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햄스터를 왜 갖다 주지 않았느냐고 아들에게 소리를 쳤다.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는데 벌써 며칠째 약속을 안 지킬거냐고... 일기를 쓰던 아들이 슬픈 얼굴로 자리에 누웠다. 처음에 한 마리로 시작된 햄스터가 두 마리가 되면서부터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수가 늘어 났다. 친구들에게 주기도 했었지만 더러 죽거나 얼마 안 있어 되돌려 받기도 했다. 돌아온 햄스터는 보기에 처참한 경우도 있어 우리는 더 이상 그 충격을 견딜 수 없어 처음에 샀던 가게에 가져다 주기로 한 것이다.

“주어와 서술어만 있으면 문장은 성립되지만

그것은 위기와 절정이 빠져버린 플롯같다.

‘그는 우두커니 그녀를 바라보았다.’라는 문장에서

부사어 ‘우두커니’와 목적어 ‘그녀’를 제외해버려도

‘그는 바라보았다.’는 문장은 이루어진다.

그러나 우리 삶에서 ‘그는 바라보았다.’는 행위가

뭐 그리 중요한가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은

주어나 서술어가 아니라

차라리 부사어가 아닐까

주어와 서술어만으로 이루어진 문장에는

눈물도 보이지 않고

가슴 설레임도 없고

한바탕 웃음도 없고

고뇌도 없다

우리 삶은 그처럼

결말만 있는 플롯은 아니지 않은가.

‘그는 힘없이 밥을 먹었다.’에서

중요한 것은 그가 밥을 먹은 사실이 아니라

‘힘없이’먹었다는 것이다.

역사는 주어와 서술어만으로도 이루어지지만

시는 부사어를 사랑한다. “ (박상천)

이수광 선생님의 강의 중 인용되었던 시다. ‘그는 힘없이 밥을 먹었다’에서 중요한 것은 그가 밥을 먹은 사실이 아니라 ‘힘없이’먹었다는 것이다. - 그 문장의 감춰진 행간 사이에는 필연 무슨 사연, 스토리가 있는 것이다. 헤어짐이든, 절망이든 외로움이든 .... (성취지향적인) 역사는 이유보다, 사연보다 결과를 중요시한다. 감추어진 눈물은 기록 밖에 있는 것이다.

역사는 주어와 서술어만으로도 이루어지지만

시는 부사어를 사랑한다.

아무래도 내 삶은 서술어 중심이 아니었던가. 부속성분, 빼 버려도 문장의 기본 골격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는 부사어는 그 얼마나 가볍게 다루었던가.

‘다니엘핑크’의 정의를 포함한 미래인재의 조건 중 <배움에 대한 열린 태도>, 지적 생성력의 공식, 노동철학을 새롭게 한 장인적 교사.... 이 모두 얼마나 가슴 뛰게 하는 것들이었는지...

‘실패경험이 지지되고, 공공하는 체험, 삶의 성찰 기회가 풍부히 제공되고 사회 사상에 대한 질문이 풍부한 학교’ 이 모두는 학교란 말 대신 그러 그러한 부모라 해도 어울릴 것 같다. 실패경험을 지지해주고 공공하는 체험과 삶을 성찰하게 도와주며 사회 사상에 대한 질문이 풍부하게 이끌어 주는 인간적 질감의 부모 - 결국 ‘나’의 문제겠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