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열풍은 수많은 사회열풍중 하나일 뿐이다.
학교가 문제인건 맞아요. 그러나 학교만 바뀌면 될까요? 입시만 바뀌면 될까요? 아닙니다. 부모님의 사교육 입시 열풍은 부동산, 돈 등 우리사회 많은 열풍중 하나일 뿐이예요. 삶의 형식이 그렇게 굴러가는 것 중에 교육이 있는건데 교육만 가지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선 문제가 풀리지 않아요. 아이들은 사회적 분위기와 사회정신으로부터 배우고 느끼고 해석합니다. 어른들이 정신을 부동산에 바치고 우리 사회의 이런 사회환경의 기형성이 잘못되어 있는데 이런 고민없이 학교만 이야기 하는 것은 언발란스한거죠. 교육현실을 인식함에 있어서 우리 삶의 모습, 꼴에 대한 냉철한 자기 판단이 없으면 아이들은 내 삶을 닮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산입에 거미줄 치는 사회다
산입에 거미줄 치지 않는 사회는 인간망이 살아 있는 사회일 거예요. 내가 부족해도 옆사람에게 의지할 수 있고 옆사람이 나의 결핍을 메워주는 동무인 사회죠. 그것이 가능한게 마을단위에서 함께 어울려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산입에 거미줄 치는 사회예요. 실제로 굶어죽는다고 보면 그러한 관계망이 깨져있는 것이죠. 마을이 사라진겁니다. 그런 마을이 사라졌는데 아이들에게 공동체를 이야기 하면 말을 들을까요? 우리가 산입에 거미줄 치는 사회로 가면 아이들에게 그 많은 좋은 말은 실감되지 않는다.
명절에 세배돈 주면서 공부 잘하란 말 빼먹지 않는다.
출세와 성공, 입신양명만을 전달하는 모유이데올로기가 판을 칩니다. 그런데 엄마만 이러는 것이 아니예요. 할아버지도 명절때 세배돈 주면서 공부 잘하라는 이야기 꼭 해요. 이거가지고 즐겁게 놀라는 이야긴 안합니다. 학교에서도 직간접적으로 저런 메시지를 받아요. 그러다보니 교육의 언어가 실종되고 수능. 대학제도, 명문대 등 특정 시장언어가 지배합니다. 교육 언어의 핵심은 실존, 존재, 자기성찰, 자기발견, 자아가 교육의 핵심언어예요. 아이들과 이야기 할 때 너의 존재 가치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되어야 하는데 학습지가 먼저 들어가죠. 입시를 중심으로 아이들과 부모의 삶이 조직되는 일상생활의 입시화가 되었어요.
자기만 알고 만족하는 논문써서 뭐하나
입시경쟁력이 학교를 지배하는 보편적인 척도가 되었어요. 광주과학기술원의 교수들 논문은 우리대학 어느 논문보다 피인용률이 높아요. 그러면 훌륭한거 아닌가요? 자기만 일고 만족하는 논문써서 뭐합니까. 그 학교가 내년부터 학부생을 뽑는데 저런 보편가가 작동되면 그런대학은 보이지 않아요. 학교에서 의제소멸, 아이들 성장이나 진로에 대해 고민을 안합니다. 교과서만 가지고 이야기해요. 인가관계도 차단되고. 많은 선생님들의 삶이 방과후에 가있는경우가 많아요. 저런조건에서 아이들은 배움의 퇴행을 겪습니다. 많이 배우지만 정작 배워야 할것을 배우지 못하고 자신의 성장 동기를 상실하게 됩니다.
자본주의는 부러움과 부끄러움의 심리기제로 작동한다.
자본주의는 부러움과 부끄러움의 심리기제로 작동합니다. 욕망이 대칭화 됐는데 내 욕망이 채워지지 않으면 욕망을 체운 사람에 대해 부러움을 갖습니다. 그리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도 욕망을 채우지 못하면 이것이 부끄러움으로 바뀝니다. 그래서 무리를 해서 빚을 얻고 차를 사죠. 결국 이 두가지가 결합됐을때 자본의 시장은 굴러가고 돈있는 사람은 여전히 돈을 벌며 터무니없는 자부심을 느끼고 없는 사람은 이유없는 열등감에 빠집니다. 과시적 지위재가 넘쳐나는 속물지배사회가 되는거죠.
전국의 공부잘하는 아이들이 침만 놓고 있다.
분당 일부에서 서울대가 한의대와 경찰대 밑으로 내려가는 재밌는 현상이 벌어졌어요. 굉장히 의미있는 변화죠. 그런데 저게 다른 한편으로 그동안에 가지고 있던 것의 강화된 논리거든요. 의예와 한의예 지금가면 굉장히 어려운 형편입니다. 대형병원 아니면 다 문 닫고 있어요. 그런데도 공부잘하는 아이들이 전국에서 침만 놓고 있어요. 불안한 사회기 때문이죠. 서울대 갈 아이들의 부모가 미래의 안정을 원해서 저리로 간거거든요. 경찰대는 취업이 100%죠. 우리사회 불안 심리가 얼마나 심한지 아이들에게 안정된 직장을 최우선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노래방가서 내노래 안들어주면 난 노래 못하는 사람이 된다.
요즘 교실에 보면 ‘우리반 친구 말고는 들어오지 말라’고 써있어요. 친구 관계는 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입니다. 내가 있는건 누군가의 친구이기 때문에 내가 만들어 지는 거거든요. 모든 사람의 자아는 스스로가 아닌 옆사람을 통해 만들어 지는 것이기 때문이죠. 노래방가서 내가 노래 부르는데 모두 화장실가고 책보며 노래 고르면 난 노래 못하는 사람으로 자아가 형성됩니다. 내가 형성되는건 타인에 의해서인데 요즘 아이들은 이걸 차단하고 있어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한국사람들 직선의 논리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에겐 신화가 떠돌죠. 좋은 점수 맞고 명문대가서 일류대학에 가고면 노후가 보장될꺼라는 직선의 믿음이 그것이죠. 그러나 삶은 그렇게 가지 않아요. 이런 직선의 사고가 적용될수 있는 아이의 빈도는 매우 적어요. 그런식의 사고에 잡혀 있으니 일상생활의 입시화, 배움의 퇴행, 인습적 교육관의 일본화가 나타납니다. 결국 교사는 학생에 부적응 하고 학교는 시대에 부적응 하죠. 부모가 지금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아이를 조력해야 하는데 과거의 책 외우는 방식으로 조력하고, 교육열을 발동하긴 하지만 아이의 성장엔 전혀 도움이 안됩니다. 우리 신념체계에 있는 문제를 끄집어내어 분류해야 합니다.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교육을 위해 골몰하고 있는 나 스스로 해야 하죠.
배움의 단계에 들어간 사람은 스스로 외로움을 느낀다.
배움의 본질은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고 자기 주변의 나와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우리사회를 살아감에 있어서 나의 실존은 나만이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을 아는것 아닐까요. 그래서 배움의 단계에 들어간 사람은 스스로 외로움을 느낍니다. 왜냐면 나로부터는 도망갈 수 없기 때문이죠. 이걸 느낀 다음부터 옆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부모님이 아이를 가르치는 궁극적 목적은 내가 없는 세계에서도 자기 스스로 인간의 품격 값을 하면서 살게 하는 배움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잖아요. 그러면 학교에 그걸 요구해야 해요. 실존의 고민을 자극하고 배움의 즐거움이 있는 공적개념의 학교를 상상하는 것에서 교육의 변화가 출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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