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송주민 기자]
12일 공식출범한 시민운동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 송주민
"네 식구 살림비용은 100만원 정도인데 고3 아들 사교육비만 150만~200만원이 듭니다. 이젠 그냥 체념하고 '6개월만 남았다, 버티자'는 생각도 들지만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죠. 5~6년 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어떻게 해야 맞는 건지 정답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고요. 정말 서글픕니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조언을 해 줄 수도 없어요."

고3 아들을 둔 학부모 안병화씨는 눈시울을 붉히며 이같이 말했다. 안씨는 "아들이 정말 똘망똘망하고 귀여웠는데 이제는 과묵해지고 완전히 지친 모습이 되어 버렸다"며 "항상 아들을 보며 마음 속으로 '너와 나 사이에 성적만 없었더라면 우리 관계가 이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라고 가슴 졸이곤 한다"고 말했다. 안씨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주부이며 그의 아들도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청소년이다. 이와 같이 '사교육 천국'과 '입시지옥'이라는 상황이 평범해져 버린 우리 사회에서 "우리가 하지 않으면 더 많은 아이들이 죽어가야 한다"고 외치며 신발끈을 조여 맨 사람들이 있다. 12일 저녁에 출범한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공동대표 송인수, 윤지희) 회원들이 바로 그들이다.

"'입시 전쟁' 끝내고 '동반자' 되도록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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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걱정없는세상' 창립행사에서 합창을 하고 있는 한성여고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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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행사는 이날 저녁 7시부터 서울 대학로 동숭교회에서 진행됐다. 영화감독 류승완씨, 방송인 김제동씨, 만화가 박재동씨 등 11명의 공동초청인과 200여명의 초청인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이 모임은 송인수 좋은교사운동 전 대표와 윤지희 교육과시민사회 대표가 중심이 되어 뜻을 같이한 사회 각계각층의 인사들과 더불어 창립하게 됐다. 정회원과 후원회원을 합쳐 100여명의 회원으로 시작하는 이 모임은 특정 교원단체나 시민사회단체에서 주도하는 운동이 아니다. 학부모·교원부터 시작해 직장인 중고등학생들까지 다양한 시민들이 함께 동참해 운동을 벌여나갈 예정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이 운동은 학부모 운동만도 아니고, 교원 운동만도 아니다, 또한 사교육과 대립 갈등하는 단선적인 운동도 아니며, 좌우 이념적 지표에 충실한 교조적 운동도 아니"라며 "더 이상 교육을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양심적이며 합리적인 선택을 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열린 개방적 운동"이라고 밝혔다.

이어 "세상의 어떤 문제도 피해 당사자들이 침묵한 채 해결된 일이 없다"며 "국민들은 방관자들이 아니라 문제 해결의 주인이라는 문제의식으로 이 운동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송인수 공동대표는 "소수의 전문가운동이 아니라 대중운동을 하겠다,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운동을 할 것"이라며 "사교육 문제를 너른 광장으로 끌고 나와 우리가 왜 이런 잘못된 일을 반복하고 있는지 위로하고 생각하면서 서로가 경쟁자가 아닌 동반자로 여길 수 있도록 해 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송 공동대표는 "한 해에 200명씩 지난 1968년 이래로 약 8000명의 아이가 입시로 자살을 했는데 우리는 문제를 정치권과 힘있는 사람에게만 풀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하지만 법과 제도는 원래 굉장히 보수적이며 아무리 진보개혁적인 정치체계라도 현실의 문제와 법 앞에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송 공동대표는 "먼저 새로운 현실이 등장하여 기존 질서에 대해 순응하지 않고 버티는 실천에 의해 조금씩 자극되고 변화되는 것"이라며 "현실 속에서 바꿔나가는 과정이 없으면 새로운 법과 제도는 있을 리 없다"고 말했다.  송 공동대표는 또 "사교육업자랑 대결하자는 단선적인 운동이 아니며 아이들과 부모에게 가해지는 살인적인 전쟁 자체는 끝내자는 운동"이라며 "입시 전쟁을 유발하는 학벌사회, 서열주의, 간판숭상문화 등 정교한 톱니바퀴 속에서 굴러가는 괴물과 같은 것들에 맞서자는 근본적인 운동을 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촛불' 현장처럼 마음을 모아가면 새로운 변화 가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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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걱정없는세상' 창립행사에 참석한 방송인 김제동씨와 영화감독 류승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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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 초청인으로 참석한 만화가 박재동씨는 "사실 대안이 쉽지 않은 문제"라며 "하지만 최근 광화문 촛불 현장에서 새로운 문화를 경험했듯, 이런 식으로 마음을 모아가고 실천해간다면 이 운동이 어린 학생들 지핀 촛불처럼 우리 사회를 변화시켜내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손봉호 동덕여대 총장은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가계지출에서 절대로 줄일 수 없는 것이 사교육비라고 한다, 이는 광우병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 같다"며 "송 선생, 윤 선생이 당장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안다, 해결할 수 없는 일을 시작하나 정말 장한 일이란 생각이 들고 나도 적극적으로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창립 행사에는 방송인 김제동씨와 영화감독 류승완씨도 참여해 특유의 입심을 발휘했다. 김제동씨는 선생님들이 "학교에 놀러 왔어?"라고 물으면 "예"라고 답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는 "어렸을 적 교사가 꿈이었다, 대안학교를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고 아마 3년 정도면 추진될 것 같다"며 "아이들이 뛰어놀고 어울리는 문화, 일본식 왕따 문화가 아니라 조금 못해도 꼭 끼어서 같이 하는 깍두기 문화가 살아있는 교육 현장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전했다.

류승완 감독은 "많은 선생님들이 오는 자리라서 부탁을 드리러 왔다, 내 자녀가 셋인데 이 아이들에게 '영어를 못해도 잘 살 수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교육을 시켜주길 바란다"며 "우리 아이는 대안학교를 다니고 있고 사교육 걱정이 없지는 않지만, 여전히 한글이 서투르고 '망태기'의 존재를 믿는 우리 아이들도 먹고살 수 있는 교육을 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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