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분의 강의를 듣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님들의 강의에 몰입하기에는 내 삶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서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60여억 종의 삶이 있다.

나에게는 나의 삶이 있다.

탁월한 재능과 용기와 실천력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앞서 걷고 계시는 님들이 계시며

또 선견자의 지혜를 듣고 따르며 삶으로 살아낼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는 생각을 갖고서야

마음의 평안을 다시 찾고 있다.

'어떤 직업을 택하든, 어떤 지위를 유지하든, 모든 사람이 하늘로부터 받아, 이땅에서 누릴 행복의 총량은 같다.'는 말씀도

힘이 되었다.

우월감도, 열등감도 우리와 함께 하도록 허용해서는 안된다.

그 때문에 인류가 얼마나 큰 아픔을 겪어왔던가!

지금까지 내게 주어졌던 삶에 감사하며

더 가치 있는 삶으로의 부름에 반응하며 한 걸음씩 나아갈 뿐이다.

인생은 곡선이고, 인생에는 점프가 없다고 하셨지.

사소한 것도 귀하게 여기고 감사하며 키워 가는 삶을 위해 기도하고 싶다.

아침마다 어려운 문제를 앞두고 기도하며 얻은 지혜를 따라 길을 열어나간 송인수 선생님의 삶의 발걸음과

그 삶에 동감하는 우리들의 발걸음이 모여

우리 민족의 앞길을 새롭게 열어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새록새록 솟아올라 가슴을 채우는 시간이었다.

2011년에는 좋은 일자리에 대한 천박하고 폭력적인 생각들을 내려놓고 진정 가치있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용기있게 일어설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헛된 명예가 아닌

헛된 욕망을 채우기 위함이 아닌

진정한 영광이 무엇일지를 찾고 구하며 행하는

2011년을 위하여....

많은 것을 생각하며

후회와 반성

좌절과 아픔을 맛보며

용기와 희망을 얻게 해주신

여덟 분 강사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앞서 만들어가시는 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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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1일 저녁, 삼각지 사무실.
오늘도 '메라'양은 진로학교가 시작되는 세미나실 뒤편을 차지하고
누군가에게 시선을 조준하고 있네요.
누굴..까요?
문제가 너무 쉬웠나요?^^;
진로학교 8강의 강사,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송인수 공동대표님입니다.
이날 송인수 대표님은 진로학교의 사회자가 아닌
자신의 진로이야기와 7인의 강사분들의 진로이야기를 총정리해주시는
강사로 자리하셨습니다.

송인수 대표님의 삶의 궤적 뿐 아니라
그동안의 진로학교 강의를 종합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진로학교의 마지막 강의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셨네요. 
치킨과 맥주&콜라로 뒤풀이도 하고 ㅎㅎ
자녀들에게 부모로써 진로지도에 대한 최소한의 울타리를
어떻게 쳐주어야 할까 이야기도 나누었답니다.
진로학교 현장강의가 끝난 기념으로
진로학교를 만들어가는 손길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사무실 식구들이 기본적인 업무들을 하고 있지만
목요일마다 사무실에 일찍 와서 강의스케치를 작성해주시고
강의실 세팅을 도와주신 자원봉사자 이신우군!
(윤대표님 옆의 훤칠한 청년되겠습니다ㅋ)
내년 1월에 긴긴 여행을 계획중이라는데,
더 훌쩍 큰 모습으로 돌아올 것을 기대할게요.
 
진로학교 현장강의는 끝이 났지만
아직 소감문 제출과 온라인 강의는 끝나지 않았으니
수강하시는 선생님들, 조금만 더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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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1일, 두 달간 성실하게 달려온 진로학교의 마지막 시간이다. 우리 아이들을 위한 진로의 고민으로 시작해서 우리들의 고민으로 이어져 더욱 깊이 있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 마지막을 장식할 송인수 대표님의 강의를 두고 윤지희 대표님은 지금까지 강의하셨던 다른 분들에 못지않게 본인 삶의 풍성한 이야기들과 지난 7번의 강의를 정리, 분석하는 훌륭한 강의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앞서 강의했던 대부분의 분들은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쉽지 않은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떤 이는 그 시기 속에서 책을 벗 삼아 지내기도 했고, 어떤 이는 내면의 고뇌와 아픔을 겪기도 했다. 대표님 역시 가난하고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아버지가 없는 어두운 가족사진으로 그 분위기를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가난으로 인해 어릴 적부터 가사를 감당하기도 해야 했고, 어떻게 해야 가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부지런히 삶을 살기도 했다. 중학교 때가 되어서는 어머니와 닭 장사를 하면서 집안을 꾸려갔는데 그 때 직접 살생한 닭이 대략 20십만 마리가 될 정도로 닭 잡는데 전문가였다. 그 이후 대표님이 가난을 탈출하기 위해 선택한 다른 방법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었다.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나보다. 어머니와 함께하던 닭 장사와 학업을 병행하면서도 그 당시 공부를 잘해야 갈 수 있었던, 2강 강사이신 주상완 사장님이 다니셨던 금오공고를 지원했다. 학비면제, 기숙사 제공, 취업이 보장되는 금오공고는 대표님께는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불행은 쉽게 떠나질 않았다. 성적은 문제가 아니었지만 6개월 차이로 나이제한에 걸려서 입학이 좌절되었다. 그 박탈감에 박정희 대통령에게 구구절절한 편지를 직접 보내기도 했었다. 결과는 국사에 바쁜 나랏님을 귀찮게 한 죄로 한달 동안 반성문을 썼다는 것이다. 그 이후 육군사관학교를 지원할 때도, ROTC를 지원할 때도 같은 이유로 대표님이 계획하고 원했던 길은 번번이 막혀버렸다. 육군사관학교를 지원할 때는 억울함에 못 이겨 재판을 청구하기도 했는데 역시 패소했다. 이번에는 한 판사에게 또 다시 구구절절한 편지를 보내 선처를 부탁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우리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정은 딱하나 딱히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후 찾게 된 새로운 길은 지금의 대표님을 만들어준 작은 시작인 사범대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선생님이 될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외무고시나 고시공부 등 다른 길들을 찾고 있었다. 그 당시 교사의 사회적 지위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지 않았다. 하루빨리 가난에서 탈출하고자 했던 대표님에게 선생이라는 직업은 매력적일 수 없었던 것이다. 더불어 한 친구로부터 “잘난 놈들이 다들 교사하지 않으면 어떤 놈들이 교사하냐!”는 울림이 있는 외침을 들으면서도 선생은 끝까지 외면하고 싶었다. 또한 그 당시 대표님은 시대의 문제에 대해 대답하지 못하고 엉거주춤하며 살아가고 있는 본인의 모습을 보며 많은 고민들을 하게 되었다. 이동수 학생의 분신사건을 보며, 한 선배가 본인의 삶이 다 타도록 사회를 위해 살겠노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후 87년 대선 감시운동을 하는 등 대표님 나름의 사회를 향한 몸부림을 치게 되었다. 그러면서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은 생각은 이 사회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끈기를 가지고 문제를 풀어내고자 함이었다. 지금 주변을 보면 그 당시 함께 운동을 했던 동기들은 모두 다른 분야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고,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고 현재는 대표님만이 자리를 지키며 사회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개인적인 내면의 고뇌와 역경들을 거치며 대표님의 마음에는 세상을 이롭게 하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안정된 삶의 자리를 추구하고 싶은 대표님의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교사로서의 삶은 여전히 막다른 골목에서 할 수 없이 선택한 길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선생님의 길. 기대하지 않았던 기쁨과 보람은 있었고 나름 만족할 수 있는 생활이었지만, 아이들과의 만남으로 인한 행복감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과 낯설고 불편한 감정이 존재했다. 지속된 개인적인 내면의 고뇌와 끊임없는 물음을 통해 대표님은 그 갈증들을 풀어갔고, 개인적인 결심들을 하면서 직업에 대한 본인의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직업에 대한 상대적인 만족과, 절대적인 만족 사이에서 본인의 해답을 찾아갔으며,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어떤 지위를 유지하든 모든 사람이 누릴 행복의 총량은 같을 것이라는 스스로의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또한 더 나아가 직업의 만족은 부르심 또는 개인의 소명으로서의 직업을 선택하면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는 부산물이며, 사회 속에서 개인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묵묵히 역할들을 감당하는 것이 삶의 행복과 만족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내면의 고민과 갈등을 해결해 가면서 보다 구체적인 사회적 변화를 위해 나서게 되었다. 좋은 교사모임을 하면서 교육과 교사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했으며, 일부분이 아닌 전체 교사들을 어떻게 바꿀지 고민하게 되었다. 육아 휴직, 병간호 휴직까지 하면서 교사운동에 헌신했지만 새로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교사로서 운동을 할 수 있는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운동에 나를 맞출 것인지, 나의 한계에 운동을 가둘 것인지?” 고민했고 결국엔 퇴직을 하게 되면서 보다 적극적이고 폭 넓은 활동을 했다. 때로는 교원평가제 등의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들을 다루며 괴로운 일들을 겪기도 했지만, 운동을 포기할 수 없었다. “지나온 10년의 삶을, 그 이전에 30년의 삶과 바꾸지 않겠다.”고 할 정도로 그 시기는 대표님에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시기였다.

박원순 변호사님의 직업 선택 10계명 중 남들이 말리는 곳이면 확실하다고 했던가? 지금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운동을 시작하면서 주변의 우려와 반대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가지 말라고 했던 그 길에서 작지 않은 변화들이 있었다. 등대지기 학교를 하면서 많은 사교육걱정을 이기는 일꾼을 만들어내고 영어 사교육 포럼, 외고입시 등 각종 토론회를 통해서 해결책들을 제시하며 소책자뿐 아니라 단행본을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작년 한 해 동안 MBC 9시 뉴스 인터뷰관련 사회 전 영역에서 가장 노출이 많았던 단체가 바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이었다고 한다. 각종 신문 사설에서도 우리 단체를 언급하기도 했고, 정부는 이 운동으로부터 많은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다. 그런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온다! 온다! 온다!” 외치던 그 구호가 이제는 마냥 현실감각 없는 외침이 아니다. 지금도 내년을 준비하면서 지난 활동을 되돌아보며 단체의 방향성을 다시금 점검하고 내년의 사업들과 일정들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 할 일이 많다.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이 운동의 윤활유가 되리라 생각한다.

대표님은 더불어 지난 강의들을 정리, 분석하며 자녀교육 지침과 좋은 일자리의 기준에 대해서 이야기 하셨다. 지난 8강의 진로학교들을 천천히 기억하고 정리하면서 다시금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좋겠다. 우리아이의 진로, 아니 우리아이의 삶과 그리고 나의 삶을, 아스팔트 도로처럼 잘 뻗은 직선이 아니어도 좋다. 우리 삶은 곡선이다. 그리고 그 곡선은 더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삶이 될 수 있다. 지난 8강의 강사분들이 그 증인이 아닐까?


"아직은 무엇이든 새롭게 도전할 용기와 실패할 각오도 가진,
아는 것보다 배울 것이 더 많은, 경험한 것보다 경험할 것이 더 많은,
꿈 많은 젊은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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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마음도 움츠러드는 계절이지만
오늘은 강사님이신 도움과 나눔 최영우 대표님께
어떤 삶의 이야기, 진로의 이야기를 들을까 기대하며
변함없이 목요일 저녁, 삼각지 사무실로 향하신 진로학교 수강생님들.
이들의 발걸음과 함께 진로학교 7강도 시작합니다.^^

'꿈은 나에게 장난감이자 학습도구였다' 라고 비유하시며
교육행정가, 토지개혁가, 선교사 등등
자신의 진로를 찾기 위해 고뇌하던 시절에 대해 회상하셨지만,
그 어떤 꿈앞에서도 열정을 다해 준비하셨기에
지금의 대표님이 있으신 거 같아요.
직업의 수명이 짧아지고 기술과 정보의 가치가 자주 변하기 때문에
근본적 사고의 힘이 중요하다고 하신 말씀,
수강생님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용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저는 '아악 공부하자 공부!' 라고 속으로 외쳤다는 ^^;)
진로학교는 이제 마지막 강의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마지막 강의와 함께, 소감문을 통한 나눔의 확장과 함께,
의미있는 연말 되시기를.
진로학교가 자신을 돌아보는 귀한 시간이었다고
말씀해주시는 선생님들 덕분에
저희의 연말은 행복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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깁스를 풀고 오랜만에 강의실에서 다같이 강의를 들었더니 괜시리 기분이 더 좋았던 거 같습니다.

^^ 별거 아닌 이야기에 소리내 웃으면서 들었어요~~

진로학교에 오시는 강사님들은 어찌 이렇게 다들 인상도 좋으시고 목소리도 좋으신지..ㅋㅋ

2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느낄만큼 재미있게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어요~

최영우 대표님의 강의 중에서 제일 좋았던 두가지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하나는 꿈은 장난감이자 학습도구였다는 것,

또 하나는 직업적인 소명의 함정에 빠지지 말라는 것 이었어요.

위기와 변화가 많은 현대사회에서 수많은 직업, 수많은 직장을 가지게 될텐데

그것에 적응하고 새로운 능력을 키울 수 있는 학습능력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것은

대학때부터 멘토로부터 수없이 들어오던 말이었습니다.

그보다 꿈은 장난감이자 학습도구였다는 것이 새로웠는데

최영우 대표님의 학창시절과 직업을 바꿔오신 이야기를 들어보니

과연 이분은 자신의 꿈에 정직하게 반응하면서 성실하게 준비해가셨구나 싶었어요.

생각해보면 저도 어릴적부터 지금까지 꿈은 여러가지였는데,

최영우 대표님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저는 꿈은 그냥 내 상상속의 그림일 뿐이었지

실제 내 생활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성실하게 준비해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교육행정학자, 선교사, 토지개혁,,, 여러가지 꿈을 꾸고

꿈을 향해 자신을 준비시켜간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이 분의 폭넓은 지식과 경험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직업을 가지게 될 수 밖에 없는 지금,

진로, 꿈의 실현은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과 같겠구나,,, 생각합니다.

때로는 일관성있는 길이 아닌 것 같고,

새로운 길을 가는 것 같지만,

징검다리를 한 걸음 한 걸음 건너다가 뒤돌아보면

미래를 위해 준비되는 현재의 삶,

과거로부터 준비되어져 선택되어진 현재의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될 것 같습니다....

허비되어 버려지는 삶이란 없고,

100% 만족되지 않는 직업이나 직장이라 하더라도

충실히 살아가다 보면 앞의 징검다리로 옮겨갈 준비가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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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6일, 총 8주로 진행된 진로학교의 7강이 열리는 날이다. 8강은 본 단체의 송인수 대표님이 강의를 하시기 때문에 마지막 외부강사님의 강의인 셈이다. 이번 진로학교 2기의 강사섭외는 탁월했다. 무엇보다 모든 분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와 더불어 새로운 지식과 분야에 대해 알게 되었고, 세상을 읽는 통찰력을 바탕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지혜 또한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오늘 최영우 대표님의 강의 또한 기대되는 시간이었다.

"불안하지 만은 않은 나그네" 대표님은 본인을 이와 같이 표현했다. 자신의 삶을 나그네의 삶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대표님은 먼저 몇 개의 문장들로 자신을 설명했다. 첫째로 한국최초, 최대의 비영리단체 모금전략컨설팅 회사의 대표로 2010년말 현재 약 80여명의 직원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이 회사의 컨설팅 파트너로는 서울대, 세브란스병원 등이 있으며 내년에는 100명이 넘는 규모를 예상하고 있을 정도로 안정된 운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취미로 시작한 목공은 직접 침대, 의자, 등을 만들 정도로 조예가 깊다. 전공자가 아님에도 그리스어, 히브리어에 깊이 매료되어 관련 책들을 수없이 읽었고 더불어 현상학과 해석학에도 관심이 많다. 더불어 우리단체의 회원분들과 다름없이 두 아이를 둔 고민 많은 아빠이다.


“꿈은 나에게 ‘장난감’ 그리고 학습도구였다.” 는 대표님은 유년시절부터 한 가지에 관심을 가지고 매력을 느낄 때마다 그와 관련된 직업을 꿈꾸며 성장해왔다. 또한 그 순간순간 자기 스스로에게 진실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페스탈로찌의 『은자의 황혼』을 읽고서 교육행정 학자의 꿈을 꾸었고, 수능을 보고 진학여부로 고민할 때 『달과 6펜스』라는 책의 영향을 받아서 교육학과에서 무역학과로 진로를 변경했다. 대학교 때는 그 당시 가업을 일으킬 수 있다는 ‘CPA’ 공부를 했었다. 그 후에도 ‘선교사’의 꿈과 동기를 갖기도 했고, 후에는 토지개혁의 꿈을 꾸면서 관련된 책을 읽으며 꿈을 키우기도 했다. 대표님은 고민이 되었다. 왜 이렇게 나의 삶은 하나에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방황할까 생각하다가 느낀 것은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있어서는 장난감이자 학습도구라고 생각한 것이다. 어린 시절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규칙도, 개념도 쉽게 이해하고 배우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꿈이 심겨진다는 것은 그것으로 미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력한 학습의 에너지를 확보시켜주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했다. 꿈은 굉장히 달라질 수 있고, 실제로 달라진다. 그것이 진실한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대표님은 지난 시간 여러 분야에 들였던 노력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지금 삶의 하나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확신했다. 더욱이 대표님은 한 가지에 몰두할 때마다 보통 사람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몰입하여 연구하고 공부했다.

이 후 대학원, 군 복무의 일환으로 산업연구원(KEIT)에서 일하면서 자신의 직업을 찾아가기 시작했는데 통일논단 신문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대표님의 첫 직업인 해비타트와의 연은 사랑의 집짓기를 위해 국내에서 활동하던 외국인들의 통역을 하게 된 계기로 시작되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일이 재미있게 느껴지던 차에 본격적으로 권유를 받았다. 건교부 등록도 하고, 사업계획을 만들고, 땅도 확보하면서 본격적으로 모금을 시작했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집을 지으며 일했던 시간들은 실제로 대표님에게 즐거운 일이었다. 비록 사회의 주류로 살아가는 친구들과는 전혀 다른 삶이었지만 후회하지 않았고 이제는 나의 삶이 이것으로 결정됐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처음 시작하였고, 모든 것을 혼자서 다 해야 했기 때문에 집을 짓는 일 외에도 다양한 경험을 했다. 해외 투자자들과 협상을 하면서 본인이 협상력에 소질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청와대 관계자로부터 때로는 사채업자까지 상대하는 등 사람들을 만나는 폭이 넓었다. 월급은 가족들을 부양하기에 터무니없이 적었지만, 약사인 아내가 있어서 생활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꿈을 장난감 삼아서 지내던 대표님을 생각하면 해비타트가 대표님의 평생직장이 될 수 없었음은 자명했다. 해비타트를 그만두고 지금의 ‘(주)도움과 나눔’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내년 5월이면 만 10년이 되는 지금의 회사는 스스로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 했던 해비타트와는 달리 설립되어 있는 기업이었지만 시작은 해비타트 시절 못지않게 힘들었다. 특히 처음 5년간은 비즈니스 모델을 정립하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고, 몇 번씩 사무실을 옮겨가며 힘들게 운영해왔다. 3개월간 직원들의 월급을 주지 못한 적도 있었고, 일거리가 없어서 인터넷만 뒤적이던 시절도 있었다. 그럼에도 사업을 계속할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다. 가출청소년들을 위한 ‘들꽃피는 마을’ 이란 곳에서 가출청소년들과 2주간 워크샵을 하고 컨설팅을 하면서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사업을 계속해야 함을 굳게 다짐했다. 그 청소년들이 참 고마웠다. 사업은 점차 안정되었고 비즈니스 모델도 정착이 되어가면서 유명한 고객들을 컨설팅하면서 인지도와 매출도 점점 늘어갔다. 내년도 새로운 사업과 함께 전망이 밝다.


“유동적 사회. 눈 앞의 인기는 단명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표님은 본인의 진로이야기 후에 더욱 귀중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셨다. 고대언어, 해석학, 현상학을 연구하며 철학, 인문학에 조예가 깊어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 깊이가 있고 통찰력이 있는 대표님은 우리들에게 물음을 던져주었다. 지금의 지식, 창의 기반의 우리사회는 매우 유동적이다. 직업의 수명이 짧아지고 기술과 정보의 가치는 자주 변한다. 이러한 시대에서 중요한 것은 개개인이 근본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과, 끊임없이 학습할 수 있으며, 근본적 정보에 접근하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회사 직원들은 대표님이 경영, 처세술 관련 책이 아닌 현상학, 해석학 책을 연구하고 고대언어에 심취하는 것을 걱정하지만, 정작 대표님에게는 그러한 것들이 오히려 더 사회를 읽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좋은 도구인 셈이다. 그러면서 강의 초반에 이야기 한 내용은 인문학적, 철학적 깊이가 없는 기술자, 경영자들이 30~40대까지는 승승장구 할 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힘을 받고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철학, 사학, 인문학적인 지식과 통찰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더불어 지금의 시대에서 직업으로서의 소명(calling)은 때로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이다. 사회의 유동성으로 인해 우리는 수많은 직업을 가져야 할 가능성이 많다. 대표님의 표현으로 나그네의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 아이의 진로는 물론 우리의 삶이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면서 뒤돌아보면 어느새 그 삶들이 모두 의미 있는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어 있으리라 생각한다.

질의 응답시간을 통해 기술, 기능과 철학, 인문학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하셨다. “기술과 기능이 갇혀있으면 안 된다. 기술과 기능이 항상 새로워 질 수 있어야 한다. 어떤 배경에서 사용되고 어떤 상황에서 변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어야 한다. 기술과 기능이 표현되는 장에서는 굉장히 다양한 이해가 있어야 창의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모든 것에 대해 수용능력을 가지고 한 분야에서 현실적으로 깊이 들어가는 사람이 앞으로의 인재상이 될 것이다.” 또한 아시아의 향후 지식판도, 쉐마교육의 시사점, Trivium의 삼학제를 이야기 하시며 우리들에게 깊은 시사점과 생각해 볼 점들을 주시면서 강의를 마무리 하셨다.




"아직은 무엇이든 새롭게 도전할 용기와 실패할 각오도 가진,
아는 것보다 배울 것이 더 많은, 경험한 것보다 경험할 것이 더 많은,
꿈 많은 젊은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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