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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걱정없는세상/회원의 이야기

[이공훈] 어떤 갈등 - 교육운동하며 겪었던 일

이율곡선생의 사당이 있는 자운서원을 가 보았다. 옆을 지나다가 우연히 들른 것이지만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율곡선생 묘소와 신사임당 묘소도 있어 함께 참배했다. 조선 성리학의 거봉인 율곡선생이 그 곳에 잠들어 있을 줄은 몰랐다. 광해군이 내린 자운서원이란 사액과 함께 사당도 잘 조성되어 있었고 조경도 매우 뛰어나고 공간도 넓어 마음이 흡족했다. 걷는 즐거움에 더해 율곡선생의 생애를 생각해 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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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운동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하는 일이 수도 없이 일어난다. 만나면 반갑고 헤어지면 아쉬움이 남는다. 그저 단순한 만남과 헤어짐이 아니라 뜻이 같아 동지같은 걸 느낄 때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고 헤어질 때면 앙금도 남고 때로는 적의를 느낀다. 그럴 때면 슬픔이 오래간다. 개인간이 아니라 단체간에 일어났을 때에는 더욱 그렇다.

흥사단에 참여한 후 이어서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에 흥사단 대표로 참여해 약 2년간 활동했다.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는 전교조와 참교육학부모회가 중심이고 고만고만한 교육운동단체 20여개가 참여해서 만든 단체이고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사회에 그런대로 제기한 단체이다. 이런 모임에 참여함과 동시에 학벌없는 사회에도 참여했다.

2000년 11월이었는데 그 단체는 출범은 1999년이고 2000년 9월부터 공식적인 활동을 했다. 나는 그곳에 공식활동한지 2달정도 후에 참여한 셈인데 이듬해인 2001년 4월에 분열되었고 학벌없는 사회만들기라는 단체를 5월에 새로 창립했고 이 모임 설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그런지 8년이 된 셈이다.

학벌없는 사회가 공식활동에 들어간 후 이내 ‘학벌없는 사회’와 ‘학벌없는 사회만들기’ 두 단체로 나누어졌는데 두 단체 모두 우리 사회가 학벌사회라는 점을 우리 사회에 제기한 공로가 있다고 본다. 그 전에는 우리 사회를 학벌사회로 규정한 바가 없다. 그러나 그 이후로 학벌사회라고 하는 공론이 형성되었고 여러차례 세미나가 열렸으며 언론도 기사화했고 저서도 여러권 나왔다. 물론 이제는 학벌사회라는 말을 일반사회와 지식인들이 스스럼없이 사용할 만큼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학벌사회를 시정하기 위한 대안에 합의가 이루어졌다거나 치열하게 고민한다거나 사회적 추동력을 얻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 그런지 학벌사회라는 말에는 쉽게 공감하면서도 그를 시정하기 위한 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다들 공범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아니면 우리사회를 진단하는데 미숙하기 때문일런지도 모른다.

교육운동하면서 단체에 가입해 활동한 건 얼마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사단 활동을 중지한 것도 마음에 앙금이 남고 교육개혁시민운동에서 손을 뗀 것도 그렇고 학벌없는 사회가 분열한 것도 오래동안 걸린다.

특히 학벌없는 사회와 학벌없는 사회만들기로 분열할 때 파열음은 매우 컸다. 다 같이 학벌없는 사회만들자고 의기가 투합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4개월만에 두조각이 나면서 서로를 못볼 상대로 대하게 되기까지는 인간적인 고통이 따랐다. 몇 달을 두고 인터넷상에서 싸움이 그치질 않았고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이미 오래전의 일이기는 하지만 그 여파가 아직까지도 가고 앞으로도 언제 활화산처럼 타오를지 모른다.

교육운동진영에서는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으며 안타까워 하는 바이지만 그렇다고 중재도 어려워 보인다. 단순히 인간적 감정에 그치는 것만이 아니라 정책과 비전 그리고 이념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학벌없는 사회'는 독일식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교육에서도 평등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반면에 '학벌없는 사회만들기'는 미국식 자유주의를 지향한다. 이런 차이가 초중등교육에서는 드러나지 않고 별 차이도 없다. 그러나 고등교육에서는 여실히 드러난다. 즉 우리나라 고등교육체제를 어느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인가 하는데서 이견이 드러나는 것이다. 학벌사회를 해소하기 위해서 고등교육을 미국식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독일식으로 할 것인가 하는데서 결정적인 차이가 드러나는 것이다.


고등교육을 크게 나누면 미국식과 독일식으로 나눌 수 있으며 영국이나 일본이나 우리나라는 절충형이다. 즉 미국식과 독일식이 함께 섞여 있는데 이는 그런 절충식이 이론적으로 정립된 것이 아니라 역사적 현실에서 수동적으로 생겨난 것이고 그만큼 이론적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과연 학벌사회를 해소하기 위해서 미국식으로 고등교육을 시장에 맡기고 정부는 관여하지 않는게 좋을까 아니면 시장에서 맡았던 부분까지 정부가 흡수해 정부주도로 운영하는 것이 좋을까. 이 부분의 차이는 매우 크다. 그러나 합의가 어렵다. 왜냐하면 이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와 평등주의는 물론 함께 가야 한다. 그러나 서로의 지향점이 다른 이상 모두를 하나의 사회가 함께 같은 비중을 두고 수용하기는 어렵다. 일정부분 상대의 이념을 침식하면서 자기주장을 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이념적 대립은 정답이 있을 수 없는 철학적 문제이기도 하다. 단 어떤 사회를 두고 말할 때 그 사회의 기반이 무엇이었는가를 인정한다면 그에 비추어 선택을 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것도 그 사회의 기반을 문제삼기로 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에 기반을 두었고 그것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동반한다. 따라서 우리사회가 무엇을 기반으로 해서 성립되었는가 하는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건국한지 불과 반세기가 조금 넘었고 그 전의 체제는 우리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았었으니 말할 것이 없다. 그렇다면 불과 반세기의 역사를 가지고 우리 사회를 규정지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하는 반론이 성립할 수도 있다. 또 한반도의 나머지 반은 의심의 여지 없는 사회주의국가이기도 하다.

'학벌없는 사회'의 주장은 이런 전제에서 대학에 대해 국가경영을 주장한다. 우리나라 국립대학이 20%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데 기회가 되는 대로 늘려 궁극적으로 완전국립대학체제를 완성하자는 것이다. '학벌없는 사회만들기'는 정반대이고.

이런 이념적 대립이 함께 하는 동지들 사이에서 일어났고 급기야는 얼굴을 붉히는 사태로 까지 발전하더니 두조각이 났고 이제는 타인보다도 먼 사이가 되고 말았다. 좋게 보면 모두 우리 사회를 위해서 한 일이지만 방향이 다르다 보니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런 싸움이 그래도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는데 초석이 된다면 그래도 참을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런 생산적인데 기여하기 보다 소모적이고 퇴영적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이견이 있어도 상대방을 존중하고 최종적 선택을 사회에 맡기고 그 결과에 승복하면 어떨까. 적어도 학사만(학벌없는 사회만들기)은 그럴 용의는 있다. 사회가 선택하는 것을 거부할 수도 없으려니와 사회발전을 목적으로 하면서 사회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사회가 잘 선택할 수 있도록 자료를 제공하고 공론의 장을 만들고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노력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런 논리도 패배를 예상하는 쪽에서는 수용하지 않으려 한다. 만일 승리를 예상한다면 수용할 것이다. 그러나 패배를 예상한다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저지하려 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기본 구성원리인 다수의 의사와 절차적 민주주의도 그럴 경우 무력해지고 만다.

고등교육체제를 국가가 경영하게 할 것인가 아니면 시장에 넘길 것인가 하는 주장의 차이가 두단체로 분열하게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동지를 적으로 만들었으며 인간적 갈등을 야기했다. 이념이 무엇인지.(이 글은 몇년전에 쓴 것인데 그때 느낀 감정이 지금도 여전한 것같고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고 시차도 느껴지지 않아 다시 올려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