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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걱정없는세상/회원의 이야기

고백⑧ 6살 아이에게 국어 영어 수학 한자까지....

이 글은 2012년 9월-10월 두달동안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선행교육금지법 제정을 위한 성찰과 고백의 광장, 시민 문화제>에서 낭독된 글입니다.


안녕하세요. 파주댁 남형은입니다. 집에서 늦둥이와 옹알이만 하다가 이렇게 가을밤에 서울구경 나오니 살 것 같습니다...또 이 자리가 "선행교육 금지법 제정을 위한 문화제" 자리라 더 뜻깊습니다. 제가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저의 솔직한 고백이자 다소의 "자랑질"입니다. 행여 이야기의 뒷자락에 듣게 되실 저의 자랑질이 여러분의 심기를 좀 불편하게 만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문화제가 끝난 그 어느때쯤 "그 정도는 자랑은 아무것도 아니다...당장 내려와라" 이런 함성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올것을 기대하며 시작하려 합니다.


전 목동엄마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 시절 유행한 알파맘 베타맘을 완벽하게 믹스한 "킹왕짱울트라캡숑 목동맘"이 되고 싶었습니다. 목동으로 이사할 작정으로 친구하나를 대동해 부동산을 3개월 기웃거렸습니다. 그런데, 황금학군을 꿈꾸며 집까지 팔아 목동으로 이사갈 수 있는 집은 고작 가지고 있는 장롱도 들어갈 수 없고 문짝이 곧 떨어지기 일보직전의 작고 허름한 전세집 뿐이었습니다. 우진이가 6살..2008년 그해, 전 절망스러웠습니다.


문득 화장실서 큰일을 보다가 메모하기 시작했습니다. 방문학습지 국어 32000, 수학32000, 한자28000...튼튼영어150000, 국악교실70000, 특기교육포함한 유치원비 420000... 합계 732000원... 저희 가계의 수입과 견주어 보니 너 미쳤구나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것이 선행학습의 시작이었던거죠. 6살 아이에게 국어 영어 수학 한자까지....


화장실서 큰일보다 깨달음을 얻은 이틀 후 한겨레신문을 통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알게되었고 등대지기학교를 부부가 같이 졸업하며 저희 집은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저희 부부는 새로운 엄마, 아빠로 거듭났고, 부모가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이 진정 아이를 위한 일인가를 항상 고민하고 대화하는 부부가 되었습니다. 만약 사교육걱정없는 세상을 만나지 못해 그 부질없는 엄마의 욕망을 잘라버리지 못했다면 10살이 된 우진이는 요즘 어떤 학원을 전전긍긍하며 무엇을 배우러 다니고 몇시나 되서야 집에 들어올까요?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또 저희 부부는 그 학원비를 어떻게 감당했을까요.


등대학교 졸업 후 우진인 기본적인 유치원교육만으로 정리하고 태권도와 피아도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우진이가 초등학교 3학년입니다. 1년전 갑작스런 이사로 전학해 조금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잘 이겨낼거라는 믿음으로 지켜보았더니 지금은 너무나도 즐겁게 학교생활하며 지냅니다.


어느곳보다 학구열이 높은 신도시 아파트촌에서 우진인 아이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아이입니다...그 이윤 맘껏 놀수 있는 우진이, 학원에 안가는 우진이...크게 문제가 없는한 엄마가 무조건 예스해주는 우진이이기 때문이죠.


얼마전 학교에서 수학경시를 봤습니다...35점, 어이없는 얼굴로 우진인 말했습니다. 

"엄마 문제가 어려워도 너~~~~무 어려워.." 

“문제가 잘 못된거야..너희가 풀수 있는 문제를 내야지 문제가 이상한거야...” 

“근데 엄마 우리반에 96점받은 애도 있어” 

“정말? 그애가 이상하다.. 문제가 그렇게 어려운데 96점이나 받았단 말이야? 그건 선생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틀리라고 어렵게 냈는데 잘 풀어봐. 그건 선생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맞아 맞아~~ 엄마~”


저희 모자는 35점의 점수와 상관없는 그저 즐거운 해프닝일 뿐입니다.


수학경시의 문제는 3학년 교과수업만으로는 절대 풀수 없는 문제들이 과반수를 훌쩍 넘는데 그 아이는 도대체 얼마나 선행이 되어 있는 걸까요? 선행하는 시간동안 누려야할 10살 소년의 친구들과의 웃음, 뛰노는 즐거움, 10살이 느껴야 하는 행복은 누가 지켜주는 걸까요? 물론 좋은 성적으로 생기는 자신감이나 우월감이 또 있겠지요. 하지만 그저 10살에 어울리는 순박한 행복감만을 느끼며 자라면 안될까요?


다시 교육비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우진이의 사교육을 정리하니 많은 비용이 절약되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한달에 30만원 일년이면 360만원 저축하고 일년에 한번 가족여행을 갈 것을 약속했습니다. 2009년부터 시작에 작년까지 그 약속은 깨지지 않고 매년 10월이면 지켜졌습니다. 여러분...오늘도 역시 10월입니다. 저희 가족은 5년째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20일에 필리핀으로 떠납니다.


걸어가는 놈을 이기기 위해 달리게 하고, 달리는 놈을 이기기 위해 날게하고, 더 잘날게 하기 위해 더 큰 날개를, 그리고 더더더 큰 날개를 달아주다 보니 아이들이 힘이 겨워 추락하기 직전입니다. 부모들의 무모한 욕망을 내려놓으니 그 동안 보지 못했던 행복이 보입니다. 캄캄하지만 어둠속에서 선명하게 빛나는 등대를 따라가다보니 내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는 길이 보입니다. 이제 그만 어른들의 무모한 욕망을 다같이 내려놓을 때가 된것 같습니다.


전 스트레스받거나 화가나면 꽃을 사러갑니다. 이쁘디 이쁜 녀석들을 보면 화가 사라지죠. 몇일전 우진이가 너무 오랜시간 tv만 보고 있어 속이 부글거렸습니다. 또 그속을 달래기 위해 사온 노랑 국화꽃이 만발해 온집에 은은한 국화향이 가득합니다. 참, 향기롭습니다.


지금 우리의 자녀들이 가을 국화꽃의 향기를 맡을 여유가 있을까요? 아이들에게 회색빛 교실과 딱딱한 학원 건물에서 벗어나 이 가을 국화꽃 향기를 느끼게 해주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