올라 그 세대를 잇는 시간을 그림 그리는 일로 연결하는 일이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그림그리기에 다가갈 수 있는 8주차 미술교육을 계발하려고 2년에 걸쳐 실험하며, 은평지역에서 열린사회시민연합은평시민회의 <행복한 수채화>를 통해 여러 이웃을 만나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그림그리기를 원해왔고, 원하고 있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다. 그리고 흥미로웠다. 사람들은 색의 경이로운 변화에 놀라고, 생각보다 쉽게 자신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 했다. 그리고 사소하지만 자신이 만든 작품을 나누면서 새로운 삶의 변화를 발견해 가는 것을 바라보는 일이 나에게도 무척 즐겁고 행복한 경험이 되고 있다.

 





 앞으로 그림을 생활 속에서 쉽게 다가갈수 있고, 그릴수 있고, 즐길수 있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바란다. 그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형태로 진행되기를 바라고 있다.




하루하루 소소한 일상을 소중히 여기며, 나와 내 자녀뿐만 아니라 이웃을 늘 염려하는 우리 평범한 시민들이, 이제 눈물을 그치고 자유롭게 일상생활에 전념할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만을 간절히 바랍니다.



나눔+  백성주  

 검토/수정: 온라인커뮤니케이션팀 이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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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봄 기운이 만연해지고,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싱그러운 5월이 시작될 터였다. 어느해와 별반 다를게 없었다면 말이다. 느닷없이,(물론 정말 느닷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광화문에서, 그것도 강남 저끝 이제 막 생겨난 마을 청계산 자락에서 광화문이라니... 일단, 나가서 만나봐야겠다는 생각말고는 그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었다.

 

 

그렇게 그녀가 처음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하는날, 마침 함께 가보고 싶다는 화원쌤(나눔+팀)과 같이 택시에 올라탔다. 마음이 조급해지고 시청이 가까와 오자, 그동안 애써 참아왔던 눈물이 왈칵하고 쏟아졌다. 하필 비바람이, 사정도 두지않고 피켓과 우비와 처음 시작하는 시위자의 몸을 마구 흔들어 댔다. 할 수 있겠냐고 거듭 다짐을 받아내려는듯. 그러나 이순신 동상과 광화문 광장은 한가롭고 한적할 따름이었다

“정말 옷을 잘 갖추어 입고 나가라”는 남편의 말처럼, 그리고 그녀가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가냘프지만 빈틈없이 타이트한 정장에 꼭 어울리는 하이힐을 갖추어 신었다. 앞으로(물론 지금까지도 허투로 살아온 적이 한번도 없지만) 삶이, 이 여인을, 그것도 꼬물꼬물 다섯아이의 엄마 노릇도 벅차기만한 이 여인을 어디로 몰아세울 것인가, 세월호 참사로 인해 1인 시위를 시작한 그 첫날 벌벌 떨리던 몸과 마음을 우동 국물로 녹이며, 그녀도 그랬겠지만 나는 더욱 앞날을 가늠할 수가 없어서 더 벌벌 떨었던 것 같다.

 

 

감신대 학생들이 세종대왕 동상을 기습적으로 점거하고, 나라의 수장더러 책임지라며 빠라를 뿌려대고, 삽시간에 경찰병력에, 강제연행에, 광화문은 그야먈로 사람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긴박한 정국이 되었다. 이 아수라장을 고스란히 영상에 담아내고 급박한 상황을 알리면서 그녀는 또 얼마나 놀랐을 것이며, 전원 강제연행된 이 상황에 그녀에게는 별일이 없는 것인지, 나는 직접 가서 확인을 해야만 했다. 아니나다를까 그 자리에 한결같이 서 있던 그 자리에, 그녀가 없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안 나왔을리는 없고, 혹 자리를 옮겼나, 광화문 광장을 샅샅이 뒤진다, 여기저기 배치된 경찰 병력. 만약 연행이 되었다면 어떻게 빼내올것인가 머리는 온통 복잡하고 초조하다. '그렇다면 단체의 이름으로 구출한다', 빠른 계산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지나간다. 여러번 통화를 시도하고서야 이제 곧 도착한다고, 오늘 좀 늦었다는 통화를 했다. 긴장이 풀려서 풀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하루에 네시간이나 되는 이 강행군을 언제까지 이어갈것인가 왕복 세시간을 포함하면 꼬박 일곱시간을.....

 

 

마침, 사무국에서 [세월호 참사, 우리는 무엇을 할것인가] 집담회가 열렸다. 황병구 선생님, 최영우대표님, 우리 회원님들은 뭔가 속시원한 답을 해주실까? 이 자리에 그녀도 네시간의 시위를 마치고 변함없이 빈틈없는 정장을 하고서 여러장의 피켓에, 의자에, 바리바리 짐을 들고서 온다. 버스 정류장까지 나가서 그 짐을 나누어 들고서는 우리 단체로서만 가능한 깊은 정을 나눈다. 오지숙, 그녀가 다시 성큼성큼 단체 가운데로 걸어온 것이다. 2년전, 그녀가 처음 단체에 왔을 때처럼.


하루이틀 쌓여가니, 흐릿하던 것들이 하나 둘씩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 좋아 보이는 할아버지는 종북빨갱이하며 자신의 오랜 공포를 날것 그대로 욱하고 쏟아 놓는다. 숨죽이며 있는듯 없는듯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던 아가씨며 아저씨들은 음료수를 슬며시 건네기도하고, 내 직장 근천데 하면서 짐짓 모르는척 점심시간에 안부를 살핀다. 어떤 이들은 그가 지금까지 받아오며 꾹꾹 참아왔던 욕을 비로소 뱉어내기도 한다.(나는 그들이 뱉어내는 욕이 그녀를 향한 것이 아님을, 실은 뱉어야 할 대상에게는 할 수 없었던 것을 비로소 그녀에게 뱉어낸 것임을 잊지않으려고 한다.)

 

 

완벽해보이지만, 그녀는 아직 1년 반동안 아버지와 화해를 하지 못했고, 강해 보이지만 남편에게 "참 쓸데 없는 짓 하더니 사서 고생하는구나"하는 마음을 읽게 될까봐 한점 한터럭까지도 이해받고 싶어서 끝까지 포기하지 못해 서운해하고, 충만해보이지만 어딘가 부족하다며 그 나머지 1%의 사랑을 갈구한다.

 

 

내 눈에는, 그녀는 한없이 가녀리고, 한없이 사랑스럽고, 한없이 아름답고, 한없이 부럽다

 


개인의 역량이 단체의 것이 되기도 하고, 단체의 역량이 개인의 것이 되기도 하면서 우리는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이번 여름은 그 어느해보다 품을 많이 팔아야 할 것이고, 그 어느해 보다 진이 많이 빠질 것이다. 그럴때마다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쉬지 않고 물을 것이고, 또 서로를 쉬지않고 격려하게 될 것이다.

 

 

 

소소한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더 듣고 싶으시다면 클릭^^

 


 

                    


                                      나눔+팀             백성주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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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의 얼굴 박복남. 얼굴 표정이 변화무쌍하다고 붙여진 그녀의 별명. 누구는 연극을 해서 그런 것이다 라고도 하고, 누구는 원래 성격이 그래서 그렇다고도 하고, 누구는 팬들을 위한 서비스라고도 하고. 이 때 누군가 조심스럽게 건넨 이 한마디.

 

사실은 그녀가 남몰래 성형 수술을 받아서 그런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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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

현재 수원생협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3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영유아부모 대상 강좌'의 사회를 맡아주셨던 박복남 선생님을 2014년 회원이야기에서 만나뵈었습니다. (과연 성형수술 의혹이 사실로 밝혀질지 지켜봐주세요^^)

 

박복남 선생님, 안녕하세요? 뵙게되어 반갑습니다.  

Q1. 2014년을 맞이하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분들에게 인사부탁드립니다 

 

지난 해 회원 분들 각자의 삶 속에서 그리고 사교육걱정없는 세상에서 열심히 헌신하며 쌓아올린 노력들이 올해 좋은 열매로 결실 맺는 한 해 되기를 기원합니다. 올해가 말의 해이지요? 저 어릴 적에 말괄량이 삐삐라는 인기있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제가 그 영향으로 말을 무척 좋아합니다. 제가 오랫동안 써온 카페 닉네임(하망)하늘망아지에서 온 것이지요. 아이들을 괴롭히는 나쁜 어른들을 혼내주고, 자기가 가진 모든 것으로 아이들을 웃게 했던 삐삐 생각이 문득 납니다.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을 더 많이 웃게 하는 올 한해 함께 만들어 가길 소망합니다.

 

 

Q2. 선생님,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인연을 맺은지도 이제 4년이 되어 가는건가요? 처음 만나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119월에 제가 활동하고 있는 아이쿱수원생협에서 김성천 선생님을 초청해 아깝다 학원비공개 강의를 들었습니다. 선생님 강의 내용 중 어린 제자의 죽음에 관련된 이야기, 자료영상으로 가져오신 e 채널 대한민국에서 초딩으로 산다는 것영상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학업부담으로 자살한 어느 초등학생의 유서에 완성되지 않은 문장으로 나도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날고 싶다라 적혀있었지요. 강의를 듣는 모두가 많이 울었습니다. 그저 기사 속 이야기로 그렇다더라에서 이건 아니잖아. 뭔가 해야할텐데하는 강한 마음의 울림이 들려왔습니다. 당시 뜻밖의 여행이라 적혀진 6기 등대지기학교 초청 엽서를 계속 가방 속에 넣고 다녔습니다. 반드시 등대지기 학교를 수강하리라는 결심을 지키고 싶었는데, 결국 분주한 일상에 파묻혀 그 여행은 떠나지 못했습니다. 1년 후에야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고, 재정후원과 지역모임 개척 또한 7기 등대지기 학교 때 이룰 수 있었습니다.

 

 

Q3. 최근 하고 있는 활동(생활) 말씀해 주세요.

 

최근 자본주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경제적 대안이라면서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났지요. 저는 현재 아이쿱수원생협에서 비상근이사로 활동 중입니다. 협동과 나눔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자는 생협의 이념과 비전을 실현할 수 있도록 조합원 활동을 기획하거나 조직운영을 하는 일을 합니다. 또한 조합원의 출자로 만들어진 협동조합사업체인 매장이 있는데, 이를 경영하기 위한 의사결정과, 조합원의 의견을 사업에 반영하는 일들을 주로 합니다. 거창해 보이지요? 결혼과 육아로 인해 여성의 경력이 단절되기 쉬운 것이 우리나라 현실이지요. 하지만 생협은 활동가의 90%가 기혼여성입니다. 생협 활동을 하면서 민주적인 의사결정과정도 경험하고, 생협의 정신이나 원칙들을 배워가며 스스로 성장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처음에 반신반의하던 배우자도 제 활동의 든든한 지지자가 되었습니다. 비전문가로 활동하다 보니, 협동조합과 그 경영에 대한 지식의 필요성을 느껴 현재 성공회대 협동조합경영학과 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 중입니다.

 

 

Q4. 비상근 이사시라고요?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훌륭한 일을 하고 계신것 같습니다^^ 생협과 하시는 일에 대해 좀 더 상세한 설명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생협은 소비자 생활협동조합(COOP)의 줄임말입니다.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운 비영리 조직입니다. 소비자의 소비행위는 선거를 하는 투표행위만큼 중요한 가치를 가집니다. 그래서 생협이 하는 일은 윤리적 소비입니다. 윤리적 소비는 나와 이웃과 지구를 살리는 소비이구요. 아이쿱(iCOOP)생협의 i에는 네가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바로 ’(i)라는 주체들이 생협의 이상(ideal)인 나눔과 협동을 통해 언제나 초심(innocence)을 잃지 않고, 끊임없는 혁신(innovation)을 통해 생협운동을 펼쳐간다는 뜻이지요. 그러다 보니 조합원의 요구와 관심사에 따라 식품, 농업, 교육, 의료, 노후, 여성, 에너지 주택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안을 마련해가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교육걱정없는 세상에서 당사자들이 주체가 되어 참여하고 운동하는 모습이 정말 많이 닮아 있지요? 전 교육위원회에서 교육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경쟁이 아닌 협동을 어떻게 체험할 수 있을까, 또 부모님들이 협력과 협동을 배워가며 그 관계 속에서 변화와 소통을 경험하는 참부모교육 등은 없을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알게 된 것이지요. 제가 사교육걱정없는 세상을 만나 얼마나 반갑고 속이 후련했을지 상상하실 수 있을 겁니다.

 

Q5. 자녀는 어떻게 되는지요? 자녀를 키우면서 위기(?) 또는 특별한 사건이 있었다면 말씀 부탁드려요.

아이는 올해 7살이 되는 딸아이 한명입니다. 몇 차례의 유산을 겪으며, 9년 만에 어렵게 얻었지요. 아이가 태중에 있을 때에는 또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아이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으며 그저 하루하루 존재에 감사하면서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건강하게 태어나고 보니, 눌러왔던 아이에 대한 제 욕심과 기대가 드러나 제 생각과 능력대로 아이의 모든 것을 해결하려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존재만으로 기뻐하던 그 기억을 회복하여 저도 아이도 편안합니다.

지난 2013년 저와 제 딸은 모녀가 함께 성형외과에서 같은 수술을 받는 특별한 일을 겪었습니다. 병원에서 유명해졌죠. 저는 2012년 겨울, 아이 썰매를 태워주다가 얼음판에 얼굴을 세게 부딪혀 이마 부분의 신경이 끊어질 만큼 눈썹 부위가 심하게 찢어져 두 차례 수술을 받았습니다. 부모님께서 놀라고 속상해하실까봐 말씀 못드리다가 지난 후에야 조심스레 말씀드렸는데, 당시 저의 어머니께서 하시는 첫 마디가 놀람대신 잘 했다. 감사하다라고 하셨습니다. 걱정을 들을 줄 알았는데, 의외의 말씀을 하셔서 여쭈었더니, 이웃분들 몇 분이 얼음판에서 넘어지셨는데, 뒤로 넘어지셔서 뇌진탕으로 돌아가신 분, 아직도 의식이 없으신 분이 계셨습니다. 뒤로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넘어진 것이 잘했고, 딸 못 볼 뻔 했는데, 살아있어 그만하길 오히려 감사했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곤 감사헌금을 내셨습니다. 그 말씀 한마디가 얼굴에 생긴 흉터로 사람들을 만날 때 조금은 위축되고 슬펐던 제 마음에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지난 연말에 제 딸아이는 친구 집에서 놀다가 마루바닥에 얼굴을 세게 부딪혔는데, 미간부터 눈 바로 옆까지 뼈가 드러날 정도로 찢어져 저와 같은 수술을 받았습니다. 얼굴의 중앙부분이라 눈에 띄는 곳에 상처가 나서, 아이가 성장하면서 흉터도 자라서 흉터는 계속 지켜봐야 한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곱게 키우고 싶었던 딸아이의 얼굴이라 마음이 많이 속상했지만 수술실로 들어가는 아이에게 저의 어머니의 말씀이 문득 떠 올라 잘했어. 신나게 놀다 다친 건데 뭘. 예쁜 눈을 다치지 않은 것만도 너무 감사하다라고 얘기해주었지요. 요즘 딸아이는 사람들의 걱정어린 시선에 저 놀다가 넘어져서 다친거에요. 눈도 안다치고 이도 괜찮아요 감사하지요활짝 웃으며 말합니다. 게다가 엄마가 얼굴 상처에 대한 치료 경험이 있어서 아이의 치료와 마음 공감하기에도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상처로 인해 감사의 대물림을 배운 특별한 사건이었지요.

(정말 위험천만한 일을 모녀가 함께 겪었는데, 그 상황 속에서 '감사하다'라고 고백하시는 부분이 참 인상 깊습니다. 아마도 박복남 선생님의 어머님의 마음이 박복남 선생님을 통해 아이에게까지 흘러 흘러 전해졌던 것 같습니다. 교육이란게 아마도 이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6. 지난 11영유아 부모 대상 교육사회를 보셨는데 혹시 영유아 부모님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영유아 부모 대상 교육 사회를 맡으면서, 현장강의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물론이거니와 온라인 방송을 수강하는 영유아 부모님들의 사연과 소감문 읽으면서 정말 많은 공감을 느끼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영유아 부모를 위한 이러한 강좌들이 얼마나 필요한지 새삼 알게 되었구요. 후속모임에서 귀한 강의 내용을 각자의 삶에 어떻게 적용하여 실천해 볼 것인지 고민하며 나누고 싶습니다. 모임을 한다고 해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 금방 변화가 생기고, 이루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급하지 않게, 내 아이에게 맞는 를 기다려주고, 아이가 닮고 싶어하는 부모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서로의 모습을 응원해줄 수 있는 자리이기를 바랍니다.

 

 

Q7. 2013년 가장 값진 수확이 있었다면 또는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요?

 

행복한 고통이었다고 표현하고 싶네요. 공주(공부하는 주부)의 생활을 통해서

가르치는 입장에서 배우는 입장이 되어 보았고, 늘 잎과 꽃피우는 일에만 집중하며 열심히 살아왔다면, 2013년에는 겸허하게 뿌리를 내리는 일에 힘을 쏟는 일의 참가치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 시간 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울러 육아와 함께 제게 주어진 다양한 역할들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 좋은 이웃 덕분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 가장 값진 수확이었습니다. 제 이웃은 본인도 육아로 인해 학업을 중단한 것이 많이 아쉬웠다면서, 선뜻 제 아이를 돌보아주시며 학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돌보아주시고, 힘들 때마다 응원해주셨지요. 혼자 크는 제 아이가 아이 셋인 그 집에서 동생들도 돌볼 줄 알게 되고, 언니와도 잘 놀아서 무척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희는 평생지기 인연이 되었습니다. 유치원과 생협에서도 도움 주신 좋은 이웃들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가족 외에 이웃과 관계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았던 작년이었네요.

 

Q8. 단체에서는 선생님의 표정이 너무 다양하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혹시 본인의 그 다양한 표정을 알고 있었는지, 다양한 표정이 가능한 이유 알 수 있을까요?

 

하하 ^^* 제 표정이 그렇게 다양한 가요? 칭찬이신거죠?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표정 사진 찍기가 어려우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습니다. 크든 작든 쉬지 않고 꾸준히 10년 이상 한 일을 꼽으라면 전 연극이라고 대답합니다. 벌써 20여년이 되었네요. 대학 극회 활동을 시작으로 천리안 동호회, 직장인 연극, 교회 연극, 초등학교에서 영어뮤지컬을 가르치기도 하였습니다. 현재는 제가 살고 있는 수원에서 매년 열리고 있는 수원화성국제연극제의 시민배우로 활동 중입니다.

연극의 좋은 점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저는 무엇보다 연극을 만드는 과정을 더 좋아합니다. 힘들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느낌과 몰입할 때의 희열감,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하모니가 정말 좋습니다. 아마도 제 표정이 그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요?

 

Q9. 마지막으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해주세요.

그동안 사교육 걱정없는세상의 캠페인과 행사에 참여하면서, 사무실을 오가며 가장 많이 느낀 것이 상근자님들의 아낌없는 배려와 수고에 대한 고마움입니다. 오늘은 상근자님들께 무언가 도움이 되어드리고 가야지 하면서 다짐하고 오지만, 늘 돌아가는 길에는 더 많은 에너지를 충전하고 가게 되었습니다. 밤이 깊을 수록 별이 더욱 빛나듯이 지금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꿈꾸고, 만들어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헌신과 희망들이 고통받는 아이들에게 빛이 되어 줄거라 굳게 믿습니다.

사교육걱정없는 세상을 볼 때마다 불가능한 일을 꿈꾸는 리얼리스트’(체 게바라)라는 말이 떠오른다는 한 등대원이 생각납니다. 사교육걱정없는 세상에 참여하는 모두가 비전가가 되어 서로의 디딤돌이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비전가는 말은 적고 행동은 많이 한다.

반면 몽상가는 말은 많으나 행동은 적다.

비전가는 자기 내면의 확신으로부터 힘을 얻는다.

반면, 몽상가는 외부환경에서 힘을 찾는다.

비전가는 문제가 생겨도 계속 전진한다.

반면, 몽상가는 가는 길이 힘들면 그만둔다. - 존 맥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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