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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교육/등대지기학교

"혼"이 살아있는 강의

 

 

 

* 본 게시물은 2009년 제3기 등대지기학교 수강생이 제7강 '미래사회를 살아 갈 우리 아이들 진로교육'(강사: 고병헌)를 듣고 작성한 소감문 입니다.

 

18조 김미숙(호호아지매)

 

“혼”이 살아 있는 강의였다.

앎 자체를 내세우지 않았기에 ‘거품’을 걷어내고 알맹이를 찾느라 용쓰지 않아도 돼 좋았고..

각종 미디어 매체와 다른, 다시 말해 가시적인 전략을 앞세워 현혹되기 쉬운 순간의 선택을 종용 당하는 품격 없는 태도에서 벗어나 존재 가치를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아 ...실로 청강자의 존재를 ‘존중받는 느낌’이 들어 뿌듯해 좋았다.

 

개념이 살아 있는 교육이란 결국 이렇게 우리의 영혼을 흔들 수 있는 가치들이 충분히 존중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의미있는 ‘몸짓’을 만들 수 있도록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준비시키는 소위 '필요충분조건'으로 살아있어야 함이 아니겠는가?


주옥같은 어록들을 주워담느라 노트 한 장 한 장을 빼곡이 채워가는 내 모습에

그동안 얼마나 내 자신이 그 ‘혼’의 진정성을 찾아 헤매고 다녔는지를 새삼 직감했다.

결코 그 동안의 여러 강의 과정을 소홀히 여길 수 없지만, 실로 내 자신이 나아 갈 방향에 대해 이렇다 할 실마리를 잡을 수 없어 스스로 안타까워했던 경험을 적잖이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스스로 묻고 답하는 과정을 통해 다짐하기를 숱하게 반복하면서 일종의 나 자신을 위한 세뇌작업과도 같은 ‘진통’을 겪으며 이미 옳다고 느껴왔던 것들을...

지금의 자리에서 부모인 내가 좀 더 확신하며 살아가기 위한 그런 모습이...과연 이토록 현실에서 제대로 누리기가 힘든 것인가? 하는 회의감에... 실천 의지가 종종 잦아드는 위기감을 맛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부모가 가져야할 태도... 용기있는 선택,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살아 숨쉬는 비전, 그리고 실천하는 능력!

중요한 건 그 실천 능력을 발휘케 하는 내 마음...그 마음의 뜨거운 울림이 아니겠는가?


뜨거운 마음을 갖게 하는 이상과 그것을 다시 냉철하게 돌아보게 하는 현실 사이의 간극을 느끼며 애통해하느니, 차라리 그 간극 사이에 나 자신을 놓고 , 그 순간만큼이라도 내 자신의 폭만큼 좁혀진 이상 현실 사이의 간격의 좁혀짐을 맛보며 기꺼이 보람을 느끼는 그런 부모가 될 충분한 이유...나는 이 강의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나도 상당부분...현실의 “진정한 개념의 부재”에 한 몫을 하며 살았을지 모른다.

소위 ‘돈줄’과 ‘연줄’에 대한 세상적인 가치를 얼마만큼 뒤로 하며 아이들에게 내가 살고자 하는 모습의 ‘삶’을 보여주고 있었는지..새삼 내 자신에게 되물어 보고 싶어졌다.

‘노동’의 참 가치를 일깨우고 그 속에 묻어 있는 ‘관계’속의 인간상이 존중받아야 할 그 ‘개념’들...과연 나는 그것의 참뜻을 얼마나 ‘삶’으로 표현해 내고 있었을까?

 

“끊어야 할 삶을 끊을 때, 비로서 자유함을 얻는다”라는 강의 내용이 되새겨진다.

한번 뿐인 우리의 인생을 그야말로 아름답게 만들어 가려 하는 참 실천만이 그 자유함을 얻기 위한 필요충분의 조건이라면 얻고자 했던 답은 실로 자명해진다.

그렇게 하면 된다! 다시 말해 끊어버리면 되는 것이다.

강의 후에 제발 우리 이 자리에서만큼은 ‘그래도 현실은....’에 대해 논하지 말자...라는 고병헌 교수님의 말씀이 이런 의미에서 와 닿는다.

결국...외면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우리 부모의 자세는 ‘그래도...’라는 타협의 뉘앙스가 담긴 수동 미온적 태도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확신에 근거한 단연한 의지가 담긴 태도...바로 그것인 것이다.


사교육을 끊는 작은 실천으로 나는 여기에 올 수 있었고, 설사 그렇지 못했다 해도 언제나 더듬이를 세우고 무엇인가를 찾고자 하는 열망이 나를 여기로 분명코 이끌었다고...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나는 이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강의이지만 실제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정해져 있다. 그것이 선택이다. 내가 선택하지 않으면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기회’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

내가 앞서 한 발짝 나아가 아이에게 보여주지 않으면 그 기회란 것은 결코 나에게 오지 않을 것이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겠다는 어설픈 욕심은 나를 결코 한 발짝도 앞서 나아가지 못하게 할 것이다. 이유를 말하라 한다면 다리는 두 개 일지언정 내 몸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몸은 마음에 따라 움직일 것이며 그 마음에 따른 몸이 추진력을 가지고 나아가려면 두 발이 함께 움직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날 뛰는 토끼 두 마리를 향해 달려가며 애 써 볼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최선’이라 생각하며 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두다리와 몸은 그것 때문에 정작 토끼를 잡기도 전에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가 되어 ‘나’를 쓰러뜨릴 것이다. 그것은 내 한 번뿐인 삶을 사는 방법이 아니다. ‘나’를 파괴시키면서까지 ‘삶’을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말이다.


의미를 운운하다가 현실을 놓친다고 누군가 또 내 귀에 대고 속삭일 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 나에겐... 그 속삭임을 떨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꿈꾸는 미래는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여기 지금...현실을 통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가 없는 현실은 있을 수 없으며 그 때문에 나는 도리어 ‘의미를 추구’하며 살 가치를 느낀다.

설사 그 속삭임의 현실적 가치가 내가 가진 ‘의미’를 압도할 지라도 나는...이 자리에 버티고 서 있을 수 있는 이유...분명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 스스로의 존재의 이유인 자유’를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보다 나은 가치, 올바른 가치를 지향하는 교육의 참 의미, 진정한 학습을 위해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만들 수 있는 우리에겐 분명코 밝은 미래가 있음을 난 확신한다.

내 할아버지 할머니가 만들어 준 미래, 내 아버지 어머니가 만들어 준 미래...그 미래의 ‘현실’을 지금 내가 바로 여기에서 살고 있으며, 내가 만드는 미래에 내 아이가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가치를 올바르게 지향하고자 할 우리의 힘...그 '현재의 힘'도 결국 내 부모, 내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물려주신 자산이다.

그래서 나는 지난 과오조차도 우리의 힘이 될 충분한 근거를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용기가 생긴다.


미래는 곧 꿈이다.

그래왔듯이...분명코 이룰 수 있는 꿈이다.

난 그것을 믿고, 단지 한 걸음...그렇게 소신껏 나아갈 뿐이다. 

 


 

 

 "등대지기학교" 담당 간사

 등대지기학교 뉴스레터지기이자 사무실 막내 유쾌발랄 간사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