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다는 것은 편해서 좋고 그리고 즐겁기도 하다. 크게 마음쓰지 않아도 쉽게 내디딜 수 있고 몸이 피곤해지거나 지루함을 느낄 때 쯤해서 적당히 방향을 돌려 돌아오면 된다. 나이가 들면서 걷기에 관심이 늘어간다. 원래 걷기를 좋아하지만 건강문제가 서서히 대두되면서 대안으로 걷는 걸 늘려간다. 그렇게 취미삼아 걷기도 하고 운동삼아 걷기도 하며 보낸 세월인데 한 동안 하는 일에 매달리다가 게을러졌고 그런 점을 깨닫고 다시 걷기를 재개했다.
이번에는 조금 계획성 있게 걷기로 했는데 그게 북한산 주변을 목표로 정하고 걷기로 한 것이다. 보통 걷기는 특별한 목표가 없는데 이번에 목표를 정하고 나니 나름대로 궁리할 일이 생긴다. 어디로 가고 차편은 어떠하며 가서는 무얼 볼 것인가 하는 사소하지만 미리 생각해 두어야 하는 일들이 그것이다. 걷기는 원래 그런 게 아닌데. 무계획적인 게 제격인데. 틈이 나면 걷고 안나면 그만이곤 하던 게 내 습관인데 그렇다면 한 단계 발전한 것인가.
북한산은 서울을 내려다 보고 있는 진산이고 지역이 넓어 그 저 단순한 산이 아니다. 북한산에 들어가는 길목도 많아 동서남북에 걸쳐 수십군데가 될 것이고 그 길에는 사찰도 많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가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북한산은 새로운 모습을 내게 보여준다. 목표를 정하고 길을 선택해 걷는다는 것은 종전의 나의 걷기 습관과는 다르다. 무턱대고 몸이 피곤해질 때까지 무언가를 골돌히 생각해 보며 걷다가는 지우고, 지우고는 다시 생각지도 안던 일이 떠올라 다시 생각에 잠기며 걷다가 이번에는 저절로 그 한 생각이 나도 모르게 사라지곤 하는 게 내스타일인데 상황이 변했다.
가볍게 세운 것이긴 하지만 목표가 있으니 그를 향해가게 되고 이루고 싶어져 결국 허허로운 마음의 행로를 즐기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떤 방식이 좋을까가 다시 화두가 된다. 목표를 세운 걷기가 좋을까, 아니면 목표 없는 걷기가 좋을까. 이리 저리 궁리하며 한참을 걸어도 결론이 나지를 않는다. 목표없는 걷기가 몸에 밴 나지만 갈 데를 정한 목표있는 걷기도 그런대로 재미를 들이고 있는 중이다.
벌써 석달 사이에 북한산을 목표로 이길 저길 걸은 게 10여 곳이 된다. 북한산을 보는 눈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그 전에는 그저 서울의 큰 산이려니 했는데 최근에는 북한산이 서울과 운명을 같이 하는 공동운명체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성계가 서울을 도읍으로 정하기 전까지만 해도 북한산은 큰 의미가 없는 산이었다. 한양이 조선의 수도가 되면서 북한산도 비로소 사람들의 주목의 대상이 되는 산이 된 것이다. 산은 원래 그 곳에 있었지만 새로운 산이 되었다고나 할까. 이처럼 새롭게 산이 보이게 된 것은 내가 북한산을 목표로 걷기를 하고나서 얻게 된 망외의 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무학대사가 이성계에게 한양을 천거했을 때 북한산이 역사중심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할지라도 나에게는 서울을 둘러싼 여러 산중에 하나인 그저 그런 산에 불과했던 것이다.
사물은 이처럼 눈에 보이게 될 때 비로소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 전까지 나에게 북한산은 지리학적 산일지는 몰라도 역사적 산이지는 않았는데 시간적 제약을 갖는 산이라는 걸 깨닫게 되자 한결 가깝게 다가온다. 도봉산 자락 회룡마을에는 이성계가 함흥에서 돌아오다가 한양에 들어오지 않고 다시 함흥으로 돌아가겠다고 해서 태종이 그를 붙잡느라고 진땀을 흘린 고사가 남아 있는데 조선 건국 일화도 알게 모르게 역사의 의미를 일깨우고 있다. 이처럼 북한산은 역사의 옷을 입고 나에게 다가오지만 그건 내가 세월의 두께를 알기 시작했음를 의미하는 것이고 또한 그만큼 내가 세월을 보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도 걷기는 주변을 둘러보며 아무 생각없이 걷는 것이 좋다. 북한산을 목표로 걷고 여기저기서 역사의 흔적을 살피는 것은 무심한 걷기에 하나의 파적은 되지만 이게 목적은 아니다. 부수적으로 조선개국의 일화를 듣고 북한산과 한양과 한강의 의미를 찾는 것은 아주 가벼운 사색 속의 외도일 뿐이다.
무심히 걸어라. 온몸이 피곤해질 때까지 오래 오래 걸어라. 그게 진정으로걷고 싶은 목적이 아니겠는가. 그런 피곤 속에 몸을 맡길 때쯤 되면 따뜻한 소주 한잔이 포장마차 속 아낙의 눈흙김 속에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되리라.
북한산이 어떻고 이성계가 어떻다고? 그런 건 잊은 지 오래다. 오늘도 나는 이렇게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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