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민교육/등대지기학교

[2강 베스트소감문] "닉네임을 전도사로 바꿀까 보다!" (티벳의 영혼님)


2강 김승현 선생님의 ‘아깝다 영어 헛고생’


오늘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가는 길을 제대로 찾아갔다. 아마 8강까지 ‘뜻밖의 여행’을 마치고 나면 내 아이와 내가 가야할 길도 확실히 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사무실에 올라가니 첫 강의 날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반겨주는 분들, 맛있는 밥. ‘이 밥을 먹기 위해서라도 결석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히히.

 

 

 

지난주에 참석하지 못한 분들이 몇 분 더 오셨고, 옆 자리에 앉은 분과 인사를 나누니 가까운 동네 분이다. 아, 반갑다!


한 선생님이 생활기록부에 쓸 사진을 찍자고 카메라를 들이대신다. 오메, 밥 먹고 거울도 안 봤는데, 이에 고춧가루라도 꼈으면 정말 간지 안 난다. 미리 말씀을 하면 의상도 신경을 좀 썼을 텐데....ㅋㅋ. 가진 거라곤 미모밖에 없는데 아~~~~~~~~~~~~~~ 어쨌거나 섹시 표정 몇 포즈 연출하고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참가자 명단 주신 걸 보니 얼굴이 아주 쬐맨하게 나와서 뭐 그닥 신경 안 써도 될 뻔했다. ㅎㅎ.


윤지희 선생님이 오늘 강사인 김승현 선생님을 소개해 주신다. 지난주 김성천 선생님을 소개할 때는 거의 ‘동남아를 순회공연하고 막 돌아온 우리의 카수’ 소개하드끼 찬사를 하셨는데, 김승현 선생님 소개는 참 특별했다. 내가 김승현 쌤이라면 감동의 도가니탕에 빠져 눈물이 났겠다. 윤지희 쌤이 페북에 쓰셨던 김승현 선생님에 대한 글을 읽어주셨는데,,,,집에 와 다시 찾아 읽으니 김승현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쩌어~~~배꼽 아래서부터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참 감동이다.

 

 

 

나이 마흔 넘어 교육운동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김승현 샘이다.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쏟을 곳을 찾아 10여년을 넘게 방황하다, 3년 전 우리 단체와 만나 교직도 휴직하고 사무실 상근으로 일한지 2년이 돼간다.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는 분, 좋은 사람 만나면 권커니 잣커니 술잔 기울이고 싶은 마음 꾹꾹 내리 누르고 노트북 싸 짊어지고 귀가할 때가 하루 이틀이 아니다. 평생 A4 두장 이상 글을 써 본 적이 없다던 분이 이곳에서 그의 손으로 완성된 글이 수백 쪽이다. 수십 회의 토론회에서 쏟아지는 정보를 주소를 찾아 정렬하고 내부 집단 토론의 지난함을 받아내 하나의 논지로 섬세하게 풀어내는 집요함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가 자신만만하게 세상을 향해 이 거대한 대학체제대안이란 도전장을 내놓기 어려울 것이다. 그 자신도 자신 안에 그런 재능이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고백하니, 누구도 알지 못한 가운데 이 땅의 교육 고통을 끝내려는 하늘의 예비함이 아니고 무엇일까... 3년 전 단체 카페에서 우연처럼 조우했지만 서로 한눈에 알아 챈,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을 위한 필연적 만남이라 나는 믿는다. (작성자 윤지희)

 

히야~ 참 아름다운 만남이다. 나도 이런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과의 만남이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 믿는다.

 

지난 주 김성천 선생님 강의는 울다 웃다 했지만 우리 교육 현실에 답답하고 안타깝고 그랬다. 우리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는데 힘을 보태자, 뭐 그런 결심을 하게 한 강의였다. 헌데 오늘 김승현 선생님 강의는 시종일관 유쾌했다. 참참 아니다, 어린애 나오는 “잠 쫌 자자!”는 아동학대 동영상 하나가 있었지. 일부러 웃기자고 만든 건지, 아님 실제 상황인지 알 수 없는 영상을 보며 ‘저 아이가 제대로 숨 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몇 달 전 지지 방문한 유성기업 파업농성장에 걸려있는 현수막이 오버랩 됐다. “밤은 자라고 있는 것이지 일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 우리 아이들에게 “밤은 자라고 있는 것이지 공부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강의를 들으며 중 1짜리 딸내미 영어교육에 대한 생각이 조금 정리가 됐다. 그동안은 그저 ‘지 알아서 하겠지’ ‘못 하면 지 팔자지 뭐!’ 그런 방임 수준이었는데, 이제는 어떤 방법을 제시는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강의들은 내용을 내가 늘어놓는 것보다 이번에 나온 ‘아깝다! 영어 헛고생’ 책자를 한 번 정독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꿈이 ‘부흥전도사’였던 적이 있었다. 보수적인 예수교 장로회 소속 교회를 다녔는데, 여자는 목사가 될 수 없다고 해서 차선으로 그 꿈을 택했었다. (실은 교회 전도사님을 좋아했다는...ㅋㅋ. ) 암튼 그 꿈이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아마 이 나이에 다시 전도사가 되는 팔자였지 싶다. 오늘부터 난 ‘아깝다 학원비!’ ‘아깝다! 영어 헛고생’ 전도사가 될 것 같다. 닉네임을 ‘전도사’로 바꿀까 보다. 푸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