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2월, 정부는 고교 입시 사교육 진원지 외고 입시 문제에 대해 국민들의 고통이 가중되자, 이를 풀어낼 정책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외고에 선발권을 허용하는 한, 외고 대비 사교육은 근원적으로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중학교 내신 과목 중 영어 성적의 일정 기준을 도달한 학생들을 중심으로 ‘선지원 후 추첨’으로 대책을 세울 것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특히 정부가 제시한 외고 입시의 중요 전형안인 입학사정관제는 새로운 고급 사교육 시장을 키울 가능성이 있음을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정부 정책 발표 후 사교육시장의 반응과 동향에 대해서 아직 속단할 수는 없지만, 부분적으로는 정부의 정책이 사교육 시장의 변화에 일정한 정도 영향을 주는 것 ‘같아’ 보입니다.(‘같아’ 보인다라고 유보적 판단을 한 것은, 보다 정확하고 정밀한 분석 평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며, 이를 4월 토론회를 통해 제시하겠습니다.) 특히 외고 입시 대비 사교육 시장은 계속 이곳에 투자할지, 새로운 영역으로 진출할지 혼란을 겪으며 내부적으로 조정기를 거치는 중입니다.
문제는, 외고 지위가 흔들리는 사이에, 새로운 문제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즉, 사교육시장이 고교 진학의 길을 분주히 탐색하면서, 정부가 만들어 놓은 다양한 고교 형태를 뒤지면서 그 속에서 입시 명문고로서의 외고 지위와 경합(혹은 대신)할 대안을 찾기 시작하여, 자율형 사립고(약칭 ‘자율고’)와 ‘자립형 사립고(약칭 ‘자사고’)를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자사고’이지만, 숫자가 많지 않아 입시 기회가 좁기에 대중적으로는 ‘자율고’에 현재 사교육 수요가 집중되고 있는 추세에 있습니다.
서울 같은 평준화 지역의 자율고도 문제이지만(자율고 내 선행학습 경쟁 등), 경기도 등과 같은 비평준화 지역의 자율고는 기존 외고 지위를 확실히 대체하는 학교로 자리를 잡을 것입니다. 학교 영어 성적만 가지고 뽑는 외고에 비해, 전 과목을 성적 우수자를 마음대로 뽑을 수 있는 자율고는 대입 입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포스트인 것입니다.
2010년 자율고 입시 : 부모의 영어 능력까지 묻고, 성적 상위권 독식...
이미 2010학년도 자율고의 입시 전형안을 보면, 심각성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학교의 건학이념과 관계없이, △수학, 과학, 영어 과목의 중학교 내신 성적 상위권(4~6%) 학생들을 뽑은 학교(안산 동산고 등) △학생의 자기 소개서, 학업계획서 영문 작성을 넘어서 학부모 의견서를 영어로 제출해서 영어를 잘 하는 부모를 둔 아이들을 우대하려는 학교(천안 북일고) △삼성과 같은 대기업 신입사원들보다 훨씬 더 높은 영어 능력 기준(TOEFL(iBT) 113, TOEIC 940, TEPS 887점 이상)을 요구하는 학교(경북 거창고) 등 그 정도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심각한 상태에 있습니다.
이점은 정부가 발표한 2011년 입시 전형안 가이드라인을 따른다 해서 별반 달라질 것이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물론 학교 바깥 자격증이나 공인성적을 갖출 필요는 없으나 내신 성적 상위권 학생을 싹쓸이하려는 현상은 불을 보듯 뻔한 것입니다. 비평준화 자율고 입시의 경우, 정부의 이번 개선안은 대입에 필요한 주요 입시 과목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싹쓸이하려고 학교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그렇게 악용할 수 있도록 입시 가이드라인을 방치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평준화지역 자율고의 경우에도, 내신 성적 50% 중 추첨형태인 서울이 그나마 양호하지만(이 경우에도 학교에 들어간 후 시작되는 정규교육과정의 선행학습 경쟁은 고교 수준에서 선행학습 사교육시장을 부추길 것임), 나머지 평준화 지역의 경우는 20-30% 성적 우수자에게만 기회를 주고 그것도 추첨방식이 아니라 변칙 선발권을 허용해 버려, 지방 평준화지역의 자율고는 명확히 ‘입시명문고’로 비약할 길을 열어버렸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자율형사립고는 평준화와 비평준화 지역에 상관없이 명문고를 향해 질주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렇게 될 때, 2011년 후 고교 입시 사교육은 새로운 양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외고의 지위가 흔들리면서 그 자리를 자율[사]고가 경합, 잠식하며, 외고와 자율[사]고 입시를 둘러싼 사교육 광풍이 대한민국을 휩쓸 것입니다. 즉, 외고라는 파도가 약간 꺾이자, 그 이상의 집채 만한 파도가 다시 몰려오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사교육 시장은 그 파도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공포를 토대로 살 길을 찾아 이동하고 있습니다.
자율[사]고 등장으로 고교 입시 사교육 줄지 않아... 개선책 서둘러야
사실 이런 문제는 각 시도 교육감들의 잘못된 정책 결정과 그에 입각한 각 학교의 입시명문이 되고자 하는 제도에 대한 악용도 한 몫하지만, 근원적으로는 정부가 2011년 고교 입시 관련 내놓은 대책의 한계, 관련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규정의 모호함에 그 뿌리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특히,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등에도 실체가 없어 시범학교 성격을 가지고 있는 자립형 사립고가 초특급 일류학교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고교(입시)체제 전반에 손질을 가하기 이전이라도, 자사고를 자율고로 전환하고, 자율고 역시 서울 수준의 내신 성적 상위 50% 이하 자격 기준과 추첨방식으로 자격기준을 완화해야 합니다. 동시에 자율고에도 재정을 지원하여 서민들도 들어갈 수 있는 일반적 학교 모형으로 만들어야합니다. 물론, 재정 지원을 근거로 정부는 입시 요강 등에서 학교의 이익보다는 사회의 공적 유익을 도모하게끔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조치를 넘어서, 문제가 생기면 땜질을 하는 누더기식 처방보다는 ‘입시 고통과 사교육 걱정이 없는 고교 (입시) 체제’ 도입을 심각하게 고민해야할 때입니다.
고교 입시 체제 전반적 개편 이전 단계에서, 정부가 ‘자율[사]고 문제와 관련해서 시급하게 바로 잡아야 할 부분을 다음과 같이 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