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수 선생님은 1986년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교육대학원에서 교육철학 석사를 받았다. 1989년부터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교실붕괴의 현실을 보다 못해 1996년부터 기독교사들을 주축으로 시작한 것이 좋은교사운동이었다. 2003년 3월, 과감하게 학교를 퇴직하고 ‘좋은교사운동’ 대표직을 맡아서 활동하다가 임기 5년을 마치고 새로운 일을 준비 중이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그만 두고 좋은교사운동의 대표로서 일을 하다가 이번에 대표를 그만 두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떤 배경에서인지요. 그것은 제가 퇴직해서 좋은교사운동을 책임지기로 할 때 이사들과 회원들, 무엇보다도 제 자신에게 한 약속이었습니다. 아무리 유능한 개인일지라도 한 조직을 너무 오랫동안 책임지는 것은 그 조직이나 개인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10여 년 전, 저는 어떤 거대한 교육단체가 명목만 남았을 뿐 충성된 회원과 매력적 운동이 실종되어 휘청거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조직의 위기를 내부에 가서 들여다보니, 이유는 한 가지였습니다. 그 조직의 창업자인 회장이 너무 오랜 세월 동안 조직을 이끌어 온 것입니다. 그 세월이 그에게는 타성의 시간이었고, 주변의 리더들에겐 기여할 ‘기회가 봉쇄된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되겠구나, 생각했지요. 물론 우리와 같이 일정한 규모 이상의 조직에서 책임자가 하루가 멀다 하고 교체되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이지만, 리더십의 교체가 없는 ‘창업자의 그늘’ 또한 문제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저는 이 운동이 이 시대 어두운 교육계를 향한 하나님의 선택이라 생각하고 일해 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제가 가진 것으로 잠시 쓰임 받다가 가는 인생이라 생각했습니다. 저의 역할은 ‘개척과 창업’의 성격이 강했는데, 지금 우리 모임은 이미 ‘개척 단계’를 넘어섰습니다. 또한 개척 이후 조직이 활성화될 때 나타나는 정체성과 방향의 혼란 등의 문제도 나타났는데, 이 역시 2년에 걸쳐 조직의 틀과 질서를 세움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앞으로 우리의 과제는, 회원의 참여와 소통 속에서 시대에 맞는 운동을 함께 실천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역할까지 제가 끌어안는 것은 과욕입니다. 그 역할은 후임자의 과제라 봅니다. 저는 저에게 맞고, 그러면서도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과제를 찾아 일어서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저는, 후임자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출판 사역에 전념하고 싶었습니다. 출판은 무척 재미있는 일이지요. 좋은 책 아이템을 생각하고 그것을 만들어 내는 과정은 자식을 얻는 기쁨입니다. 그런데 이사회와 후임자가 발목을 잡았어요. 45세라면 한참 일할 나이인데 왜 벌써 ‘관 뚜껑 열고 들어가 누우려냐’구요. 저는 출판을 그리 우습게보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소용없었어요. 이사회에서 새 일을 위한 가이드라인 3대 지침을 주고 답을 가져오라고 했지요. 하나, 일반 교계 운동이 아니라 앞으로도 교육운동을 해야 한다, 둘, 지금보다 더 힘들고 강력한 운동을 해라, 셋, 후임자와 합의해 오라. 지난 1년 동안은 그 지침의 교집합에 해당하는 일을 찾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난 1년 간 모 신문사 대선 자문위원을 하고 또 전교조, 교총 등 보수 진보 진영 어디도 가담하지 않고 중립지대에서 나름의 중심을 잡고 일하다 보니, 우리 시대 교육문제의 거대 이슈가 제 과제로 자꾸 접근하는 것을 느꼈어요. 물론 아시다시피 그 과제의 실체는 ‘입시와 사교육 고통’인 것이지요. 그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풀 수 없는 일이라 받아들이고, 저는 그동안 좋은교사운동을 통해서 풀 수 있는 과제 중심으로 일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풀려지지 않는 문제에 직면해야할 때가 온 셈이에요.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부담이 많으셨을 텐데… 부담은 이루 말할 수 없지요. 뭐 입시, 사교육 문제가 해법이 있습니까? 정부도 해결 못하잖아요. 지난 참여 정부가 방과 후 교실이다, EBS 수능과외다 해서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넣어서 절감시킨 사교육비가 고작 2~5만원이라고 해요. 정부가 나서도 그 정도의 성과밖에 못 거두는데... 저는 원래 성과가 나오지 않은 일은 싫어해요. 학교 교장 제의도 한두 곳에서 받았지만 딱 거절했지요. 입시와 사교육 문제는 성과를 내기 거의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작년 하반기에 손봉호 총장님을 만나서 고민을 나누었어요. 그분이 그러시더군요. “입시와 사교육운동을 해야 한다면, 기독교인만이 아니라 국민운동 차원에서 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운동해서 성과가 나오겠냐, 나는 우리나라가 많은 부분에서 성공을 거두었지만, 교육문제에 관한 한 철저히 실패한 국가라 본다. 경실련 봐라. 금융실명제는 성공을 거두었지. 왜냐하면, 금융실명제는 법이 들어오면 소수 권력자들이 피해입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익을 얻는 사안이라, 국민들의 저항을 등에 업고 일할 수 있었기 때문이야. 그런데 경실련이 부동산 문제는 못 잡았어. 왜냐하면 부동산 문제는 모든 국민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는 사안이라서 그래. 교육문제는 그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지...” 구구절절 옳은 이야기였지요. 아시다시피, 손 총장님의 운동 철학 트레이드 마크는 ‘선지자적 비관주의’이지요. 정직운동 같은 것, 외쳐도 안 되지만, 외쳐야하니까 외치는 그래서 안 된다는 점에서 ‘비관주의’, 그러나 주님이 하라고 하시니까 , ‘선지자적’인 것이에요. 그런데 제가 보니까, 입시와 교육문제에 관한 한 손 총장님에게 ‘선지자적’은 없고, ‘비관주의’만 남았더라구요. 그만큼 어려운 것이지요. 그분이 뭘 몰라서 그러시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하겠다고 덤벼드는 셈이니 얼마나 나이브한 일입니까? 음. 저도 피하고 싶은 주제였습니다. 저도 제 인생을 성과를 얻는 일에 집중하며 만족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 주제가 제 마음을 너무 괴롭히는 것이에요. 작년 6월 대전에서 학부모들에게 교육문제를 가지고 강의하다가, 강의 도중 입시고통으로 인해 우는 부모들의 모습을 보고 저도 그 자리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한해 150명~200명의 아이들이 입시로 인해 자살합니다. 40년 우리 교육 역사 속에서 약 8,000명 정도가 입시 고통으로 죽은 셈이지요. 그런데 그 숫자는 70년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서 죽은 한국군인 6,000명보다 많은 숫자에요. 이렇게 고통이 심한 데도 어느 한 사람 나서서 이 문제에 대답하겠다고 하지를 않아요. 그냥 정치, 언론, 대학 권력의 처분만 기다리는 셈이지요. 물론 문제가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저렇게 죽어가는 아이들을 방치할 수도 없잖아요. 저는 우리 입시문제가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미국의 흑백차별문제, 노예제 문제보다 더 어려운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미국은 상당한 정도 그 문제를 풀었잖아요. 어떻게 풀렸나요? 그것은 피해 당사자들이 침묵하지 않고 일어났기 때문이에요. 루터킹 목사님 같은 분이 자기 인생을 그 시대 모순에 던졌기 때문이에요. 저는 어떤 문제 해결의 답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문제를 아파하는 사람이 그 문제를 자신의 것으로 품는 것이 답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누군가가 던지게 될 때, 길은 그 후에 열리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입시 문제에 대한 대책도 많이 이야기하지만, 자기 전 존재를 묶어서 싸움을 거는 사람이 없어요. 그 역할이 제 몫이라 생각하니 저도 망설여졌습니다. 저는 마음도 약해요. A형이거든요... 이 일을 끌어안고 가다가 얼마나 많은 공격과 정치적 오해가 있을지 저는 잘 알아요. 이미 좋은교사운동을 일구면서 당할 대로 당해 보았거든요. 그러나 이 일은 좋은교사운동보다 훨씬 더 공격이 심한 분야입니다. 좌절과 고통은 물론, 주변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떠나기 쉽습니다. 잘 해서 입시고통이 사라지면 사교육업자가 싫어해서 공격하기 때문에 문제이고, 실패하면 일이 실패해서 문제지요. 무엇을 해도 개인적으로는 ‘영광’이 없습니다. 그래도 겁을 내지 않고, 계속 길을 가려면, 하나님이 제게 어떤 강력한 증거, 그러니까 기드온에게 주셨던 그런 ‘기적적 증거’가 있어야할 것이라 보았어요. 그래서 그 증거를 곰곰이 찾다가 하나 좋은 것을 찾아서, 작년 몇 달 동안 끈기있게 요구했지요. 내건 요구조건이 너무 황당해서 친한 교육운동가 한분은 어이 없어했습니다. 아내도 ‘하나님과 당신 두 사람이 알아서 잘 해봐요...’라고 어이가 없어 했지요. 그런데 그 결과가 궁금하시지요? 결국 하나님을 이겼습니다. 불과 두달 전이에요... 저는 그 감격을 잊을 수 없습니다. 지금, 6월 창립을 목표로 준비모임을 착수했습니다. 입시와 사교육 문제는 동전의 양면이라 저는 ‘사교육’이라는 개념 하나만 잡고 운동을 하렵니다. 단체명은 ‘사교육이 줄었다’, 문장으로 끝낼 생각입니다. 뭐 단체명이라는 것이 명사로 끝나라는 법이 있나요. 교육문제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희망이 결국 ‘사교육이 줄어드는 것’ 아닐까요. 간사도 없고, 재정적으로 돕겠다는 사람도 아직 없는데, 삼각지 역에 50평 정도 넓은 공간을 임대했어요. 국가적 스케일의 과제를 5년 내지 10년 동안 담당하려면 그만한 규모는 피할 수 없다고 보았지요. 당장 매달 1,000만원이 운영비가 필요해요. 제 손에는 쥐어진 것이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두고 보세요. 사람이 몰리고 뜻이 몰릴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어요. 지금까지 그렇게 운동을 해왔는데 틀림없었습니다. 우리 교육 문제(입시와 사교육비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아시다시피, 가장 근본적인 것은 ‘학벌과 수직적 대학서열구조’, 그리고 그로 인한 차별의 문제라고 봅니다. 고교 등을 아무리 다양하게 하고 학교의 교육과정 질을 개선해도, 근원 문제가 풀려지지 않는 한 해결되지 않아요. 이 차별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한 싸움이 입시경쟁 아니겠어요? 여기에 유교 과거제 전통으로 국가가 보는 시험에 의한 ‘선발과 배제’의 전통이 든든히 버티고 있습니다. 학벌에 의한 차별이 심각하다 보니, 대입선발경쟁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관리하는 국가의 역할이 증대된 것이고, 시험도 그런 객관성, 공정성의 가치에 맞는 방식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국민들은 이런 상황에서, 학생을 평가하는 고교와 선발하는 대학의 자율적 판단은 승복할 수 없고, 결국 소수점 0.001까지도 가려낼 수 있는 객관식 5지 선다형 일제고사가 필요한 것이지요. 그리고 그런 시험제도에 맞추어 경쟁에 이기려는 싸움을 돕기 위해 학교 간 경쟁이 치열하고 그것으로 충족되지 않아 사교육이 달라붙는 것 입니다. 그로 인해 아이들이 죽든 말든 그것은 시험에서 승리해야할 당사자들에게는 중요치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입시 경쟁은 이미 사회 전체의 통합적 공동체적 가치를 버린 개인의 승리를 위한 싸움이기 때문에, 피해 입은 아이들과 가정의 문제는 안중에도 없어요. 결국 모든 이들이 피해자인 셈이지만요.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요. 공교육의 질을 2배 확대하고 사교육비를 절반으로 줄인다고 약속하면서 자사고 설립 등 ‘고교다양화 300’ 공약을 추진하려고 하는데… 자율형 사립고 100개 설립으로 교육의 질이 높아지고 사교육비가 절감된다구요? 거짓말이지요. 이명박 정부가, 수월성을 위해 학교교육을 다양화해야하기에 자사고를 확대해야하겠다, 그러나 사교육은 늘 것이다, 그 대책은 다른 식으로 보완하겠다, 라고 말한다면 그나마 정직하다고 평가하겠습니다. 그러나 사교육을 줄이는 대책으로 ‘자사고 확대’, ‘영어몰입교육’을 이야기하면 곤란하지요. 지금도 특목고 등 50개 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으로 초등학교, 중학교 입시 사교육이 난리인데, 그보다 입시위주 교육과정을 마음대로 편성할 수 있는 자사고가 두 배 늘면, 사교육 팽창은 불을 보듯 분명하지요. 좋은 학교를 많이 만들면 사교육이 줄어든다구요? 아닙니다. 외고를 좋은 학교라 칩시다.(과연 그런가의 문제는 있지만...) 외고 학생들의 사교육비 지출은 외고가 일반고보다 더 높지요. 과학적 엄밀성이 결여된 원인 분석으로 새 정부 교육정책은 오히려 교육의 질을 반감시키며 사교육을 두배 이상 늘릴 정책으로 우려됩니다.
학벌과 대학서열주의 문제를 비켜가서는 안됩니다. 공학적으로 난제이고, 또 지극히 정치적인 주제인지라, 정부나 민간도 그 핵심을 제쳐놓고 대책을 세웁니다. 그러니 다 한계가 있습니다. 물론 대학서열주의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에 있어 현재 ‘국립대학을 평준화시킬 것이냐, 민영화시킬 것이냐’의 논쟁은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좀 단순하게 보고 싶어요. 일단, 초점을 서울대의 위상 정리하는 데만 맞추었으면 해요. 서울대는 이미 우리 사회에서 구름위에 있는 1등 대학이고, 대학들은 2등을 두고 싸우지요. 어떻게 해도 1등은 해볼 수 없는 곳에서 진정한 경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서울대 앞에서 대학들은 이미 경쟁을 포기한 셈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서울대의 질이 뭐 높은가요. 이 서울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저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 생각합니다. 복잡한 표현 쓰지 말고, 문제의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서울대가 타 대학과 좋은 고교생들을 확보하는 경쟁을 포기하는데 있다고 봅니다. 학부 과정 폐지나 개방, 그리고 서울대를 대학원 중심 대학으로 전환하는 것이 그 대책이지요. 그러나 이것 역시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당장 서울대가 반발해요. 저는 서울대 문제에 대해 비서울대 출신은 공격하고 서울대 출신은 방어하는 대립 구조는 깨야한다고 봅니다. 서울대 문제는 서울대 출신들이 결자해지의 자세로 풀어야할 과제입니다. 국민들과 나라 전체와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서울대가 기득권을 포기하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저도 서울대 출신입니다만, 늦지 않은 때에, 서울대 출신들을 모아서 서울대가 우리 교육 전체를 위해 죽는 길을 선택하자고, 제안하고 한번 운동을 해볼 생각입니다. 서울대 출신들이 나서서 서울대 기득권과 대결하면, 국민들은 그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합니다. 그런 저런 작은 시도들이 모여서 대학서열구조나 학벌 등의 공고한 성에 균열이 생기는 것이겠지요. 한방에 끝장 낼 수 있는 게 있겠습니까? 한국교회는 교육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는 입시열풍에 편승해 온 경향이 있습니다. 자녀들의 입시 문제 앞에서는 약해지는 신앙 풍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학입시로 인해 교회 중고등부 교육 등이 완전히 궤멸상태입니다. 그래도 교회는 대책을 세울 수가 없어요. 대학입시는 한국교회에서 신앙도 공격할 수 없는 ‘치외 법권’ 지역입니다. 대학입시가 복음이 차지해야할 자리를 대신 점유하고 있지요. 이 문제를 다들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어떻게 마땅히 해결할 방도가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가령 설교를 통해서 ‘대학입시, 사교육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아이들을 입시의 노예로 만들지 말라라고 해봤자,“목사님, 당신이 우리 아이 인생 책임질 수 있어요?” 이런 말 앞에 할 말이 없습니다. 신앙으로 이기기에는 사회의 현실이 너무 냉혹한 것이지요. 성공 전망 없이 개인의 무한 희생을 요구하는 방식은 운동 전략 중 가장 나쁜 전략입니다. 최소한 내가 혼자 그렇게 하면 세상이 뒤집어지겠구나, 그런 정도의 전망은 있어야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교회가 성도들의 의식을 바꾸는 일과 더불어, 사회의 잘못된 입시구조와 환경을 개선하는 일에도 함께 나서야 됩니다. 교회 안에서 추진하고 있는 홈스쿨링이나 대안교육운동은 어떻게 보십니까? 공교육과 대안교육은 어떤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할까요? 어차피 공교육에서 해결 못하는 어려운 아이들의 문제는 존재하는 것이고 이들을 위한 도피처로 대안교육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운영하는 대안학교는 위기입니다. 세간의 비판은 ‘교회 중심 대안학교’가 입시교육의 잘못된 교육에 대한 대안교육이 아니라, 입시를 효과적으로 대비케 하는 ‘귀족학교’라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기독교대안학교가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 사회적으로 아직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곧 폭로되면 교회가 또 다시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교육문제 해결을 위해서 나설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이 있다면… 어떤 실천을 적극적으로 하기에 앞서서, 그동안 한국교회가 이 입시위주의 영혼을 파괴하는 살인적 교육에 대해 침묵하거나 오히려 동조했다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과 민족 앞에서 회개하는 일이 선행되어야합니다. 입시 경쟁의 대표적 교육이 무엇입니까? ‘야간 강제 자율학습’ 같은 것 아닌가요? 그런 자율학습 우리 나라에서 누가 처음 시작했습니까? 어느 기독교 학교입니다. 적지 않은 미션 스쿨에서 이중시간표 운영하고, 주일 등교 시키는 등의 일을 서슴지 않고 합니다. 한국교회가 시대 속에서 해야 할 제 역할을 위해서 과거 역사와 단절을 선언하는 일이 있어야합니다. 우물쭈물하기에는 무척 늦었습니다. 대담 이광하 편집장 terry33@newsnjoy.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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