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수능을 앞두고
필자는 해마다 수능일이 다가오면 불안에 떤다. 아스라이 먼곳에서 망령이 일진광풍처럼 일어나 서서히 다가와 모든 것을 휩쓸고 가버리는 그런 모습이 상상된다. 지나친 기우일까.
내일 모래 11월 13일이란 수능일이기도 하지만 꽃다운 청춘이 아파트에서 반드시 뛰어내리는 세시행사가 시작되는 날이다. 신문에서 혹은 방송에서 그 소식을 확인할 수 있으리라.
이런 살인의 추억이 어김없이 찾아드는 수능일을 두고 불안에 떨지 않을 수 있다면 그는 우리 젊은이들을 말할 수 없고 교육은 더욱이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필자는 믿는 바이다.
오직 이 땅에 태어났다는 단 한가지 이유만으로 해마다 인신공양을 자그마치 200구 가까이 해야만 하는 그런 공포를 감내해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죽음의 무도는 그치게 해야한다.
시험없는 대학입학제도
이런 방법말고 꽃다운 청춘이 혹은 아파트 옥상에서 혹은 한강에서 혹은 어느 으슥한 골방에서 소리없이 죽어가는 살인시리즈를 막을 방법이 있을 것인가.
필자가 많은 사람들을 붙잡고 어린 아이들을 살려내는 방안을 강구해보자고 호소한지도 오래되었다. 그때마다 죽는 것은 본인책임이라고 하면서 자기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외면하거나 기껏해야 시험제도를 잘 고치자는 게 고작인 것을 많이 보아왔다. 마치 자살하는 아이들이 먼나라 얘기이기나 한 것처럼.
해마다 200명 가까이가 입시철에 죽어나가고 이런 세시풍속이 40년 가까이 된다고 해도 이를 막을 방도를 강구하지 못하는 것은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노동이나 산업이나 이런 분야가 아니고 바로 교육 한가운데에서 일어나는 이런 사태를 정말 이토록 무심하게 보아와도 되는 것인가.
필자가 해마다 아이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더욱 분통스럽게 여기는 또하나의 이유는 이런 죽음의 시리즈가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난다는 사실 때문이다. 다시 말해 대학입학시즌에 죽어나가는 일은 지구를 통털어 그 잘난 대한민국 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학제도를 탄생시키고 700년간 유지 발전시켜온 서구에서는 대학입학시험 자체가 없다. 그러니 자살자가 나올 근거가 없다. 미국도 SAT나 ACT점수 갖고 대학에 들어가는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닌 이상 그 점수에 목을 거는 법이 없다. 독일의 아비투어나 바깔로레아도 자격시험이기 때문에 자격을 획득못하는 아쉬움은 있겠지만 목을 걸 정도는 아니다.
우리와 유사한 대학입학제도를 갖고 있는 일본이나 대만이나 중국도 우리나라처럼 대학의 서열이 철저하지 않기 때문에 시험점수와 석차에 우리만큼 연연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자살자가 나오지 않는다. 이게 사실이라면 그리고 우리나라만 자살자가 속출한다면 이 땅이 저주받은 땅이 아니고 무엇이랴.
자살하는 이유에 대해 한마디 하고자 한다. 자살을 개인책임으로 돌리는 것도 입시를 국가가 주도하면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지만 개인이 낮은 점수에 좌절하고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기 때문에 자살한다는 너무나 무책임한 말들에 필자는 분노한다.
자살하는 진정한 이유는 그의 좌절이 보호받고 은폐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시험점수와 석차는 낱낱이 공개되고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무시된다. 원하는 점수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자살하는 것이 아니고 그런 사실이 햋빛아래 고스란히 노출된다는데 있다.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이 받는 심리적 충격은 상상을 넘는다. 결국 그는 스스로를 지키는 유일한 길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이유이다.
외국에서 시험을 보아 대학생들을 선발하지 않는 이유는 물론 여럿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가 시험(재학중의 시험이 아니고 입학시험을 말함)을 보아 점수와 성적을 알게 해주면 아이들을 보호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리라고 본다. 물론 우리나라는 이처럼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개념이 이해불가능하지만.
입학시험은 근본적으로 점수와 석차를 공개하겠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시험을 보면서 공개하지 말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리고 공개하게 되면 학생들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것도 진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이들을 죽음으로부터 구해내기 위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겠는가. 시험을 보아서는 안된다고 하는. 그것이 유일하고도 궁극적인 길이라는 것을.
우리나라는 고등교육 받을 기회를 얻는 것을 특혜로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시절은 말할 게 없지만 해방과 건국후로 대학수는 너무나 부족했고 기회를 얻고자 하는 열망은 너무나 뜨거웠다. 이런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를 시험을 보아 그 점수와 석차로 해결했다. 그리고 누구도 이런 손쉬운 방식에 의문을 달지 않았다. 그러나 필자는 그들에게 교육철학이 있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대학제도를 만든 서구가 공개경쟁시험선발제도(입시)를 쓰지 않는 것을 몰랐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절차가 번거롭고 힘들더라도 시험선발제도를 채용하지 않았다면 입시시즌에 죽어나가는 수천명의 생령은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젊은이들을 사지로 몰아넣을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대학제도를 수립한 해방과 건국당시의 소위 교육선각자들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그런 과거를 탓하고 있을 계제가 아니다. 당장 모래 수능일부터 시작될 죽음의 무도회를 어쩔 것인가.
필자가 호소하고 싶은 것은 서구에 유학했던 많은 분들이 직접 시험보고 그 성적으로 대학에 간 적이 없음을 공동으로 발표하고 우리나라도 그렇게 할 때만이 아이들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표명했으면 하는 것이다.
마침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이 무시험입학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해서 기대를 걸게 하지만 아이들이 죽어나가도 모른척하는 어른들이 과연 무시험입학제도를 지지할른지 의문이다.
교육 한가운데에서 벌어지는 죽음의 춤판, 죽음의 무도회를 어찌 눈을 뜨고 볼 수 있을 것인가.
* 글: 이공훈 (학벌없는사회만들기 대표)
원문: http://cafe.daum.net/no-worry/3FW6/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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