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2010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주관한 
"아깝다 학원비" 단행본 출판 기념 국민 수기 공모전에 최우수작으로 당선된 글입니다. 



 “엄마 93점이 그렇게 좋아?”


김선희 (39세, 교사, 경기 성남)


나는 내 수업에 대해 남다른 열정을 지닌 중학교 음악교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느끼곤 한다. 중학교의 음악 수업시수는 보통 주당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이므로 한 주간 동안 만나는 학급의 수는 10학급 이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한 시간 분량의 수업을 준비하면 학교 급수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는 다섯 학급 이상 같은 수업을 반복하게 된다. 늘 좋은 수업을 위해 노력하지만 첫 학급에 비해 두 번째 세 번째 학급으로 갈수록 수업은 이미 진단된 문제에 대처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보완된 세련된 수업이 되어 간다. 그러다보니 처음 시도된 수업을 공교롭게도 여러 차례 이어 듣게 되는 학급이 생기면 큰 아쉬움이 남곤 하는 것이다. '두 번째 이후의 좀 더 준비되어 여유를 갖게 된 수업의 수혜를 전달하지 못하는 미안함' 그것은 고르란히 내 두 아들에게도 적용이 된다. 첫 아이에게 쏟았던 사랑과 정성은 때로 시행착오의 미안함을 남기곤 한다. 연습이 된 후 만난 둘째는 비교적 쓴 맛을 덜 볼 수 있을 것 같다.(비록 부모 사랑을 독점해보는 영광을 누려보지는 못하겠지만....)

둘째 아이가 첫째 아이의 자라온 과정을 밟고 있는 지금, 돌아보니 첫째가 유달리 특별할 것도 없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하루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녀석은 분명 천재 비슷한 운명을 타고 난 것만 같았다. 말 한 마디 한 마디 눈빛 하나 하나는 늦은 퇴근으로 아이를 자주 대할 수 없는 남편에게 그 증거로 제시되곤 했다. 직장에서는 제법 멋진 교육관을 가진 교사라고 자부했지만 부모로서의 나는 몹시 서툴렀다. 그 놀라운 존재를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사교육걱정없는 세상을 통해 등대지기로 훈련받기 전 아무런 의문없이 상대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부모의 도리를 다 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아이는 참으로 걸작이었다. 발달단계를 고려하고 지,덕,체의 조화를 꾀하면서도 체력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나름대로 잘 짜 놓은 방과후 시간표를 따라주지 않았다. 어떤 과목이든 6개월 이상 지속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그 과정을 1,2년간 지켜보며 자연스레 근심이 늘어가는 한편 아이의 성향을 자세히 읽으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그때쯤 만난 등대지기 학교는 나의 어려움이 무엇이었는지 정말 기적처럼 밝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너무나 절실하고 본질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듯 내가 잊어온 중요한 사실이다.‘나와 내 아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나와 내 아이가 행복한가?, 지금 나와 내 아이가 행복한 미래를 가꾸어 가고 있는 중인가?’ 바로 그 문제였다. 나는 두 달 여의 여덟 개 주제의 강의를 통해 돌처럼 단단했던 성취에 대한 집착을 깨고 그 속에서 눈부신 날개를 펴고 훨훨 날아가는 희망을 본 것이다. 강의를 듣고 온 날이면 기쁨의 눈물이 그렁그렁 눈꺼풀에 매달리곤 했다.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미안하다, 하지만 이젠 괜찮아’라고 말하는 듯 이마를 쓸어주곤 했다. 상대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불량한 성취욕은 늘 어딘가 모르게 우리의 삶을 위협했다. 그러나 그 굴레에서 벗어나자 세상은 정말 아름다웠다. 나의 사회적 신분, 경제력, 생활 여건, 그 모든 게 그대로인데 하루 아침에 내 삶이 어찌나 가치롭고 아름답게 느껴지던지 자신감에 양 어깨가 쫙 펴졌다.

초등학교 2학년인 우리 아이는 엄마가 등대지기 졸업생이 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매일 매일 산노루 처럼 산토끼 처럼 신나게 뛰어다닌다. 비록 놀이터에 친구가 없어 유치원생인 동생 친구들과 주로 어울리다 보니 다소 유치해 보이는 점이 아쉽지만 말이다. 보통 오후 1시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과제나 복습을 하는 30분 내지 한 시간 정도의 시간 외에는 거의 모든 시간을 자유롭게 보내고 있다. 아이는 하루 종일 읽고, 그리고, 만들고, 놀이터를 거닐고, 활쏘고, 나무타고... 하며 알차게 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침시간이 되면 울상을 짓곤 한다. ‘너무 조금 놀았다’는 것이다. 요즘의 다른 아이들 생활에 비추어 보면 정말 어이없지만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 어렵지 않게 공감이 된다.

서울 변두리 시장골목에서 자란 나는 학교에 다녀오면 얼마 안되는 숙제를 뚝딱 해치우고 이 골목 저 골목에 모여든 아이들과 하루 종일 놀았다. 그러다가 저녁시간이 되면 너나없이 마지못해 끌려들어 갔지만 대개 장사하는 부모를 둔 아이들이라 저녁 식사 후에도 삼삼오오 다시 모여들곤 했다. 기운이 빠지면 길가 어디에나 하나쯤 있는 평상에 누워 별자리를 찾고 별똥별을 새어 보다가 때론 화가 잔뜩 난 부모님에게 잡혀가기도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언제나 헤어짐은 아쉽기만 했다. 아이들은 놀라운 창조력을 지녔다. 둘 이상 모이면 장난감이 없어도 게임기가 없어도 한없이 놀이가 이어져갔으니 말이다.

지금의 아이들은 어떠한가. 방과후 시간이 넉넉한 우리 아이가 친구들과 놀기 위해서는 엄마들끼리의 연락을 통해 철저한 사전 계획이 필요했다. 언제든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무리가 지어지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못내 씁쓸하지만 또래 친구와 어울리기를 바라는 마음에 열심히 엄마들과 연락을 주고 받으며 시간을 얻어내려 노력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바쁜 스케줄 때문에 가끔 2,30분 정도의 틈을 이용해 만나볼 수 있을 뿐이었다. 한 가지에 꽂히면 최소한 한 두시간을 집중하는 우리 아이는 그런 만남을 힘겨워했다. 곧 헤어져야 한다는 조바심으로 얼룩진 부자연스러운 만남일 뿐이었다. 그러나 참으로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다른 아이들은 10분 15분 단위로 놀이를 나누었고 시간관념도 철저했다. 30분을 놀아도 ‘아줌마 지금 몇 시죠?’라는 질문을 두 세 번씩은 하는 것 같다. 어른들에게 이젠 뭐하고 놀지를 정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되면 보채지 않고 제 갈 곳으로 쉽게 발걸음을 옮긴다. 제 친구가 갈 때마다 ‘제대로 놀아보지도 못했어’하며 징징거리는 것은 우리 아이뿐이었다. 그런 일을 자주 겪다보니 우리 아이는 친구의 방문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제 하고 싶은 일을 하곤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따르는 사회적인 행동 방식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이며, 그 사회 속에서 어떻게 건강한 관계를 맺어가야 하는 가는 사교육없는 세상을 선택한 우리들이 하나 하나 헤쳐나가야 할 산인 듯 싶다. 그러나 전국 어디에나 그 산을 넘으려는 동료가 늘고 있으니 그다지 외롭지는 않을 것 같다.

둘째 아이의 육아를 위해 휴직중인 내가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이웃과 어울리는 일이다. 위협을 당하는 삶은 문안으로 숨게 하지만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나는 문을 열고 사람들을 내 집으로 끌어들인다. 또 자연과 더불어 휴식할 수 있는 여행지를 선별하고 계획하여 여러 가정이 함께 어울리도록 이끈다. 어른들이 서로 어울려야 아이들도 어울리는 삶의 즐거움을 경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억지로 시간표를 짜서 ‘놀리는’(놀린다는 말은 요즘의 엄마들이 아이들을 만나 놀 기회를 만들어 준다는 뜻으로 흔히 쓰는 말이다. 난 왜인지 애완용 강아지를 끌고 산책 나가는 느낌이라서 평소 쓰지 않는다.) 그런 부자연스러운 만남보다 여러 가족이 함께 여가를 보내면서 어른은 어른대로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동료를 만나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여가문화를 만들어 가고픈 것이다. 그렇게 만나보면 대부분의 이웃들도 비정상적인 성장기를 보내는 요즘 아이들에 대해 염려하고 안쓰러워 한다. 그렇다고 해서 사교육으로부터 아이를 해방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모두들 똑같이 ‘요즘 애들 불쌍해. 우리 때가 좋았지’라고 말하면서도 아이들의 시간을 되돌려 줄 생각은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부모로써 도리에 어긋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 아이만 낙오자가 될까봐’ 그것이 바로 그들의 변명이다. 등대지기 학교 수학 중반까지만 해도 나 또한 똑같은 변명을 했었다. 그러나 어엿한 졸업생이 된 후 ‘나 하나가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는 위로의 말을 곱씹으며 좀 더 적극적으로 세상 바꾸기에 동참하고자 노력한다. 또 그 것이 좀 더 파급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웃과 좀 더 가까이 지내려 노력한다. 상대적 우위를 점령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긴장된 삶이 아니라, 지금 내 스스로의 삶을 진지하고 값지게 여기는 태도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하고 싶다. 또 이렇게 다르게 살기로 결정하고도 행복할 수 있는 우리의 삶이 아이들에게 익숙해 질 수 있도록 많이 보여주고 싶다. 등대지기 학교를 계기로 깨어진 편견에서 자유로워진 내가 느꼈던 희망과 기쁨을 더 많은 이웃과 공유하고 싶다.

지금 돌이켜 보니 우리 큰애가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가 시키는 대로 눈물을 머금고 자신을 길들여가는 순한 아이가 아니었기에 참으로 다행스럽다. 녀석의 집요한 저항이 아니었다면 둘째 아이도 형처럼 너무나 소중하고 애틋한 유년시절을 학원에서 보내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사교육을 등진 우리 아이의 학교 성적이 상대적으로는 좋지 않다. 지난 중간고사에서 수학시험을 93점 맞았다기에 진심으로 칭찬해주고 기뻐하는 나를 보며 아이는 “93점이 그렇게 좋아?”라고 말했다. 나는 “그럼, 1학기 때 보다 훨씬 잘했잖아. 게다가 90점이 넘었다는 것은 니가 배운 것을 거의 모두 이해했다는 것이니까 더 기쁠 수 밖에...”라고 답했다. “하지만 여전히 어두운 얼굴을 한 아이는 “난 그렇게 잘 한거 같지 않아”하고 풀이 죽어 말했다. “그래? 좀 더 잘하고 싶었구나. 엄마도 도와줄게 실망 하지마”라고 말하며, ‘녀석 참 욕심이 많군.’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며칠 뒤 주위 엄마로부터 우리 아이가 속한 학년의 수학평균이 95점이라는 말을 들었다. 아마도 아이 나름대로 주변 친구들의 성적에 비추어 자신의 점수를 상대적으로 평가했던 모양이다. 엄마가 바른 의식을 갖으려 해도 아이들이 저 속한 세상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은 오롯이 그들의 몫인 모양이다. ‘그 안에서 아이도 살아가는 법을 배워 나가겠지’하며 관조하는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또 한 번 내공을 쌓아야 할 모양이다.

오랜만에 큰애가 한 동안 즐겨부르던 노래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보고픈 책들을 실컷 보고 밤하늘의 별님도 보고 이산 저 들판 거닐면서 내 꿈도 지키고 싶다. 어설픈 1등 보다는 자랑스런 꼴찌가 좋다. 가는 길 포기하지 않는다면 꼴찌도 괜찮을 거야”

호기심 과잉으로 늘 보고픈 책이 많고 자연 속에 푹 파묻혀 탐구하기를 열망하는 아이, 그러다 보니 남들 다하는 공부는 뒷전인 아이의 입에서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 나는 움찔 놀랐다. 노랫말에 그려진 녀석은 어찌나 우리 아이와 닮아 있던지.... 그것을 본인도 아는지 이 노래를 부를 때면 유독 음절 하나 하나에 힘을 주어 호소력 있게 부르곤 했다. 사교육걱정없는 세상을 만나기 전, 나는 아이의 입술을 통해 들려온 그 노랫말이 괜시리 가슴 아프게 느껴졌었다. 우리 시대가 ‘루저’라 말하는 삶을 선택하는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 위로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비춰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난 그 노랫말이 너무나 듣기 좋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의 난 1등이 아니었다. 아니 그 근처도 가보지 못했다. 그러나 내 생긴 모양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인정해준 부모님들의 양육 방식에 의해 나답게 성장해 왔다. 그리고 나의 내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기울여 내가 가장 좋아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그렇게 선택한 삶을 진지하고 보람 되게 가꾸어 가고 있다.

며칠 전 공원에 산책을 갔다가 새로 조성된 놀이터를 발견하고 두 아이와 함께 놀게 되었다. 둘째 아이는 새로운 놀이 기구가 많아 흥분 되는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데 반해 첫째 아이는 어느 동네 놀이터에서나 흔히 할 수 있는 모래놀이에만 열중해 있다. 새로 조성된 놀이터에서 다양한 놀이경험을 했으면 하는 남편이 “너도 모래놀이만 하지 말고 이것저것 해보지 그래?”하고 권했다. 못들은 체 하고 모래놀이만 열중하는 아들을 안타까워하는 남편에게 “쟤는 지금 새로운 놀이기구보다 모래놀이가 필요한 거야. 지 뜻대로 하게 두지 그래.”라고 말해 주었다. 누구나 여가 시간이 주어진다면 자신이 꼭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싶을 것이다. 그것을 뒤로 미루고 다른 사람의 권유를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여가가 아닌 것이다. 우리의 인생 곡선을 그려 볼 때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여가가 많은 때는 어린 시절과 노년기이다. 그 나머지 기간 동안 대부분 하고 싶은 것 보다 해야 할 일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어있다. 누군가의 인생은 생각보다 짧아서 노년의 여가를 충분히 갖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노년의 여가를 안식이라고 본다면 어린 시절의 여가는 앞으로 펼쳐질 많은 노력과 노동을 위해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키우는 시기일 것이다. 그 소중한 유년기에 자신의 필요를 스스로 찾아내고 채워가며 준비된 자의 삶의 힘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힘겹게 꾹 참으며 스펙을 쌓고 준비한 자의 그것과 견주어 비교할 수 있을까?

지금의 아이들은 마치 ‘이렇게 키워도 괜찮을까?’라는 의문 투성이의 실험대에 놓여져 있는 것 같다. 실험은 실패하면 다시 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인생은 단 한번 뿐이므로, 소중한 우리 아이들을 의문 투성이 실험의 실험 대상으로 삼을 순 없다. 우리가 누려왔듯, 우리 아이들에게도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자신의 필요를 찾아 그들의 유년을 마음껏 보낼 수 있도록 놓아주는 것이야 말로 이 시대 부모들이 소중한 우리 아이들을 위해 함께 해 내야할 가장 값진 희생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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