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사교육 업계의 이단아까진 아니더라도 그는 과연 삐딱했다. 업계의 비밀을 누설한다는 것이 어디 웬만한 배짱으로 가능한 일이던가? 그에게 일종의 ‘반골기질’이 감추어져 있음이 분명하다. 이렇듯 자칭 ‘삐딱한 사교육업자’ 대치동 <쌤 수학전문학원> 원장 최영석 선생의 강의는 ‘대한민국 사교육문제의 근원은 대학 입학’이라는 씁쓸한 명제와 함께 시작되었다.
1. 수학성적에 따라 갈리는 인생의 명암?
대표적인 사교육 과목인 영어와 수학. 이 가운데 어릴 때는 영어사교육이 우위를 점하지만 중학교 이후 차츰 수학사교육에 역전 당한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영어보다는 수학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더 크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 이외에도 다른 아이들과 점수차를 벌릴 수 있는 과목이 수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이과를 선택해야 하는 시기(고1 말기)가 되면, 선택의 기준은 장래 진로나 적성을 고려하기보다는 수학에 대해 느끼는 공포심이 되어버리는 경향이 나타난다. 심지어 ‘수학 때문에 인생이 바뀌었다’는 한탄마저 나온다. 그가 내린 진단은 간단하고도 명료했다. “수학을 피해가려고 문과를 선택하는 겁니다.”
2. 수학 사교육 시장의 변화
최근 과학고나 외고 같은 특목고 입시의 변화에 따라 수학 사교육 시장의 흐름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단다. 영재고나 민사고를 제외하면 내신이 당락의 주요소가 됨으로써 KMO(Korea Math Olympiad : 한국수학올림피아드)를 위한 아동학대(?) 수준의 과도한 선행학습의 명분이 약해진 탓이다.
하지만 교과 선행학습을 위주로 하는 일반적인 학원은 변함없이 90% 정도의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고, 6~7% 가량을 차지하던 KMO 대비반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에 반해 소수 정예 중심의 고액과외인 ‘사고력 수학’이나 ‘자기주도 학습’이 조금 늘어가는 추세다.
3. 소모적인 선행(학습)의 폐해
수능은 단판 승부다. 삐딱한 사교육업자는 이와 같은 현재의 대학입시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선행학습을 위주로 하는 사교육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요원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선행학습은 무조건 나쁜 것인가? 그는 선행학습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학업성취도에 따른 자연스러운 선행학습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그는 약간 흥분한 듯 힘주어 말했다. 자신의 아이를 출발선 앞에서 뛰게 하려는 불공정함과 학원의 생래적 속성의 합작품인 선행학습의 폐해는 심각하다고. 대부분의 경우 선행학습은 ‘배우기는 했지만 아는 것은 없는’ 학생들을 양산하고, 이와 같은 ‘외형 위주의 학습습관’은 학교 공부의 소홀로 이어지고 결국 내신에도 실패하게 된다.
“학원에서 공부 많이 시킨다고 좋아할 것 없어요. 시험문제를 누가 냅니까? 학교 선생님이 냅니다. 학원에서는 시험에 어떤 문제가 나올지 모르니 기출문제 예상문제 등 나올 만한 문제는 죄다 뽑아서 그것을 풀게 하는 겁니다. 학교 수업에 충실하지 않으면서 좋은 내신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공부의 가장 큰 적은 수동적인 자세다. 또한 배운 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정리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문제를 풀어도 자기 것이 되지 않는다. 선행에 따른 외형 위주의 학습 형태는 스스로를 객관화(되돌아보고 냉정하게 평가)할 기회와 관점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4. 사교육은 최선이 아닌 최악을 모면하기 위한 노력
그는 ‘공부는 철드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철듦이란 스스로 목표의식을 갖고 인내하면서 우선순위를 매기고 시간을 안배하여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을 뜻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녀에 대한 믿음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기다려주지 않을 뿐 아니라 불친절하기까지 하다. 여기서 이른바 ‘관리’의 필요성이 부상하게 되지만, ‘관리’는 외형적인 눈가림에 불과하다.
“(그것은)아이를 철들게 만드는 게 아니라 ‘철든 아이처럼 만들어 줄 뿐입니다.”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은 고난이도 문제에 대한 비교우위를 말한다. 그리고 최근 출제되는 문제들의 유형이 복잡한 계산 문제에서 사고력을 요하는 문제로 바뀌고 있어서 개념에 대한 이해와 응용, 확장 능력이 필요한데, 선행과 반복을 특징으로 하는 학원수업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학습에 있어서 최선은 ‘알아서 공부하고 목표달성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천운이 따라야” 하는 특별한 경우이고, 차선은 입시결과에서는 다소 곡절을 겪을지라도 그 과정에서 ‘자활능력’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는 과도한 사교육을 시키느라 돈은 돈대로 쓰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도 입시에 실패하고 수동적인 아이로 키우는 것이다.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또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가 내놓은 대안은 이러했다.
“최악의 경우를 피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최소화시켜서 사교육을 활용하는 현명함과 흔들림 없는 소신이 필요합니다.” 딩동댕~! 정답이다. 하지만 왠지 불안하다. 뭔가 찝찝한 구석이 남아 있는 듯. 그래서 이렇게 묻는다.
- 과연 현실에서 학교공부만으로 대학 진학이 가능한가?
- 그렇다면 학교공부와 대입이 간극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 수능 점수로 좌우되는 현생 입시제도는 공정한가?
여기서 생기는 불안감. 사교육은 바로 이 불안감을 먹고 자란다. 그는 역시 삐딱했다. 이번 강의를 통해 수학 사교육에 대한 부담을 떨쳐버리기를 간절히 바랐을 청중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하지만 어찌 첫 술에 배부르랴? 아직 네 번의 강의가 남아 있지 않은가? To be continued ~... 연속극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다. 말미에 그가 던진 질문은 이어질 강의들에 예고편이라고나 할까? “학원에서 만들어진 90점짜리와 스스로 이룬 80점짜리 중 누가 더 경쟁력이 있다고 보십니까?”
강의는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하지만 강의시간과 맞먹는 질의응답시간. 그만큼 목말라있었던 걸 게다. ‘타는 목마름’을 해소시켜 줄 거라 기대하며 나머지 강의들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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