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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걱정없는세상/회원의 이야기

고백⑩ 비싼 수강료와 수준있는 근사한 언어들은 저의 허영과 욕심일 뿐이었습니다...

이 글은 2012년 9월-10월 두달동안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선행교육금지법 제정을 위한 성찰과 고백의 광장, 시민 문화제>에서 낭독된 글입니다.


저는 중3 아들과 중2 딸을 둔 전업주부입니다. 큰 아이는 사교육을 전혀 받고 있지 않고, 딸아이는 작년여름부터 피아노와 작곡을 가르치는 입시음악학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큰아이는 컴퓨터를 하루에 5시간 정도, 그 이상도 자주 합니다. 요즘 그 때문에 화가 날 때가 많지만 그러다가도 아이가 안타깝고, 안쓰럽게 여겨집니다. 자기도 너무 많이 한다고 생각하지만 통제가 어려운 모양입니다. 그러나 아들과의 사이는 그렇게 나쁘지 않습니다. 저의 말을 따르려고 노력하는 것이 많이 보여집니다.


큰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에 맞춰 튼튼영어를 시작했고, 2학년 때 대금을 배웠습니다. 3학년 때는 논술학원과 태권도를 다녔습니다. 모든 것은 아이가 먼저 하고 싶다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먼저 아이에 대한 계획을 세워놓고서 아이를 설득하면서 하나씩 하게 된 것입니다. 아이는 성격이 예민하고 내향적이고 낯가림이 있기에 뭔가 새로운 것을 하거나 새로운 환경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해서 그것을 하면 무엇이 좋은지 3개월 혹은 1년이상 얘기하고 또 얘기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것들을 결국은 5학년 때 모든 것을 안하겠다고 얘기했고 그것들을 끊게 되었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려고하면 잔소리고, 훈계라 생각해서, 혹은 설득당하지 않으려고 저의 다음 할 말을 자기가 미리 말하면서 엄마는 이렇게 말할거잖아하고는 귀를 닫아버렸습니다. 아무리 좋은 정보를 주고 싶어도 좋은 이야기를 해 주고 싶어도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힘이 약한 아이는 엄마에 맞서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그렇게 찾은 것이지요. 저도 아이한테 상처를 받았고 아이도 저한테 상처를 받았습니다.


새로운 소통의 계기가 필요한 시기였습니다. 저는 아들과의 여행을 시도했습니다. 첫 제안은 당연히 “안 가”였지만, 여러 번 공을 들여서 첫 여행으로 월정사 걷기대회에 참가했습니다. 그동안 해 왔던 일상의 부딪힘의 언어를 버리고 여행 중에 일어나는 소소하고 새로운 경험들을 나누었습니다. 맨발로 걷기, 개울물 건너기, 곤드레나물 주먹밥 먹기, 공연관람, 기차여행...그저 상황을 즐기고 선택하고 아들의 의견을 묻고 생각을 나누면서 아주 작지만 둘만의 공감대가 생기는 소중한 체험을 하였습니다. 겨울에는 제주도 올레길을 걸으며 일상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아이의 특별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또 지리산 등반 때는 말로 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의 마음속에 나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은 제 아들은 빨리빨리보다는 느리게 걷는 것삶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주위의 시선쯤은 문제거리가 되지 않는 누구보다도 내면이 강한 사람이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 그 과정 또한 자기의 온전한 수고로 채울 수 있는 보기 드문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부모는 자녀의 소질과 흥미를 잘 관찰하고 이를 잘 살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한다라는 말은 맞는 말이지만 매우 위험한 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도 아이의 장점을 더 잘 키워주고 싶은 마음에 논술학원을 보냈지만, 비싼 수강료와 수준있는 근사한 언어들은 저의 허영과 욕심을 충족시켜주었을 뿐 아이에게는 배움보다는 인내의 시간으로만 기억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설득이 아니라 기다림과 대화를 통해 아이 스스로 선택하게 했다면 엄마의 말을 일단 거부부터하려는 마음이 들었을까 하는 반성을 많이 하였습니다.


첫째 아이의 시행착오로 둘째에게는 관심도 욕심도 덜 갖게 되었습니다. 음악을 좋아하고, 이해가 빠르고, 절대음감도 있어서 마음 속으로는 딸아이가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며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지만, 적즉적으로 권유하지 않았습니다. 사람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고, 이것저것 마음쏟는 것이 많은 아이는 연습하기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진로적성검사에서 예술적영역의 월등히 높은 점수, 주위의 칭찬과 인정 등을 통해 꿈에 대해 생각하면서 제게 조심스럽게 작곡을 공부하고 싶고, 예고도 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이와 음악학원에 등록하고 오면서 음악보다 더 재미있고 더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언제든지 진로를 바꿔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이가 최고의 음악인이 되는 것 또한 바라지 않습니다. 최고가 아니어도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제 딸에게 있는 비록 작은 재능이지만, 그것을 통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고 독립적인 생활을 하게 된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가지, 아이가 중학교 입학할 때 영어는 'b'와'd'를 가끔 바꿔 쓸 정도의 미약한 실력이었는데 스스로 자기 영어실력에 위기의식을 강하게 느꼈나봅니다. 그래서 방과후 영어도 하겠다하고, 구청지원의 원어민화상영어도 신청하고 나름 공부를 해서 아주 좋은 영어성적을 받았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자기가 학원을 다니지 않아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열심히 하면 최상위권에도 들 수 있고, 전교 1등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서 많이 놀랐습니다. 하면 되는구나라는 자신감은 돈을 쓰지 않았기에 얻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오빠에 비해 지적인 면이나 학습 면에서 부족하다고 여겨 누구도 큰 기대를 갖고 있지 않았는데 조금씩조금씩 발전하고 성장하는 모습에 더 기쁨이 큽니다.


제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알게 된 것은 2008년, 큰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입니다. 힘든 시기였기에 치유의 약을 먹듯 저는 참 열심히 강의를 듣고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그곳에게 우리나라 학생들이 세계에서 가장 학습시간이 길고, 학습효율이 가장 낮으며, 행복지수가 OECD 국가 중 가장 낮고, 또한 청소년 자살률 1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공부하는 건데 가장 공부를 많이 하면서도 가장 행복하지 않다는 이 결과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남보다 한발 앞서가기 위한 공부, 그 공부를 아이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하면서 배움의 노동을 강요한 저희 부모들. 이 자리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반성하고,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고백합니다. 또한 오래 기다려주지 못한 것, 자기 삶의 결정권을 빼앗고, 그들이 꿀 수 있는 아름다운 꿈마저 빼앗아버린 것도 사과합니다. 미안합니다. 학생과 부모와 교사 모두 잘못된 교육시스템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데 “경쟁 대 협력, 수월성 교육 대 평준화” 등의 이분법적 프레임에 묶어두고 논쟁만하며, 현실의 고통을 묵인하고, 강요하는 우리 사회의 어른들을 대신해서 사과합니다.


아이들에게 꿈이 뭐냐고 묻지만 말고 우리들 스스로에게도 물어야겠습니다. 아이들에게 행복한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꿈을 꾸어야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통해 배운 공공하는 삶이 제 삶의 모토가 되었습니다. 남과 더불어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계속 공부하고 나누며 당당하게 살고 있기에 아이들을 불러 말합니다. “한번 뿐인 인생,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맘껏 살아봐”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