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등과 꼴찌를 오르내리는, 롤러코스터를 탄 우리 교육...
- 객원기자 '3남매 아빠'
삼각지 강의실에 도착해서 바인더를 펼치는 순간 정병오 선생님의 강의에 대한 열정이 후끈 다가왔다. 자그마치 42쪽짜리 강의요약 인쇄물! 요즘 아이들 말로 ‘헐!’이라는 감탄사가 튀어나올 뻔 했다. 과연 선생님께서 이 많은 내용을 어떻게 모두 전달하실지 궁금하였다. 15분 동안 도표의 제목만 보며 프린트를 넘겨보았지만 다 보지 못한 상태에서 강의가 시작되었다.
... 결국 선생님은 모든 내용을 전달하고야 마셨다. 수업지도안대로 수업을 하신 것이다. 박수를 치면서 아마도 인터넷을 통해 생방송을 지켜보신 분들에게는 녹화된 인터넷 강의를 2배속 정도로 플레이해서 보신 느낌일거라 생각되었다.
혹시 다음에 다른 사람들과 우리 교육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좀 써먹을 거리가 없나 찾아보려면 여러 자료 뒤적일 필요가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의 통계자료는 거의 모든 최신의 통계를 망라하고 있었다. 정말 감사와 존경이 동시에 솟아나는 느낌이었다. 이 많은 자료를 친환경적으로(폰트가 깨알같이 작음) 압축해서 제공해 주시다니!!!
교육통계를 보며 느낀 점은 한 마디로 ‘양극화’였다. 다양한 측면의 비교를 통해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이 1등 아니면 꼴지, 최상위 아니면 최하위로 랭크된 경우가 상당히 많이 제시되었고, 명과 암이 극도로 엇갈리는 조사 결과들이 연속적으로 등장해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듯 매우 어지러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곧 이어 정병오 선생님의 차분한 진단이 시작되었다.
선생님께서는 평가의 공정성과 타당성을 조화시켜야 우리 교육이 선발과 배제라는 기능적 ‘교육’에서 벗어나 교육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으며, 교육의 책무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진단하셨다. 마치 치료를 거부하는 ‘우리 교육’ 환자에게 경고를 하듯 단호하게 들렸다.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다양성을 발굴하고 발견하려면 우선 소득의 양극화가 해소되어야 한다는 부분에서는 얼마 전 시청했던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들었던 “복지가 곧 가장 확실하고 훌륭한 투자”라는 말이 생각났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처럼 나쁜 경쟁을 통한 탈락자의 배제 시스템이 공동체 구성원들의 신뢰를 얼마나 철저히 파괴하는지 통계를 통해 확인하는 순간에는 정말 안타까운 느낌이 들었다. 실제 직장이나 학교에서 느낀 그대로 이렇게 피부에 와 닿는 통계가 또 어디 있을까 싶었다. 교육행정과 입시제도만 해도 학부모, 교사, 학생 간의 저신뢰로 인해 온갖 통제와 규제가 생기고 이러한 규제와 통제를 악용하는 자에 의해 더 큰 불신이 초래되고, 규제는 더 복잡해지는 악순환을 지켜보며 모두가 허탈해하는 현실이 실제 우리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정말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인정할 때만이 희망이 싹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망적 통계 뒤에 공허한 느낌이 찾아올 무렵 정병오 선생님께서는 선진국의 사례뿐 아니라 선생님의 다양한 교육적 시도와 경험에서 우러나온 차분한 분석과 대안을 제시하시기 시작하셨다. 교사별 평가, 진로교육 강화, 중학교 교육에 대한 위상 재정립, 학생과의 전인적 접촉, 새로운 학교문화를 이끄는 교사의 리더십에 이르기까지 비온 뒤 무지개와 같은 희망적 대안들도 한 아름 주고 가셨다.
‘교사는 일단 수업을 잘 해야겠지만 좀 재미있고 창의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는 정 선생님의 실천적 주문이 인상에 남는다. 얼마 전 학부모 진로학교에서 들었던 하종강 선생님의 ‘사회 운동도 좀 웃어가면서 여유를 가지고 해야 한다. 그래야 설득력과 지속력이 있다’ 는 말씀이 떠올랐다. 교실과 학교는 일단 좀 더 밝아져야 한다. 화내고 힘만 쓴다고 될 일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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