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년 교무실에 진풍경이 벌어졌다. 몇 명 아이들이 우르르 교무실로 찾아와서 새로운 반편성에 대해 불만을 토하는 게 아닌가.

우리 학교는 4년 전부터 수학과 수준별 수업을 하고 있는데, 학년이 바뀌어 새로운 반을 발표하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눈높이 수업’이라고 이름을 붙여서 2개 학급 70명의 학생을 창의반(상) 20명, 탐구반(중) 35명, 원리반(하) 15명 정도로 3개 학급으로 편성해 운영하고 있는데, 원리반(하)에서 탐구반(중)으로 올라간 아이들이 그냥 원리반에 있게 해 달라고 떼를 쓰는 것이었다. 성적이 향상됐으니 원리반에서 탐구반으로 올라간 것을 당연히 기뻐해야 할 아이들이 오히려 원리반에 그대로 남겠다니 뜻밖인 것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정년을 1년 앞둔 원리반 담당 선생님은 난감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설득하고 있었다.

집단 판단 장애 보이는 어른들

3월 6일, 신입생들이 일제고사를 보았다. 새로움에 대한 기대와 불안감이 겹치는 꼬맹이들이 입학하자마자 시험을 본다니 ‘이런 게 중학교인가 보다’ 할 것이다. 10년 만에 부활되는 이 시험이 앞으로 어떻게 작동을 하고, 어떤 각박한 현실을 만들어 갈지 아이들이 어찌 알겠는가. 그러나 어른들은 다 안다. 그래서 결과가 어떻게 나올 것인가에 대해 긴장을 하는 것이다. 학부모도, 교사도, 학교도 교육청도, 교육부까지도 그 결과를 날카롭게 지켜볼 것이다. 이제 일제고사의 결과물은 학교 현장을 더욱 옥죄는 훌륭한 근거가 될 것이다. 학부모와 교육청은 학교를, 학교의 교장은 교사들을, 교사들의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쏟아질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어른들은 ‘교육’ 앞에서는 ‘집단 판단 장애’를 일으키는 듯하다.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얼마나 학대하고 있는지에 대해 도무지 무감각하다. 새로 들어선 정부가 앞장서서 경쟁을 부추기니 전국의 교육감 나리들은 신바람이 나 있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의 핵심은 자율과 경쟁이라 한다. 자율, 얼마나 좋은 말인가. 그런데 묻는다. 누구의 자율인가? 학생의 자율인가? 아니다. 교사의 자율인가? 천만에 말씀이다. 학생과 교사에게 자율이 주어졌다면 그것은 마음껏 경쟁하라는 그런 자율뿐이리라. 피 터지게 경쟁할 수 있는 자율, 우리 새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준 선물이다.

앞으로 자율은 빛나리라. 학교 현장에서 관리자들은 아이들의 성적을 높이기 위해서 경쟁적으로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할 것인데, 그 다양함과 기발함이 자율로 포장될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학교의 모든 정보가 공개되면 앞으로 아이들의 성적에 학교의 운명을 다 걸어야 한다. 그러자니 다른 학교보다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공부의 양을 늘려야 할 것이고, 공부하는 시간을 늘려야 할 것이다. 24시간으로는 터무니없이 모자라니까, 우선 아이들이 잠을 덜 자게 하는 방안들이 강구될 것이다. 0교시로는 모자라니 등교 시간을 더욱 앞당길 것이다. 이제는 고등학교만 아니라 중학교에도 ‘학생’은 없고 다만 ‘수험생’만 있을 것이다. 수험생에게는 점심시간도 사치이니 밥 먹는 시간도 쥐어짤 것이다. 능력(?) 있는 교장 선생님이 있는 학교는 교실의 기숙사화 운동을 전개할지도 모른다. 초등학교도 중학교도 이젠 방학을 그냥두지 않을 것이다.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단 며칠간의 방학마저도 가차 없이 빼앗는 학교가 늘어날 것이다. 2월은 어쩔 것인가? 이미 고등학교에서는 2월 새 학기를 운영하는 학교도 늘어나고 있다.


사람 냄새 없는 후진 교육 


어른들에게 묻는다. 모든 아이들을 학교와 학원에 철저하게 가둬놓고 어른들끼리만 무슨 재미로 살려고 그러는가? 이렇게 경쟁심으로 무장한 우리 아이들에게 앞으로 어떤 사회를 만들어 가기를 바랄 것인가. 사람 냄새가 사라진 사회에서 아이들에게 어떤 행복, 어떤 미래를 추구하라고 말해 줄 것인가?

오늘날 경쟁력이 필요하다는 말은 백 번 옳다. 그러나 경쟁을 시키면 경쟁을 하게 되고, 경쟁을 하게 되면 무조건 경쟁력이 생긴다는 야만적인 공식을 신앙처럼 믿는 나라는 후진국이요, 참으로 후진 나라다. 원리반에서 탐구반으로 올라가는 것을 마다 하는 그 ‘바보’ 같은 아이들에게서 우리 어른들은 무엇을 배울 것인가?

2008. 3. 10(월) / <시민사회신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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