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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걱정없는세상/회원의 이야기

[송인수] 아내로부터 받은 그 한장의 편지...

1월 22일 한통의 편지를 대표자들에게 보냈다. 퇴직에 대한 제안을 하고 나서, 그후 한달의 과정은 가정적으로나, 우리 운동 내부적으로나 격동의 시간이었다. 퇴직을 한다는 것은 의지하던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절대적인 시간을 필요로 했다. 교직의 지위가 상종가를 치는 그 시기에 아무리 공동체적 결정을 하는 것으로 퇴직을 이해해도, 새 삶의 소중한 일부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웠다. 대표자 모임을 끝낸 후, 내부적으로 나와 정병오 선생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무엇인가를 보장해 달라는 내 이야기가 곁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참 당황스럽게 만들었고, 나를 가장 잘 아는 정병오 선생님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근심을 안겼다. 서운함과 실망감, 두려움의 감정이 복잡하게 엉켜져 우리를 힘겹게 하던 시절, 결국 기윤실 교사모임 수련회  마지막날 내게 찾아온 말씀을 붙들기로 결심한 후, 모든 것이 풀려져 나갔다. 생일날 내 아내가 보내온 편지... 결사적으로 막는 대신 내 앞길을 축복하며 신뢰하며 그 길에 자신의 인생도 함께 하겠다는 아내의 글로 나는 이 길이 주께서 허락하시는 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며, 기쁜 마음으로 무엇인가를 공동체에 조건으로 요구하지 않고, 5년 이후 내 모든 일을 접고 새로운 길을 떠나기로 했다... 그때 그분들께 보낸 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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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행위원 여러분들께


지난 번 저의 퇴직과 관련하여 저희 가족들의 반응 및 그와 관련된 저의 생각 등을 정리한 문건을 보내드린 지 한 달이 되어 갑니다. 그 시간이 저에게는 참으로 길고 긴 시간으로 느껴졌습니다. 그 문제와 관련하여 참 많이 고민하고, 주변 선생님들과 의논도 하고, 수련회와 성경묵상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려고 노력해왔습니다. 덕분에 사무실 일이 한동안 좀 어려워지기도 했지만...


한달 전, 가족들의 우려를 생각하면서 제가 여러분께 평생 직장 개념의 진로를 보장해달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보수 문제도 꺼냈지만, 그 동안 기도하며 주의 뜻을 헤아려 보니, 그 모든 것이 참 부질없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지난 기윤실 수련회를 통해서는 마음 속에 있었던 인간적인 과욕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많이 우려했던 점, 그러니까 저의 퇴직으로 함께 일하던 분들에게 혹시나 낙심을 주지 않을까 하는 부분도 그렇지 않다는 확신도 얻게 되었습니다. 3주 연속으로 저희 교회에서 목사님이 전하신 설교를 통해서 두려움을 내려놓고 퇴직해야하겠다는 강한 확신과 흥분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기쁜 것은 저의 아내가 제게 생일날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 저의 결정에 강하고 따스한 지지를 보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가슴 속에 늘 뜨거운 불덩이 하나 있어, 시간의 장벽도 공간의 장벽도 훌쩍 뛰어넘는 걸 여러 번 봤습니다. 때로 나와 같지 않아 어색해 하기도 하고, 화도 내보기도 하지만, 나와 같지 않아 존경할 수 있는 당신.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 걸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음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어떤 결정을 해도 당신의 결정은 현명하고 올바른 결정이 될 것임을 믿고 있고, 나도 그 결정과 함께 할 겁니다. 시간이 갈수록 당신의 소중한 꿈이 어떤 모양으로든 어떤 색깔로든 더욱 아름답게 피어나길 기도하고 싶습니다.-신을진


참 힘들고 어려웠던 결혼생활이었는데, 이렇게 전폭적인 지지를 해준 아내가 너무도 감사했습니다. 며칠 전 마지막, 어머니와의 대화를 남겨두고, 제가 아침에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평생 가난과 질병과 상처로 한이 많으신 어머니에게 제 퇴직 문제가 또 하나의 상처가 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적어도 섭섭하지 않은 마음으로 저의 길을 허락하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그 날 아침 어머니는 선선히 저의 길을 허락하셨습니다. 대화하며 어머니의 평안한 웃음을 보았습니다.

또한 여러분들이 저의 퇴직을 결정했어도, 그 결정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기 때문에, 제가 여러분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해야하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지난 한 달의 과정이 무익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확실하지 않았던 부분들, 불안으로 시작했을 새로운 길을 그 많은 과정을 통해서 담대하게 갈 수 있도록, 주께서 상황으로 말씀으로 길을 열어주시고 제 마음을 다져 주신 것을 생각할 때, 이 모든 방황과 낭비의 시간이 보석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으나, 마음은 많이 달라졌네요. 설혹 실패하는 길일지라도, 하나님이 인정해 주신 길이기에 믿음으로 갈 수 있고, 또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계시기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제안합니다.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처음 실행위원 모임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5년 동안 일하겠습니다. 그리고 5년 후에 저의 사역에 대한 평가를 받아서 앞으로의 진로를 결정하도록 모든 부분을 위임하겠습니다. 저의 진로나 경제나 임기나 모든 부분은 여러분들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5년 후에는 상임총무로서의 역할만큼은 접겠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상임총무의 역할을 의미할 다른 역할(예컨대 제가 제안했던 사무처장 등)도 맡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운동은 발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퇴직한 것이 아닌 이상, 저는 운동 현안 뿐 아니라 사람을 기르고 세우는 일에도 부지런히 관심을 갖겠습니다. 5년 후, 새로운 젊은 운동가가 저의 다음을 이어 받아 기독교사운동을 섬기도록 길을 비켜서겠습니다. 그 이후 진로가 지금 보이지 않을지라도, 제 아내가 충고한 것과 같이, 한 모퉁이를 돌아서야 다음 길 모퉁이가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0여 년의 삶을 돌아볼 때, 형편없는 인생이 이렇게 주의 일에 귀한 쓰임을 받고 선생님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관심과 사랑을 받았음이 저의 행복이고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방황과 뜻하지 않은 사려 깊지 않은 행동에도 불구하고 기도와 관심을 가지고 기다려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2003. 1.22. 주안의 한 지체 송인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