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2년 9월-10월 두달동안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선행교육금지법 제정을 위한 성찰과 고백의 광장, 시민 문화제>에서 낭독된 글입니다.
저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재홍이라고 합니다. 고등학생 때 교육문제에 관심을 갖고 교육운동에 조금씩 참여를 했었구요, 작년(고3)에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과 모여서 수능 거부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이후에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함께 교육문제 푸는 일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제가 자란 지역은 고등학교가 평준화 되어 있지 않고 촘촘하게 서열이 매겨져 있습니다. 마치 대학교 같이 서열화 되어있습니다. 내신성적이 높을수록 더 명문 고등학교, 면학분위기 좋은 학교, 선배가 빵빵한 학교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좋은 학교를 가기 위한 강도높은 경쟁을 해야 합니다. 중학생들은 좋은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지금의 자기를 버려야 하고, 고등학생들은 좋은 대학교에 가기 위해 지금의 자기를 버려야 합니다.
물론 그것은 저의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저도 스스로 창피하지 않고 부모님을 동네망신 시켜드리지 않으려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학원도 자발적으로 다녔습니다. 종합학원은 과목별로 개별지도를 못해주니까, 돈이 좀 들더라도 국영수사과 단과를 다녀야겠다고 부모님한테 얘기했습니다. 고등학교 과정 선행특강도 수강하니까 한달에 학원비가 백만원씩 나왔습니다. 방학 때는 아침부터 학원가서 점심저녁 다 밖에서 사먹고 밤늦게 들어오는 것을 매일 같이 했습니다.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저는 참았습니다. 그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며, 참아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게을러 가지고는 인생 헛 사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해서 창피 당하지 않을 고등학교에 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학교에 가면 공부 잘하고 인성이 바른 친구들을 많이 사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정 없이 메말라있고, 기본적인 생활수칙과 예의는 어디갔으며, 남의 물건 훔치고, 친구 때리고... 진로에 대한 고민, 삶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으며, 핏기 없는 표정으로 졸고 있는 친구들, 그리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출퇴근하는 선생님들... 모든 것이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았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지. 나도 그렇게 만들어져 왔던 것은 아닌지...
저는 그때 느꼈습니다. 속았다는 것을. 학원에서 얘기하는 고득점, 학교에서 얘기하는 학벌, 사회에서 얘기하는 성공, 그리고 그렇게 하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부모님의 말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진짜 행복을 감추고 보여주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급히 학원을 내려놓았고, 입시경쟁을 내려놓았습니다. 내려놓았더니, 진짜 행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입시경쟁을 거부하고,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을 살고 나서부턴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공부는 필요에 의해서 스스로 하게 되었고, 스스로 하는 공부는 너무 재밌고 쉬웠습니다. 남보다 더 돈이 많고, 남보다 더 명예로운 직업을 추구하느라 불안하지 않고,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부모님과 관계도 좋아졌습니다. 사실 부모님이 자녀에게 하는 잔소리의 대부분은 한시라도 공부를 더 하기를 바라는 마음, 남보다 뒤쳐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정말 모든 것이 전보다 좋아졌습니다.
이렇게 좋은데 왜 학생들을 자살로 내모는 입시경쟁 교육을 계속해야 합니까. 이것에 대한 답답함으로, 이것에 대한 분노로, 이제 우리는 이곳 광장에 모였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모여야 할 것입니다. 저도 불안하고 불행한 오늘과 내일을 바꾸기 위한 이 행렬에 동참하겠습니다. 아직 고민하고 계신 분들 어서 오셔서 뜻을 모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문제이고 나의 문제입니다. 입시고통이 없는 세상, 사교육 걱정이 없는 세상이 올 것이냐 안 올 것이냐는, 우리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모두 함께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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