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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걱정없는세상/회원의 이야기

[이공훈] 7.30 서울시교육감선거 유감



소위 교육대통령이라는 서울시 교육감선거가 14일간의 공식적인 선거전을 마감하고 공정택 현교육감을 다시 선택하는 것으로 끝났다. 서울시 교육감선거를 지켜본 소감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앞으로  교육감선거 결과에 대한 분석은 다양한 각도로 진행될 것이므로 굳이 전체적인 조감을 할 생각은 없다. 예를 들어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라든가 전교조와 반전교조의 대결같은 이분법적 대립으로 몰고가는 것에 대한 비판은 앞으로 많이 진행되리라고 본다. 또 낮은 투표율에 따른 대표성문제도 분명히 제기될 것이라고 본다. 결과론적이지만 유권자의 15.5%의 투표율은 직선제가 정착되는데 심각한 장애가 되리라고 본다.


그러나 이런 점보다도 교육에 관심이 많은 필자의 입장에서 특히 주목한 것은 학교선택제에 관한 것인데 이의 채택을 거부한 후보는 주경복후보뿐이고 다른 5명의 후보들은 모두 학교선택제를 찬성했는데 필자가 보기에 학교선택제 문제는 두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어 보인다.


첫째는,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학생과 학부모가 선택할 수 있느냐 여부가 교육감선거에서 제기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현실적 문제이다. 예를 들어 서울시 교육감은 학교선택제를 채택하고 부산시교육감은 학교선택제를 거부하는 그런 정도의 문제인가 하는 점이다. 이런 문제는 중앙정부에서 국민의 뜻에 따라 하나의 원칙으로 결정되어야 할 문제이지 시도교육감에게 일임할 수있는 문제일 수가 없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중학교진급이나 고교진급같은 문제를 각각의 시도 교육감의 정책에 의존시키고 그후 임기가 끝나 새로운 교육감이 선출되면 또 그의 정책에 따르게 하는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런 문제가 야기되는 근본이유는 초중등교육을 관통하는 근본원칙이 무엇인가에 대한 교육철학적 관점이 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문제에도 근본과 파생이 있게 마련이고 교육감선거에서는 근본을 다루어서는 안된다. 예컨대 앞에서 얘기했드시 보수와 진보 논쟁이 끼어들어도 안되고 전교조와 반전교조의 흑백대립같은 비교육적 논쟁이 끼어들어도 안된다. 굳이 교육감을 선거로 뽑기로 한다면 후보의 그 동안의 공적을 갖고 다투고, 영어교육을 어떻게 낭비없이 할 수 있을 것인가를 다투고, 학교의 교육과정을 얼마만큼 시대에 맞추어 특색있게 편성할 것인가와 학교의 교사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는 그런 것들을 가지고 다투어야 한다. 지금처럼 학교선택권부여 여부를 후보들끼리 다투고 이념대결을 벌린다면 교육부장관이 할 일이 무엇이 있을 것인가. 그리고 초중등교육을 교육감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성향에 의존하게 하는것만큼 교육의 불안정성을 높이는 게 될 것이다.


둘째로 학교선택제가 교육철학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원칙에 관한 문제이다. 학교선택제란 학생과 학부모가 원하는 학교를 선택하게 함으로서 학교간의 경쟁을 활성화시키고 전체적으로 교육발전을 기하자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엉터리같은 주장이 아무런 거리낌없이 교육개혁론자들과 선거판에서 그토록 쉽게 통용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도대체 세계 어느 나라가 학교선택제를 채택하고 있는지 알고 있으면 알려주기 바란다.


학교선택제란 공교육의 권위를 부정하는데서 출발하는 것임을 알기 바란다. 다시 말해 a와 b와 c라는 세 학교가 있는데 이중 학생과 학부모가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 때 다른 두 학교의 권위는 어떻게 되는가. 다시 말해 선택되지 않은 학교의 권위도 보장되는가. 만일 권위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이 제대로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사람들은 경쟁이 중요하지 권위가 뭐가 중요한가 하고 생각할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처럼 권위가 부여되지 않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도덕적 자부심이 생겨날 수 없는 것은 왜 모르고 있는 것일까. 경쟁,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초중등교육에서 경쟁은 도덕적 권위보다 언제나 하위개념이며 또 그러해야함을 알기 바란다. 만일 경쟁을 우선하게 되면 학교와 교사들은 열심히 노력할른지 모른다. 그러나 경쟁에 살아남는 소수의 학교와 그 학교 교사와 그학교 재학생과 그 학교 학부모들은 만족할른지 모르지만 도덕적 권위가 없는 그런 경쟁우위가 무슨 가치가 있을 것인가.


또 학교선택제는 서로 경쟁하는 다양한 학교를 전제로 하는 것인데 이때의 다양한 학교란  전통적인 사회, 중세 사회, 봉건사회의 유습임을 알기 바란다. 예컨대 서구 사회에서 초중등학교를 다양하게 해 어린 아이들의 적성에 맟추어 이른바 맞춤교육을 시켰는데 이는 표면적으로는 특기와 적성에 따른 분류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귀족과 평민을 가르는데 활용된 제도이다. 예컨대 귀족의 자녀는 구두를 잘 만들어도 김나지움(인문계)에 갔고 평민의 자녀는 인문교육을 잘해도 슐레(실업계)에 갔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점수와 석차와 특기와 적성을 어떤 수를 써서라도 알아내어 미성인인 아이들에게 신분을 부여하는데 활용한 것이다. 교육사와 교육철학사를 보면 다 나오는 얘기다. 결코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그런 나라의 진학과 진급제도를 복선제라고 한다. 이를 우리나라가 도입할 이유가 무엇이 있을 것인가. 물론 지금도 그런 제도를 두어 어린 학생들의 자부심을 깔아뭉게도 있음을 부끄럽게 생각해야할 어른들이건만 오히려 이를 확대하는데만 광분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학교선택제란 복선제의 다른 이름이다. 무슨 이유로 중학교에 국제중학교가 필요하며 무슨 이유로 고등학교에 인문계 실업계가 필요하며 무슨 이유로 특목고와 외고가 필요하단 말인가. 일반중고등학교는 외국어나 과학이나 특수목적이 지칭하는 그 어떤 과목도 필요하지 않다는 말인가. 다시 말해 일반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특목고 학생들이 갖는 그런 목적을 갖고 있지 않다는 말인가.


학교선택제는 학교를 다양하게 한다는 데서 신분사회의 유습이고 학생들의 교육목적을 학교단위로 특화한다는 데서 개성교육에 반한다. 아이들은 누구나 인격이라는 측면에서 특수한 존재이고 이들을 교육시켜 성인사회에 배출하는 교육은 지극한 것이며 그렇다면 특수한 목적을 학교이름에 부가시켜서는 안되는게 아니겠는가. 모두가 존귀한 존재들이 아닌가. 학교는 모두를 일반학교로 일원화하고 그 학교 안에 다양한 교육과정을 개설하면 그만이다. (이인규후보가 창의성자율학교라고 명명한 것은 이를 이름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모든 학교가 그렇게 운영되면 되는 것이지 그런 학교를 특별히 둘 이유는 없다.) 우수한 아이들은 속진시켜 상급학교에 보내면 된다. 학교 종류를 다원화하고 다양화하면 평등한 시민사회의 전개에 역행하는 것임을 알기 바란다. 학교 교육과정을 다양화하면 된다.


국가가 관장하는 공교육을 벗어나 사인이나 사법인이 운영하는 학교라고 한다면 학교 자체에 특수목적을 부여하는 것을 문제삼을 이유는 없다. 예컨대 자립형사립고가 진정한 자립형이 되고 교육과정도 독자적으로 편성하고 아이들도 독자적으로 모집하는 것이야 관계없지만 국가의 책임하에 운영되는 학교들이 학부모들과 아이들 앞에 경쟁시켜  선택을 기다리게 한다는 것은 공교육의 권위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도통 없을 때에나 가능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선거는 우리 교육의 낙후성을 여지없이 드러낸 것이다. 일개 교육감선거가 우리나라 초중등교육의 근본원칙을 가볍기 그지없는 선거 공약空約의 장으로 끄집어내어 꼬리가 몸통을 흔든 선거였다. 그리고  학교선택제라는 근대교육제도를 수립한 서구에서 예를 찾기 어려운 정체불명의 제도(서구에서는 초중등학생들은 원칙적으로 강제배정하고 극히 예외적으로 특수한 경우에 한하여 학교선택제로 보완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예를 찾기 어렵다.)를 구호로 들고나왔다는 점에서 해프닝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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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한겨레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