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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걱정없는세상/회원의 이야기

[송인수] 6월 12일 나눔 : 세상의 모순에 자신을 던진 사람 그가 곧 길이다

6월 12일 창립식 때 오신 분들에게 나눈 이야기이다. 이 짧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지난 1년 나는 참 힘겨운 시간을 건너왔다. 행사 준비로 분요하지만, 일을 하면서 마음 속에는 오신 분들에게 전할 말을 묵상하는 시간으로 가득했다... 새벽마다 기도하면서 내 속의 뜨거움이 사라지지 않도록, 내가 이 길을 가야하는지 모색하며 기도할 때 내게 찾아온 계시의 지혜를 잘 표현할 수 있도록, 그렇게 기도했다. 당일날, 강당의 높은 위치와 청중들의 앉은 자리 거리감, 그리고 어둔 조명으로 눈을 마주치지 못한 가운데, 교감의 어려움을 느끼는 그 마음으로 20분 강의를 했지만, 글을 쓰면서 마음 속으로 내가 진실을 담고 있음을 느꼈다...아, 이번 8월 달 기독교사대회 때 내 사랑하는 선생님들을 만나서, 내 속의 뜨거움과 내속의 아픔과 그 부르심의 역사를 전해야할텐데, 날마다 그래 거의 날마다, 나는 자격없는 사람이다, 나는 자격없는 사람이다, 은총이 없이는 나는 오늘 하루도 버틸 수 없는 사람이다, 그렇게 두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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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출범 행사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모임 때 “참석한 여러분께 우리의 운동을 알리는 순서가 있으면 좋겠다... 이게 도대체 무엇 하자는 일인지, 운동의 취지와 정신, 사업 방향 등을 잘 전달하는 시간”을 갖자는 이야기가 있었고, 그 몫이 저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그 과제를 위해 저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20분이었습니다. 지난 1년 간 이 일이 과연 내가 감당해야할 짐인지, 고민하며 괴로워했던 세월을 고작 20분 만에 이야기하라는 것은 가혹한 일입니다. 그것도 단지 정보만 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을 얻어서, 이 일에 동참시키라는 것이니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라는 새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하자는 운동입니까? 사교육업자들과 대결하는 운동이 아닙니다. 이 전쟁터에서 살아남을 전사로 아이들을 길러낼 노하우를 제공하자는 운동도 아닙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아이들에게는 입시고통, 부모들에게는 사교육걱정을 주는 살인적 전쟁 자체를 끝내자는 운동입니다. 전쟁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체념하고 여기고 그 안에서 점진적 대안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전쟁 자체를 끝내는 근본적인 운동을 하자는 것입니다.


이 운동은 전쟁을 유발하는 입시경쟁, 학벌, 대학의 잘못된 서열주의, 입시정책, 중등교육 질 문제, 간판 숭상주의... 등, 수십년 간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우리 숨통을 조여 온 이 괴물과 같은 것과 대항해 싸우겠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도무지 풀 수 없는 것을 풀겠다는 무모한 운동입니다.


평시, 나는 다른 분들로부터 그렇게 무모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나는 성과가 나오는 일에 마음이 끌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결국 이 자리에 서고야 말았습니다. 지난 1년은 이게 왜 내가 감당해야할 몫인지, 고민해온 세월이었습니다. 제 인생 전체를 걸고, 질문한 그 질문에 대해 대답을 찾다가 죽다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2월 19일, 그날로 내 고민을 끝내고 나는 이렇게 여러분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결코 실패할 수 없는 일이라 나는 확신합니다. 거대한 바위와 같은 문제와 씨름하지만, 나는 이 운동이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역사를 보는 안목은 없지만, 내가 1년 동안 고민하면서, 한가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 시대 고통 받는 아이들의 문제를 풀기 위한 “신적 개입”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신적 개입 때문에 이 운동이 실패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앞으로 장래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일, 사람들의 상식을 넘어서는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 수고와 희생으로 열리는 길


이 땅의 입시 고통과 사교육걱정, 여러분은 무엇이 문제이고, 그게 왜 안 풀린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학벌, 대학서열주의, 간판, 체면 문화 등... 원인이 너무 복잡합니다, 그리고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라고요. 그러나 저는 문제 해결에 있어서 과학적 접근만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입시와 사교육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것은, 피해 당사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문제를 자기가 풀지 않고, ‘정치권, 대학, 언론 등 힘 있는 곳에 의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피해 당사자들이 서로 연대하지 않고, 서로 경쟁하며 고립된 상태에서 실패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보십시오. 이 땅에 무고한 한 사람의 생명이 죽임을 당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그가 죽으면 그 한 사람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단체나 운동’이 출범합니다. 80년대 군부독재로 희생당한 대학생, 청년들의 죽음을 기억하여 (민가협이 만들어져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일익을 담당했습니다. 그런데, 한해에 200명 씩 벌써 지난 40년간 8000명의 아이들이 입시로 인해 자살하고, 부모들의 한숨과 신음소리가 이토록 깊은데, 입시 문제에 관한 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 세상을 바꾸는 순서

 

입시에 관한 한 우리는 우리 문제를 정치권에서 풀어달라고 말합니다. 정치권이 나서서 법과 제도를 바꾸어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다 안 되니, 해외로 나가거나 절망합니다. 물론 법과 제도가 바뀌면 세상은 한결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법과 제도는 매우 보수적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기존의 틀로 세상을 설명할 수 있으면 법과 제도는 절대 자신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기존의 법체계로 설명할 수 없는 현실이 생기게 되면, 처음에는 그것을 “불법”이라고 매도하다가 그런 현상이 많아지면 “예외”라고 말합니다. 그러다가 너무 예외가 많으면 할 수 없이 자신을 바꾸게 되는 것입니다.


정치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법과 제도를 바꾸는 권력의 힘 아닙니까? 아무리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정치일지라도, 현실을 기존의 질서로 설명할 수 있는 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새로운 법과 제도가 하나 등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새로운 현실’이 세상에 등장해야합니다. 그러나 그 ‘새로운 현실’은 어떻게 만들어집니까? 그것은 기존의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버티는 누군가의 실천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실천이 없으면 새로운 현실이 없고, 따라서 새로운 현실이 없으면 새로운 법과 제도가 없는 것입니다.


이 말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입시고통없는세상을 만들기 위해 오늘 모인 우리에게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가 만들어야할 “새로운 현실”은 무엇입니까?


학부모에게 새로운 현실을 만드는 것이란, 승리가 보장되는 곳으로 자녀를 진입시키기 위해 내 인생의 중심을 잃어버리고, 내 믿음, 내 가치관을 다 버리고, 옆 집 이웃과의 허망한 경쟁에 더 이상 인생을 탕진시키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사에게 새로운 현실이란 교사로서의 자존심과 존엄성을 잃어버리고, 아이들에게 경쟁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입시 위주 교육을 하라는 요구에 더 이상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버티며 거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교육 업계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새로운 현실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더 이상 학원의 이익을 위해 근거 없는 ‘불안’으로 부모와 아이들을 힘겹게 하지 않겠다는 결심이요, 이 땅의 아이들에게 복된 날이올 수 있다면, 내 이해관계를 내려놓겠다는 결심을 의미합니다.


종교를 가진 이들에게 새로운 현실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진리를 따라 산다는 것은, 이 땅의 경쟁에서 승리하려는 시도를 내려놓고, 고통 받는 이들의 자리에 가서 그들과 같이 되며 그들을 위로하는 것이라는 것을, 삶으로 선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야 변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물론, 입시고통과 사교육 걱정 문제는 풀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 문제가 미국의 흑백 차별 문제보다 훨씬 더 어렵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미국 사회는 상당한 수준 풀어냈습니다. 어떻게 풀어냈습니까. 물론, 루터킹 목사님의 희생을 떠올릴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꼭 그런 초인적인 위대한 사람의 선택과 결정이 새날을 가져오는 것만은 아닙니다. 저를 비롯해 우리 모두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미국의 몽고메리주에서 시작된 흑백차별운동은 그 이름도 생소한 로자 파크스라는 한 흑인 여성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1955년 12월 1일, 대중 버스에서 흑인 좌석에 앉아 있다가, 백인이 앉아야하니, 자리를 비켜달라고 운전사가 말했지요. 그는 오랜 세월동안 그런 부당한 요구에 순응했습니다. 흑백차별의 무시무시한 관행과 제도, 그리고 그에 짓눌려 적응해온 세월... 그러나 더 이상 그녀는 그럴 수 없다고,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고 자기 자녀에게 새날을 주어야한다는 그 마음으로 부당한 요구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켰고, 그래서 범법자라 낙인 찍혀 감옥에 가게 되었고, 그 사건을 계기로, 그 유명한 버스 보이콧 운동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 운동을 계기로 흑백차별을 폐지하는 수많은 항의운동이 일어났고, 그와 관련된 법률을 만드는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위대한 웅변과 사람을 이끌어내는 조직 능력은 없을지라도, ‘잘못된 관행’이 길을 비켜달라고 요구할 때, 아니라고 대답하는 그런 자세, 그로 인해서 감옥 가는 그런 자세가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그래서 세상이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문제의 해결책이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가,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순을 풀어내기 위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해결책은 없습니다. 오직 길은, 그 문제를 가슴에 끌어 앉고 자기 생을 통해 대답을 찾는 그 사람 자신입니다. 그 사람이 곧 길입니다. 도무지 풀 수 없는 문제의 한 복판에서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 그것 자체가 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앞으로의 계획


오신 분들 중 상당수는 사실, 이 운동이 앞으로 무슨 일을 하겠다는 것이냐에 대해 더 궁금할 것입니다. 그것을 이야기할 시간이 없습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 운동을 소위 ‘소수의 교육전문가 운동’으로 혹은 ‘답을 제시하고 남들을 따라오게 하는 운동’은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다만, 고립된 채 아픔을 숨기는 사람들을 광장으로 끌고 나와서, 사실은 이 경쟁 속에서 아무도 진정한 승자는 없다는 그 숨겨진 진실을 폭로하고, 그 속에서 우리 모두가 아픔을 나누고 위로하는 일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서로를 경쟁의 상대가 아니라 문제를 푸는 동반자로 품도록 하는 일을 조직하려고 합니다.


대안을 만들는 일에 관심이 있지만, 우리가 대안을 만들어 제시하고 사람들을 견인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평범한 사람들이 대안을 찾아 나서도록 격려하고, 그 속에서 가장 생명력있는 대안이 채택되도록 대안을 만드는 길을 관리하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딱딱하고 고답적인 오프라인 중심 운동이 아니라 온라인운동도 가미하고, 또 가급적 재미있고 신나는 방식으로 일을 도모하고자 합니다.


이 일이 어떻게 될 것이라고 여러분은 전망하십니까. 잘 될 것인가요? 예, 저는 잘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러나 뭔가 탁월한 전략이나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있기 때문에 잘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그렇게 확신한 것은 아까 말한 것과 같이, 이 일이 신적인 계시가 임한 일이기 때문에 잘될 것이라 믿는 것이며, 이 일을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던지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미래가 구체적으로 언제일지는 나도 모릅니다. 나도 그 약속만 붙들고 차출되어 나온 군인일 뿐입니다. 다만 확실한 한가지는, 우리가 이렇게 나서지 않으면 그 미래는 결코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입시, 사교육 문제 해결 계단이 총 100개라면, 나는 내 생애를 통해서 5개 정도 계단을 만들고 죽어야하겠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이 내 등을 밟고 올라가 계단 만들고... 그렇게 해서 세월이 지나 계단 만드는 일이 완성될 것입니다. 일은 그렇게 이루어질 것이지, 한번에 달라지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사회 교육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문제 해결의 길은 어렵고, 그 어려운 문제에 자신을 던지기에는 자기 인생이 너무도 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려운 문제를 상대로 싸움을 걸 때의 자세는 단 두가지입니다. 그것은 “자기 인생을 하찮게 생각하는 자세”, 내 인생은 아무 것도 아니니, 이 답이 안 나오는 일에 내 인생을 낭비하겠다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한창기 씨라고 뿌리 깊은 나무 편집자가 말한 대로, “가치있는 일을 위해 돈을 가랑잎 태우듯이 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 두가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어디 있냐고요? 이미 많습니다. 눈에 아무런 전망이 보이지 않는데도 함께 뜻을 모아 시간을 묻고 물질을 묻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 때문에 오늘 우리가 여기에 있게 된 것입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온전히 임할 때, 그날,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하나는 외로이 땀 흘려 길을 만들어 온 지난 세월을 회상하며 감사해 하는 사람들이고, △다른 한 부류는 그렇게 길을 만든 사람들의 수고로 인해 혜택을 누리며, 그동안 수고한 사람들에게 고마워하는 사람들, △그리고 다른 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재주를 다 동원해서 새 세상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애쓰다가, 결국 찾아온 새 날로 인해 괴로워하고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셋 중에 여러분은 어디에 포함되길 원하십니까. 저는 저와 여러분이 첫 번째 사람으로 인생을 살아갔으면 하고 바랍니다. 오늘의 행사를 위해 아침마다 기도하면서, 저는 여기에 참석한 170분이 여러분이 내 속에 주어졌던 이 마음을 품고 돌아가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에게 꼭 이 운동에 돈이나 내는 후원자 정도로만 참여해 달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대중운동이니 우리는 정부의 손을 빌지 않고 대중들의 지갑에 의존할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이 일에 회원으로 후원자로 참여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요청은 그것을 넘어섭니다. 제가 참으로 원하는 것은, 이 괴물 같은 우리 시대 교육문제를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문제로 체념하는 마음을 오늘 이 행사를 끝나고 나가실 때 모든 분들이 내려놓고 나가달라는 것’입니다. 약속이 있는 일이지만, 행여 잘못되어 일이 실패로 끝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저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열매가 없어도 그렇게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할 일에 자기 인생을 던지는 낭비가 아름다울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렇지 않을지라도, 나는 내 아들, 여명이와 민서가 “아버지가 우리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모든 것을 걸며 살았다”고 기억해 주면 나는 그 한가지로도, 충분히 위로받은 인생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어찌 저만의 마음이겠습니까. 그것은 사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땅을 살아가면서 가슴 속에 오랜 동안 묻혀 놓았던 소망이 아니었습니까. 그 꿈을 따라 산다는 것이 무모해 보여 주저했지만, 사실 언젠가 때가 되면 내 인생을 가치 있는 일에 던지리라는 마음을 품고 살아오셨을 것입니다. 우리 시대 역사가 어두웠던 지난 세월, 내 이익을 계산하지 않고 모든 것을 던져 새날을 가져왔던 그날 승리의 경험을, 오늘 이 한국 땅 사교육과 입시고통으로 신음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또 다시 쏟아부어야하겠다는 그런 마음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우리가 참석한 것 아닙니까...


잘 오셨습니다. 부디, 이 생명에 찬 가치 있는 일에 우리 생을 던지며 함께 위로하는 그런 축복된 삶이, 저와 여기 참석한 모든 사람들의 생애 가운데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