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순(돌베개)님의 생활단상
요즘은 시간을 잘 사용하는 사람이 성공한다고 한다. 그래서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대한 책들도 많이 나오고 심지어는 시테크란 국적불명의 단어까지 생겼다.
시간을 잘 사용해야 성공한다는 생각들은 이제 성인들의 세계에서만 통용 되는게 아니라 점점 더 연령층이 낮아지고 있다. 어릴때부터 시간사용에 대한 습관을 잘 들여 놓으면 그버릇이 성인이 돼서도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아이들에게 학습플레너니 뭐니 해서 어릴때부터 틈을 안준다. 심지어는 노는 것도 부모가 판을 깔아주고 시간과 스케줄 관리를 한다. 옛사람도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말했다는 고전을 상기 시키며...
그러나 내가 어른이 돼서 보니 어릴때부터 시간사용에 대해 습관을 들이지 않아도 성인이 되면 여유시간이 없이 무척 바쁘다. 나이가 들수록 여유로워지는게 아니라 시간이 더 부족하다. 울 남편은 평일에는 일찍 일터에 나가고 늦게 오는 바람에 일요일에나 식구들 얼굴을 본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일터에서 시간을 사용하는데, 거꾸로 시간이 없어서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
우리집 고3인 큰아인 무척 바쁘다. 아예 시테크를 넘어 초테크로 시간관리를 하는거 같다. 수능시계라는게 있다. 이 시계는 공부할때만 켜져있고 공부외에 다른 일할 때는 꺼둔다. 심지어는 화장실 갈 때, 잠시 나와서 물 마실 때 조차도 꺼둔다. 순수하게 공부한 시간만 체크한다. 시간을 시단위가 아니라 초단위로 체크한다. 시험문제을 풀때에도 분당으로 나누어서 바로 바로 체크하고 넘어간다. 한문제당 풀어야 할 시간을 놓치면 아는 문제라도 틀린다는 것이다. 생각하고 사고를 하는게 아니라 읽자마자 순간 체크하는 것이다.
중3에 올라가는 둘째는 친구를 좋아해서 곧잘 나간다. 나머진 스마트폰을 옆에 끼고 산다. 그래도 막내보다는 철이 들어서 그런지 책 읽는 일과 열심히 하진 않지만 전 학년 복습정도는 좀 하는 시늉을 한다. 아직까지는 시간관리의 개념이 끼어들지 않는 나름 또래들보다는 여유롭게 자기 생활을 즐기면서 시간을 사용한다.
이제 막 초등 딱지를 뗀 울 막내는 시간 사용이 자유롭다. 놀고 싶으면 놀고, 자고 싶으면 자고, 자기가 하고 싶은데로 한다. 조용해서 보면 방에 들어가서 책을 보다가 책을 베고 잔다. 컴퓨터를 가지고 이것저것 해보다가 친구가 부르면 나가서 놀다 오고.... 울 집에서 제일 시간을 요즘 유행어로 릴렉스~~ 하게 사용하는 아이다.
난 이번 방학때 막내에게 시간표를 주고 싶지 않았다. 애들 어릴때는 계획표를 같이 짜서 붙여 놓고도 했지만 이번 마지막 초등방학은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점점 더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어릴 때 만이라도 좀 릴렉스한 시간을 주고 싶어서이다. 현대사회는 사람의 생체리듬에 따라 시간을 관리하는게 아니라 산업사회의 시간에 맞게 사람이 시계에 낑겨서 돌아간다.
어릴 때 릴렉스한 시간에 대한 기억이 없는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여유로운 시간에 대한 기억이 뇌속에서 지워질 것 같아서 최소한 초등에서의 마지막 방학 만큼은 하고 싶은거 하고, 놀고 싶은 것 놀고, 시간에 대해 최대한의 자유를 주고 싶어서이다. 초등 마지막을 진짜 쉰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느끼게 하고 싶어서이다.
아침마다 늦잠을 자는 아이가 오늘은 깨우지도 않았는데 일찍 일어났다. 중학교 예비소집일이라 8시 20분까지 학교에 가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도 어찌된 일인지 바로 코앞 학교를 놔두고 버스로 3-4정거장하는 남자 중학교로 배정이 됐다. 그래서 8시도 되기 전에 집을 나섰다. 좀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이제부터는 막내도 인생의 시간이 점점 더 빨라질 것 같다. 인생이 정신없이 앞으로만 내달음 칠 때, 마지막 초등딱지를 뗀 여유로운 시간들이 뇌속에 기억이 되어 성인이 돼서도 여유로운 삶, 쉬어가는 삶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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