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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걱정없는세상/회원의 이야기

[정병오] 소명을 따라 사는 삶


“아빠, 나는 아직까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친구들 중에는 자기가 무엇을 전공해서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 매우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는 친구들도 제법 있는데, 나는  솔직히 문과와 이과 중에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조차 모르겠어.” 올해 고등학생이 된 큰 딸이 하는 이야기다.


꿈이 없던 아이

사실 나도 그랬다. 비록 문화적 자극이 없는 시골이긴 했지만 그래도 친구들 가운데는 명망있는 권력자나 학자가 되어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꿈을 말하는 친구도 있었고, 인기있는 전문직이 되어 집안을 일으키겠다는 현실적인 꿈을 이야기하는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분명한 자기 확신을 가지고 미래의 꿈을 이야기하는 친구들을 부러워할 뿐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신있게 다가오는 것이 없었다. 심지어 함께 중고등부 활동을 열심히 하던 친구나 선후배 가운데서 목회자나 선교사가 되겠다며 복음전도의 열정을 토로할 때도 그 친구 못지않게  교회 활동에 열심이던 내게는 왜 그런 확신이 주어지지 않는가 하는 한편의 부러움과 다른 한편의 의아함이 들뿐이었다.

고1 말 문과와 이과를 선택할 때도 미래의 진로가 아닌 수학이 약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문과를 선택했고, 서울에 있는 명문대학에 한 명이라도 더 합격을 시키겠다는 고등학교 진학 정책의 결과로 사범대학에 진학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진학한 과가 인기학과가 아니라는 것으로 인한 열등감과 갈등은 있었지만, 명문 대학이라는 간판이 주는 후광에 안주하고 있었다. 고등학생 때까지 그러했듯이 그냥 열심히만 하면 되겠지 라는 정도의 생각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하지만 대학의 상황은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삶을 용납하지 않았다. 우선 전두환 군부 독재에 저항하기 위해 보장된 삶의 자리를 포기하고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자와 농민의 삶 한 가운데로 자신을 던지던 당시 캠퍼스 운동권의 분위기는 그 핵심에 들어가 있지 않던 나같은 학생에게도 큰 차원에서 삶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었다. 내가 몸담았던 기독동아리가 주는 메시지도 내용상 차이는 있었지만 더 분명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더 혁신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를 염려하고 나를 위해서 인생을 구상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감사하게도 복음 안에서의 헌신은 운동권이 요구하는 헌신과는 그 헌신의 기반이 달랐다. 운동권이 요구하는 헌신은 오직 내 속에 있는 의와 당위에 근거한 헌신이었다. 그래서 이 헌신 앞에서 많은 친구들이 오직 자기의 힘만으로 자기를 넘어서야 하는 그 싸움이 너무 힘들었고, 따라서 그 과정에서 자신과 주변이 겪는 아픔과 상처가 너무 커 보였다. 그리고 그 헌신의 벽을 넘어서지 못한 자들이 겪는 좌절의 상처도 커 보였다.


복음 안에서의 헌신


하지만 복음 안에서의 헌신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와 힘이 있었다. 우선 하나님은 내가 어떤 모습이든 무엇을 하든 성공하든 실패하든 관계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내 속에 있는 모든 열등감과 우월감,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염려를 다 날려버리고 참 자유함을 가져다 주었다. 여기에 더하여 하나님은 나의 미래를 보장해 주셨다. 하나님이 내 인생과 언제든지 함께 하시며 지키시고 보호하시겠다는 것이었다. 특별히 내 인생이 하나님의 크신 계획 아래 있으며, 내가 살아왔던 모든 과정과 앞으로 살아갈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음에 대한 깨달음은 이전의 내 삶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해 주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는데 큰 힘이 되었다.


물론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복음 안에서의 헌신에도 버려야 할 것들이 많았고, 나의 욕심과 주변의 기대, 미래에 대한 염려를 넘어서야 하는 것이기에 아픔도 있고 싸움도 있긴 했지만, 운동권 친구들의 헌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자유함과 기쁨이 있었다.


소명의 자리에 있지 않은 것은 다 죄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나를 드리는 과정은 내 삶의 문제에 대한 완벽한 해답이 아니라 출발점이었다. 육체를 입고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과 관계 속에서 살아야하는 인간이기에 어디서 무엇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고민으로 가득 차있던 대학교 3학년 겨울수련회, 당시 강사로 오셨던 정근두 목사님(현 울산교회 시무)에게 당돌한 질문을 던졌다.


“목사님, 젊은이가 한국 교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소명 없이 신학교 안 가는 일입니다.”


어쩌면 그 동안 살아왔던 내 전 삶과 대학 3년 동안의 고민이 압축된 그 심각한 고민에 대한 대답으로는 너무도 가벼운 답변이었다. 하지만 그 답변은 내 어깨에 지나치게 들어가 있는 힘을 빼고, 너무 추상적인 수준에 있는 내 고민을 현실에 안착시켜주는 일종의 선문답이었다.


어찌 신학교 뿐이겠는가? 하나님이 가라는 곳에 가고 하나님이 있으라는 그 곳에 있는 것, 그것은 군사로 부름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이 아니겠는가?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이듯, 소명의 자리에 서 있지 않는 것은 다 도피요 죄라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명제였다. 이후 ‘소명’은 내 삶과 고민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소명이란 무엇인가?


내 삶을 소명에 초점을 맞추고 나니 하나님이 지금까지 내 삶을 통해 경험하게 하고 고민하게 했던 것의 의미가 보다 분명하게 해석이 되었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과 주시지 않은 것이 훨씬 쉽게 구분이 되면서 받아들여졌다. 말씀과 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인도가 조금씩 분명해지고, 하나님이 내 삶의 문을 닫을 때 기다리는 법과 하나님이 아주 미세하게 열어주시는 길을 분별하는 법을 배워가게 되었다.


대학 시절 처음 소명을 고민할 때는 내 관심이 ‘직업’ 혹은 ‘사역’의 영역에 한정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소명을 따라 살아가는 몸부림이 진행되면서 소명은 단지 직업이나 사역의 영역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내 전 삶을 포괄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를 어둠으로부터 빛으로, 죄로부터 의로 불러내셔서 하나님이 정하신 분량에 이르기까지 직업과 결혼, 교회는 물론이고 시민으로서의 삶과 모든 일상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부르시고 인도하시며 그 과정 속에서 자신과 긴밀하게 교제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명은 단회적인 과정이 아니라 지속적인 과정이라는 것이다. 교사로의 부르심도 임용과정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임용 이후에도 끊임없이 나의 한계와 어려움을 보여주시사 자신의 소명을 다시 점검하게 함을 통해 안일해지고 불순물로 오염된 나의 소명을 정제하시며, 소명을 보다 잘 감당할 수 있는 새 힘을 사모하게 하시며, 이전에 받은 소명을 새로운 시대와 변화에 맞게 한 단계 발전시키신다. 물론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소명으로 인도하기도 하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속적인 부르심이 직업의 영역 외에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일어남은 물론이다.


아이에게 소명과 관련된 이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 과정에서의 차이는 있겠지만 내게 허락하셨던 소명의 길을 큰 딸에게도 허락하시며 인도하실 것을 믿으며, 그것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