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대표 MC하면, 몇 몇의 얼굴이 떠오를 것입니다. 최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도 MC하면 바로 이분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데요, 그 이름도 당당한 채! 송! 아! 열혈 회원님.
올해만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대표 강좌인 '8인의 행복한 직업이야기', '8기 등대지기학교'의 사회를 맡아 보시고, 현재 한겨레 <사교육탈출>이란 인터뷰 꼭지를 책임지고 계신 채송아 회원님을 만나 뵙게되었습니다.
아래의 기사는 이름하여 셀프 인터뷰~ 들어는 봤나, 셀프 인터뷰?
본인이 물어보고 본인이 답하는, 그야말로 진정 인터뷰의 달인만이 할 수 있다는 셀프 인터뷰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통합뉴스레터에 싣게 되었습니다.
채송아의 셀프 인터뷰
내가 열여섯 살이었을 때다. 1년 전 일기장을 다시 들춰보니 중2때 했던 생각을 중3인 그때도 똑같이 하고 있었다. 1년 전 모습에서 변화도 발전도 없이 정체되어 있다는 사실은 나를 큰 충격에 빠트렸다. 사람이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의 오랜 숙제였다.
그러던 지난 가을, 나의 삶이 화학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느끼는 계기가 생겼다. 한겨레신문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공동으로 기획해 온 시리즈 ‘사교육탈출’ 인터뷰 작업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이 일에 인터뷰어로 참여하면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뿐 아니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통해 변화된 나 자신을 스스로 들여다보았다.
Q. 지난 두 달간, 사교육탈출의 인터뷰어뿐 아니라 등대지기학교 8기의 사회를 보았다. 이런 일들이 원래 적성에 잘 맞는 일이었는지? 혹은 뒤늦게 본인의 재능을 발견한 것인가?
A. 외향적인 성격은 부모님께 물려받아 타고 났다. 어려서부터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 그것을 글로 써서 발표하는 것을 좋아했다. 일기를 쓰고, 메모를 하고, 수업시간에도 두서없는 필기에 집착하는 편이었다. 게다가 나는 20대까지만 해도 자기자신에만 관심이 있는 개인주의자라고 생각했는데, 10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람’에게 각별한 애정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덕분에 딸 아이가 3학년이던 해, 전업학부모로 삶을 전환하는 것도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인터뷰어로 신문에 글을 쓰는 일과 강의의 사회를 보는 일은 이러한 나의 재능과 적성을 총체적으로 발휘해주는 일이라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발견했다. 나도 요즘 나 자신에게 놀라 어안이 벙벙하다
Q.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인연을 맺은지도 올해로 만 6년이 넘었다. 어떤 계기로 만나게 되었는지, 그 때의 상황, 심정이랄까, 첫인상이 어땠는지?
A. 전업학부모가 되자마자 이곳저곳에서 열리는 부모교육을 찾아다녔다. 강의를 들을 때면 바짝 각성이 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실천은 쉽지 않고, 생활의 변화는 너무나 더디었다. 뿐인가, 자기 자식 얘기나 드라마틱한 다른 사람 사례를 늘어놓는 강사들의 강의 방식이 답답했다. 그러다 한겨레신문을 통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창단소식을 보게 됐다. 반 년을 손꼽아 기다려 2009년 봄, 등대지기학교 2기를 신청했다. 당시에는 같은 지역에서 함께 모여 듣는 사람이 많을 경우 그룹시청을 하도록 지역모임을 추진하는 방식이 있었다. 그룹시청을 신청하면서, 만약 우리 동네에서 그룹시청이 성사되지 않으면 현장강의를 듣고 싶다고 교육 담당이던 이밀알 간사에게 메일을 보냈는데, 며칠 뒤 전화가 왔다.
“현장강의 신청자가 많아서 지금 좀 어려운 상황이다. 등대지기학교 시청 카페에 지역별로 수강생 소감문 쓰는 게시판이 별도로 있는데, 현장강의 수강 우선권을 줄 테니, 게시판 방장을 해 줄 수 있겠냐? 별 거 아니다. 소감문에 댓글만 달아주면 된다.”는 말에 바로 넘어갔다.(예나 지금이나 귀가 얇다.) 등대지기학교를 들었던 그 해 봄은 행복하면서도 고통스러운 시절이었다. 그때 나의 역할은 그저 지역 게시판 댓글 담당이었는데,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사회와 인간의 변화에 관심이 많은 나의 지향이 교육운동과 일맥상통했나보다.
Q. 전업주부 혹은 전업학부모로 살다가 갑자기 지역모임 장을 맡게 되었는데 특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나?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A.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거대한 공동체성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졸업여행 이틀째 날, 동네사람들끼리 모여서 잘 해보라고 격려하는데, 왠지 해보고 싶었다. (난 윤지희 대표님과 달리 외향적인 사람이다.)
졸업여행 한 달 뒤, 등대지기학교 2기를 졸업한 5명이 우리 집에서 모임을 시작했다. 당시, 딸아이 학교엄마들 모임에 가보면 자기 자식에 대한 걱정인지 자랑인지를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난무하고, 담임선생님이나 다른 집 애들 뒷말하는 분위기였다. 거기에 도무지 적응이 안돼서 일부러 엄마들 모임을 멀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등대지역모임에서 만난 분들은 '말이 통하는 오랜 친구‘를 만난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모임을 주선하는 일이 전혀 힘들지 않다.
Q. 지역모임을 하는게 즐거운 일만 있는 게 아니지 않나? 혹시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면 어떻게 극복했는지.
A. 2011년 2월, 서울에서 전국에 지역모임 등대장을 모아 놓고 지역모임 혁신안을 발표했을 때가 제일 난감했다. 단체에서는 지역모임이 우리 운동의 지역 단위 조직으로 운동성을 갖기를 강권하며 그동안 여건상 모임에 못나왔던 분들을 다시 초대하고 막 졸업한 5기를 합류시켜 판을 키우라고 강조했다. ‘친목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말은 사교육광풍으로부터 아이를 지켜내기 급급한 엄마들이 친목을 도모하는 것을 간신히 이뤄놓은 우리 모임의 성격과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소외당한 기분이었달까.
그래도, 윤지희 대표님이 단 세 명이라도 ‘지극한 정성’을 가지고 깃발을 지키고 있으라 하셨는데, 그 말씀을 내 방식으로 해석하면서 지역모임을 하나 더 만들었다.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에서 일개 부모로 살면서 역동적인 운동성을 갖는 모임을 일구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고 느낀다.
Q. 반면에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또는 우리 단체 이래서 좋아요, 라는 경험이 있지 않을까.
A. 물론 너무나 많다. 외고입시 개선안이 전격적으로 실현됐을 때, 딸 아이가 우리 엄마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이고, 단체에서 엄마를 정신무장 시켜 준 덕분에 자기가 학원에 안다니는 것을 다행이라고 여길 때(심지어 자랑처럼 떠벌리기도 한다.>.<) 서울시교육청이 우리 단체에 섭외를 요청해서 ‘학교장평가단’의 학부모 대표로 참여, 서울시내 18개 특성화고등학교를 탐방했던 경험도 특별하다. 무엇보다 나 자신과 내 자식 하나 잘 키우겠다는 욕심에 안주하지 않고, 나의 직접적인 필요와 맞닿아 있는 공공의 선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하게 해주기 때문에 우리 단체의 활동이 정말 소중하다.
Q. 중학교 2학년 딸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요즘 딸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본인이 몇 점짜리엄마인 것 같은가.
A. 내 딸은 나라는 인간을 근본부터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존재이다. 나는 아이를 키우기 전까지 이토록 ‘나만 옳다고 고집하는 인간’인지 정말 몰랐다.
‘사교육탈출’ 지면에 인터뷰 대상을 취재하고 글을 쓰다보면,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이미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가슴 안에서 떠나지 않고 크게 울리는 것을 듣게 되는데, 이를 통해 아이를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앵무새처럼 읊어오던 아이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공감’한다는 것, ‘존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깨달은 것 같다. 지금도 순간순간 내 아이도 나와 같이 생각하기를, 내 뜻대로 행동하기를 바라는 욕망에 빠져버린다. 그래도 ‘들을 마음이 없는 아이에게 공자님 말씀같은 조언을 늘어놓는 것, 심지어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는 것’은 아이의 행동을 개선시키기는커녕 백해무익하다, 그저 내 감정의 배설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연히 느끼고 있다. 잔소리와 감정격발의 총량 자체가 많이 줄어들었다. 아직 좌충우돌하는 중이라 과연 몇 점짜리 엄마인지는 딸한테 직접 물어봐야겠다.
Q. 자칭 열혈회원이자 핵심회원의 입장에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A. 대학시절, 교육학 시간에 배운 것 중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교육의 목적은 인간을 궁극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운동이 아이가 공부 잘 하고, 제 꿈을 찾아 잘 살기를 바라는 개인적인 소망에서 벗어나 부모 자신은 물론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느리지만 의미있는 변화, 작지만 실질적인 변화를 일깨워줄 수 있는 운동이 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사무실에서 일하시는 젊은 간사님들께 헌신을 요구하기보다 그 분들의 삶에도 변화의 에너지가 전파되었으면, 그 에너지가 각자 하고 있는 일의 동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최근에 정희진 선생의 책을 읽으면서 우리 운동에 내가 정직하게 힘을 더하고 싶게 만드는 문장을 만났다.
“혁명은 사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재정의하는 일이다...
사회운동(대화)은 새로운 관계에 들어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통해 이 세상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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