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가정의학과 전문의입니다.
오늘 제가 진료하는 곳에 고3남자아이가 어머니와 같이 방문했습니다
그 아이가 말하는 증상은 속이 불편하고 피를 토했고 변 색깔이 까맣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변 색깔이 까맣다라는 증상은 어떤 의사라도 주의깊게 바라보게되는 증상입니다.
왜냐하면 위장관에서 출혈이 있을 경우 나타날 수 있는 대표적인 증상이기때문이죠.
위장관의 출혈이 있다는 것은 대표적으로 위궤양이나 위암에서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기 때문에 어느 병 하나도 놓쳐서는 안되는 중요한 병을 시사하는 증상입니다.
그런데, 이런 증상이17살 짜리 남자아이한테 생겼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안되는 상황이기는 했습니다만 설마하는 생각에 내시경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내시경을 통해 바라본 17세 남자아이의 위점막은 한마디로 처참했습니다.
의과대학 시절 책으로만 보았던 급성 스트레스로 죽은 실험쥐의 위점막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여기저기에 출혈이 있었던 흔적과 십이지장에는 생긴지 얼마 되어 보이지 않는 커다란 궤양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17살 소년에게 출혈성 위염과 십이지장 궤양이라....불가능한 진단은 아니지만 처음으로 십대 소년에게 붙여보는 진단명이었습니다.
“많이 힘들었니?”
“.........”
아이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만 구부정한 그 아이 어깨위에 보이지 않는 삶의 무게가 느껴져 더 이상 질문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고3이라 새벽 1-2시에 집으로 돌아와 배가 고프니 폭식을 하고 잔다는 얘기, 인스턴트 음식을 주로 먹을 수밖에 없는 그 아이의 생활 패턴, 성적으로 인한 심리적 스트레스에 대한 얘기를 들으며 제가 본 내시경 소견이 충분히 가능하겠구나 싶었습니다.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며 아이의 힘을 북돋우시려는 어머니를 보며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아들의 상처를 대충 동여매고 다시 나가서 싸우기를 독려하는 비장함이 느껴져 허탈한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아이에게 과연 궤양 치료제와 소화제를 처방해주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싶었습니다. 당장 괴로운 증상만 해결되면 또 다시 경쟁에 내 몰릴 이 아이에게 의학적 치료는 문제의 본질에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음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컴퓨터에 처방을 입력하며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지금은 제가 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이정도의 약뿐이지만 언젠가는 이 문제의 진정한 원인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자가 될 수 있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이 땅의 아이들의 연하디 연한 목구멍에서 피를 토하게하는 이 지독한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모두가 깨달을 수 있게 해달라고,. 그리고 그 치료에 개입하여 주시기를 원한다고 말입니다.
* 해드림 회원님의 글입니다.
http://news.noworry.kr 의 '사교육걱정불안나눠요'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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