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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걱정없는세상/회원의 이야기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충북 음성 지역대표 봄꿈 남용식 선생님을 추모합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운동 초기부터 누구보다도 열정을 갖고 이 땅의 입시 사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 서서 함께 해오신 봄꿈 남용식 선생님께서 7월 18일 운명하셨습니다. 남용식 선생님의 지인들은 고인을 "이 땅의 헌신적 교육활동가, 누구보다도 뜨거운 농민운동가, 가슴이 따뜻한 열정적인 진보지식인"으로 기억합니다. 아래는 장례식 2일째 고인의 추모제에서 나도되고파(남형은)님이 낭독하신, 맨발각시(정수경)님께서 고인의 소식을 들으시고 멀리 미국에서 보내오신 추모글입니다.



봄꿈 오라버니,
 
멀리 이국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당신의 부고를 들었습니다. 오늘따라 아틀란타의 햇볕은 어찌나 강렬한지 잠시 눈앞이 아득했습니다. 도로 가에 주저앉아 멍하니 아스팔트를 바라보다 안경알 위로 툭!하고 눈물이 떨어지고 나서야, 당신의 부재가 시리도록 전해옵니다.
 
언제나 가슴 뛰는 삶을 살고자 했던 당신. 세상의 분노와 사랑은 모두 제 일인 듯, 열정적으로 껴안고 한데 뒹굴며 살아왔던 오라버니였기에, 아직도 이 황망함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대체 무엇이 그 뜨거운 심장을 멈추게 했는지, 그간 어떤 고통과 외로움에 아파했는지, 짐작조차 못한다는 거에 가슴을 칩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인연은 그리 오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당신은 그 누구보다 살갑고 정겨운 오라버니였습니다. 나이 마흔 넘어 단박에 혈육 같은 정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그 누구도 아닌 부모란 이름으로 만났기 때문이지요.
 
5년 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주관한 등대지기 학교 졸업식에서 우리는 처음 마주하였습니다. 우리 세대가 겪은 모순과 고통을 더 이상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는 부모 된 자의 마음으로 전국에서 온 학부모들이 촛불을 밝혔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던 아줌마, 아저씨들은 서로가 밝힌 불빛에 마음을 의지하며 하룻밤 사이에 뜨거운 동지가 되었습니다,
 
그날 밤, 당신은 강당을 쩌렁쩌렁 울리는 격정의 목소리로 시를 읊었습니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中)
   


수천 개의 잎을 이끌고 벽을 넘는 담쟁이 잎 하나. 당신의 삶이 그런 담쟁이를 닮았다는 것을 눈치 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감자를 심다 말고 서울로 달려와 회의를 하고 고추를 따다 말고 지역 행사를 진행하는 그 열정은, 우리 앞에 놓인 절망의 강은 함께 손을 잡을 때만이 마침내 건널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시고자 함이었지요.
 
낡은 이데올로기로 조롱 받는 자주와 민주와 통일은 당신에게서만큼은 매 순간의 삶이었고 생명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단 한 번도 소리 높여 자신의 신념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힘없는 부모들이 속절없이 세상과 타협할 때, 당신은 더 열심히 이웃의 아픔과 시대의 문제를 껴안았습니다. 거창한 구호나 원대한 꿈이 없이도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당신을 통해 배웠습니다. 그렇게 당신과 함께 한 시간 동안, 냉소로 시들어가던 제 마음에도 어느덧 파릇한 희망의 기운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오뉴월 뙤약볕이 내리쬐는 고추밭에서 해가 저물도록 노동을 하고 차갑게 식힌 수박 한 조각과 숯불에 구운 돼지고기 한 점 나눠먹으며 도란도란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던 어느 여름, 낡은 트럭을 몰고 눈길을 달려와 밤이 다 하도록 열정적인 대화를 나누었던 송년회의 추억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이웃의 정, 연대의 벅찬 감동을 가르쳐준 시간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봄꿈 오라버니, 지금 어디쯤 가셨는지요? 농약 한번 치지 않고 손수 풀 뽑고 벌레 잡아 키운 저 고추밭은 어쩌고,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는 논배미 잡초들은 또 어쩌라고, 어딜 또 그렇게 허위허위 가시는 건가요? 잘 키운 따님, 아드님보다 더 애틋하고 사랑스럽다던 각시님을 홀로 두고 어딜 또 그렇게 참견하러 가시는 건가요? 동서남북 종횡무진 그리 오지랖 넓게 다니시더니 기어코 하늘에까지 가 닿으시려고요? 이제 겨우 철없는 누이들이 부모 노릇 제대로 해보겠다고 나섰는데 그렇게 홀연히 앞장서 가버리시는 겁니까?
 
여기 당신을 통해 사람 사는 온기를 느끼고, 당신으로 인해 함께 꿈을 꾸기 시작한 사람들이 뒤늦게 모였습니다. 비바람이 불면 또 다시 흔들리고 무릎이 꺾이기도 하겠지만, 당신이 잡아준 손이 있기에 우리는 함께 걸어갈 것입니다. 당신 홀로 열정으로 먼저 살아내신 그 미래를, 이곳에서 열심히 심고 가꾸어보겠습니다. 머지않아 그 미래가 현실이 될 떼, 당신 앞에 꽃 한 송이 바치겠습니다.
 
당신을 만나 정말 행복했습니다.
봄날, 꿈속에서 우리 다시 만나요.
안녕히 가세요, 오라버니.
 
봄꿈, 남용식 오라버니 영전에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들을 대신해서
정수경 삼가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