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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교육/등대지기학교

[6강 강의스케치] 아이가 평생 살아갈 힘은 어디에 있을까...

2012년 등대지기학교의 여섯 번째 강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비영리기관 컨설팅 전문회사 '도움과 나눔'의 최영우 대표님을 강사로 모셨습니다. 교육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하시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유수의 대학과 병원 등 여러 비영리 기업 운영에 관해서 조언자로 가장 많은 고민과 활동을 감당해 오셨기에 강의 주제처럼 대학과 미래사회 그리고 일자리에 대한 현장의 물음과 요구 뿐 아니라 그 전망에 대한 통찰을 들을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또 두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로서, 학부모의 입장에서 자신의 내러티브, 즉 이야기로 풀어내는 따뜻한 강의로 많은 수강생들의 마음에 큰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럼 최영우 대표님의 교육철학이기도 한 '세상에 드러남. 세움을 통한 드러냄.' 강의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유동적 사회 : 변화하는 직업과 인재상

사회가 많이 변했습니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없어지고, 고령화가 되고 있는 사회에 정년을 맞이하는 어른들은 퇴직 이후의 삶에 잘 대처하지 못해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숨 가쁘게 변해가는 시대 속에서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키우며 꼭 대답해야 하는 질문들이 있다고 합니다.

많은 아이들이 하루의 아침을 힘겹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학업과 진학, 취직에 대한 부담만을 강요하는 시대 속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 될 삶의 의미와 내적 고통의 문제에 대해서는 꾹꾹 눌러 담고 미루게 되는 것이지요. 또한 아이들 속에는 이미 각각의 재능과 그 아름다움이 들어있는데, 그것들은 무시한 채 어른들의 기준에서 필요하다 생각되는 것들을 주입하려고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시대 속에서 대학들도 마찬가지로 여러 고민들을 하고 있습니다. 한양대는 요즘 공대생들에게 어떻게 인문학적 소양을 길러줄 수 있을지 고민 중이라고 합니다. 지금 기업들은 과거 앞선 기술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협력하며 이끌어갈 수 있는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당장은 단순 기술력이 우선시 될 수 있겠지만, 멀리 보았을 때는 인문학적 소양과 리더십의 중요성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체능 대학의 고민이 있습니다. 음대의 경우 졸업 후 연주활동을 직업으로 이어가는 학생들의 비율이 1%정도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나머지 99%는 내면의 깊은 상처와 패배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우리나라의 예술교육, 특기적성교육이 과장되고 왜곡되어있다는 뜻이겠지요. 애니메이션 관련 직종도 마찬가지입니다. 1년에 100개도 되지 않는 일자리가 생기는데, 관련 공모전에 참여한 학생들의 수가 30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특기적성교육에 대해서 너무 무책임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경희대 역시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설립하여 학생들에게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중앙대는 인문학은 오히려 약화시키고 모든 학생들에게 회계학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성균관대의 핸드폰 학과와 같은 주문형학과라든지 바로 직업으로 전환될 수 있는 학과가 여전히 성행하고 있고, 높은 취업률을 자랑하며 학생들을 유치하고 있는데 과연 그 취업의 지속율은 어떤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또한 우리 학생들이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지식의 양은 많이 주입되어 나오지만, 그 지식의 운용능력은 현저하게 약한 상태에서 대학과 사회로 진출되고 있는 것 역시 대학과 사회가 고민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이유입니다.

이런 시대 속에서 아이들은 먼저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최대표님은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경쟁력은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과 사회에 대한 사랑이 있다면 무엇이든 만들어내고 극복해낼 수 있지만, 사랑이 없다면 감당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의미와 가치를 찾아내고 추구하는 능력이 오히려 스스로 공부에 대한 동기를 갖고 능동적인 인재로 자라갈 수 있게 합니다. 지금 당장 학업에만 집중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과제라는 것이지요.

아이의 삶의 주체는 부모가 아닌 바로 그 아이입니다. 부모는 언제까지 아이를 관리할 수 있을까요? 아니, 실제로 관리가 가능하긴 한 걸까요?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아이가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스스로 자기의 삶에 주체로 자라갈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도와주어야 할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 부모가 아이에게 롤모델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모가 먼저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 공부가 부모를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이에게 얼마나 긍정적인 자극을 줄 수 있을까요? 최영우 선생님처럼 커피나 목공, 그리스어 공부도 좋고, 요리나 인테리어, 화초 기르기 같은 공부도 좋습니다. 공부가 단순히 사회에 진입하기 위한 과제 같은 것으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지적 호기심과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즐거운 활동으로 여겨진다면, 현저하게 떨어지는 우리나라 아이들의 학습에 대한 욕구도 커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배움을 통해 나의 세계가 확장되는 것임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사진: 강사님이 직접 만드신 목공 의자^^>

부분전체의 교육적 의미

지식의 구조와 학습에 있어서 부분과 전체에 대한 이해를 하면 기쁨과 흥분이 있는 공부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기독교적 고전 교육이라는 책에 나오는 Trivium(삼학제)라는 개념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지식을 세 가지 단계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는데, 먼저 반드시 이해하고 암기해야 하는 지식의 습득 구조, 원리인 문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구성 요소로 된 지식들을 통합하고 구조화할 수 있는 힘, 창의적으로 관계성을 생각하고 확장해가는 힘으로 나타나는 논리학. 마지막으로 이러한 자기 안의 지식들을 얼마나 잘 표현해 낼 수 있느냐에 대한 수사학입니다.

문법은 습득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면 그 이해가 쉽다고 합니다. 먼저 교사가 지식의 구조, 그 문법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구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너는 배울 수 있어라는 확신을 주는 가운데 단순하게 가르칠 필요가 있습니다. 또 문법 간에 연결부분을 자극하여 하나를 가지고 다른 것을 이해하도록 하는 융합과 인식확장의 가능성을 키워줘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수사학의 원천은 사랑이라고 하셨는데요.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상대에게 표현해야 할 때,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애정과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 있다면 그 표현이 더욱 풍성해질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합니다.

우리가 접하는 세계는 넓으나 우리가 발 딛고 서있는 곳은 제한적인 것과 같이 우리는 부분을 통해서 전체를 만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체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부분에 헌신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모든 것에 대한 호기심을 갖는 것이 필요하고, 현재 이 시간에 주어진 일에 대해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정 부분의 삶에 헌신하면서도 전체와 화해하며 살아갈 수 있는 힘, 부분에 속해 있으면서도 전체와 소통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내가 직접 감당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을 갖는 여유, 이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내가 할 일은 무엇이고 나를 위해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지를 인지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면 더욱 행복해질 것입니다.

앞서 말한 유동적인 사회에서 유일하게 안정감을 주는 것은 삶의 태도와 가치입니다. 세상에 대해 긍정하면서 겸손과 이해의 태도로, 나의 것이 아닌 것을 기뻐할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 부분에 속해 있으면서 전체와 소통하고 누리는 비결입니다.

드러냄의 교육을 위한 모색

커피는 열을 가함으로써 그 맛과 향을 드러냅니다. 참기름은 압착, 짜야지 맛과 향이 드러나고, 발효 음식들은 시간이 그 맛과 향을 드러냅니다. 모든 것에는 자신의 맛과 빛을 드러내는 고유한 방식들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열심과 성실로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이해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 안에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 그리고 이렇게 하면 그 아름다움이 드러날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아이들 역시 고유의 본질과 성품의 그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은 따로 또 같이 자라나면서 단단해져갑니다. 부모만이 아니라 때로는 자연이, 때로는 시간, 음악, 지적 호기심 등이 아이를 붙잡아 줍니다. 그런데 부모가 성급함으로 시간이 필요할 때 열을 가하거나, 열을 가해야 할 때 짜는 등 그 아이의 속성에 맞지 않는 방법으로 다룰 때가 있습니다. 모든 사물과 사람은 자신의 빛을 드러내는 그들만의 길이 있습니다.

현상학적 해석학의 가다머(Gadamer, 1900~2002)는 예술작품을 가장 잘 감상하는 것은 내가 변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자녀들을 바라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가 변하는 것이 아닐까요? 아이들이 부모에게 갖는 가장 큰 분노가 부모는 변하지 않으면서 자신에게만 변화를 강요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교사가 아이들에게 영향을 받아 변하게 되면 수업은 엄청난 역동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교사가 높은 곳에서 무언가를 주입하려고만 한다면 아이들은 뛰쳐나가게 될지 모릅니다.

그리스어 오이코도메(οικοδωμϵ)는 건축용어로 세워나간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드러남은 세움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이해를 얻게 되면 아이들은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삶의 의미에 대한 인정을 하게 되면 주체적이 됩니다. 아이들의 본성,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쓰러져있는 아이들이 스스로 설 수 있게 세워줌으로 그 아름다움이 세상에 드러나도록 도와주는 것이 최영우 대표님께서 말씀하신 드러냄의 교육입니다.

수줍은 캠페인 담당 신입간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