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6일, 총 8주로 진행된 진로학교의 7강이 열리는 날이다. 8강은 본 단체의 송인수 대표님이 강의를 하시기 때문에 마지막 외부강사님의 강의인 셈이다. 이번 진로학교 2기의 강사섭외는 탁월했다. 무엇보다 모든 분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와 더불어 새로운 지식과 분야에 대해 알게 되었고, 세상을 읽는 통찰력을 바탕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지혜 또한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오늘 최영우 대표님의 강의 또한 기대되는 시간이었다.
"불안하지 만은 않은 나그네" 대표님은 본인을 이와 같이 표현했다. 자신의 삶을 나그네의 삶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대표님은 먼저 몇 개의 문장들로 자신을 설명했다. 첫째로 한국최초, 최대의 비영리단체 모금전략컨설팅 회사의 대표로 2010년말 현재 약 80여명의 직원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이 회사의 컨설팅 파트너로는 서울대, 세브란스병원 등이 있으며 내년에는 100명이 넘는 규모를 예상하고 있을 정도로 안정된 운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취미로 시작한 목공은 직접 침대, 의자, 등을 만들 정도로 조예가 깊다. 전공자가 아님에도 그리스어, 히브리어에 깊이 매료되어 관련 책들을 수없이 읽었고 더불어 현상학과 해석학에도 관심이 많다. 더불어 우리단체의 회원분들과 다름없이 두 아이를 둔 고민 많은 아빠이다.
“꿈은 나에게 ‘장난감’ 그리고 학습도구였다.” 는 대표님은 유년시절부터 한 가지에 관심을 가지고 매력을 느낄 때마다 그와 관련된 직업을 꿈꾸며 성장해왔다. 또한 그 순간순간 자기 스스로에게 진실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페스탈로찌의 『은자의 황혼』을 읽고서 교육행정 학자의 꿈을 꾸었고, 수능을 보고 진학여부로 고민할 때 『달과 6펜스』라는 책의 영향을 받아서 교육학과에서 무역학과로 진로를 변경했다. 대학교 때는 그 당시 가업을 일으킬 수 있다는 ‘CPA’ 공부를 했었다. 그 후에도 ‘선교사’의 꿈과 동기를 갖기도 했고, 후에는 토지개혁의 꿈을 꾸면서 관련된 책을 읽으며 꿈을 키우기도 했다. 대표님은 고민이 되었다. 왜 이렇게 나의 삶은 하나에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방황할까 생각하다가 느낀 것은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있어서는 장난감이자 학습도구라고 생각한 것이다. 어린 시절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규칙도, 개념도 쉽게 이해하고 배우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꿈이 심겨진다는 것은 그것으로 미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력한 학습의 에너지를 확보시켜주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했다. 꿈은 굉장히 달라질 수 있고, 실제로 달라진다. 그것이 진실한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대표님은 지난 시간 여러 분야에 들였던 노력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지금 삶의 하나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확신했다. 더욱이 대표님은 한 가지에 몰두할 때마다 보통 사람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몰입하여 연구하고 공부했다.
이 후 대학원, 군 복무의 일환으로 산업연구원(KEIT)에서 일하면서 자신의 직업을 찾아가기 시작했는데 통일논단 신문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대표님의 첫 직업인 해비타트와의 연은 사랑의 집짓기를 위해 국내에서 활동하던 외국인들의 통역을 하게 된 계기로 시작되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일이 재미있게 느껴지던 차에 본격적으로 권유를 받았다. 건교부 등록도 하고, 사업계획을 만들고, 땅도 확보하면서 본격적으로 모금을 시작했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집을 지으며 일했던 시간들은 실제로 대표님에게 즐거운 일이었다. 비록 사회의 주류로 살아가는 친구들과는 전혀 다른 삶이었지만 후회하지 않았고 이제는 나의 삶이 이것으로 결정됐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처음 시작하였고, 모든 것을 혼자서 다 해야 했기 때문에 집을 짓는 일 외에도 다양한 경험을 했다. 해외 투자자들과 협상을 하면서 본인이 협상력에 소질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청와대 관계자로부터 때로는 사채업자까지 상대하는 등 사람들을 만나는 폭이 넓었다. 월급은 가족들을 부양하기에 터무니없이 적었지만, 약사인 아내가 있어서 생활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꿈을 장난감 삼아서 지내던 대표님을 생각하면 해비타트가 대표님의 평생직장이 될 수 없었음은 자명했다. 해비타트를 그만두고 지금의 ‘(주)도움과 나눔’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내년 5월이면 만 10년이 되는 지금의 회사는 스스로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 했던 해비타트와는 달리 설립되어 있는 기업이었지만 시작은 해비타트 시절 못지않게 힘들었다. 특히 처음 5년간은 비즈니스 모델을 정립하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고, 몇 번씩 사무실을 옮겨가며 힘들게 운영해왔다. 3개월간 직원들의 월급을 주지 못한 적도 있었고, 일거리가 없어서 인터넷만 뒤적이던 시절도 있었다. 그럼에도 사업을 계속할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다. 가출청소년들을 위한 ‘들꽃피는 마을’ 이란 곳에서 가출청소년들과 2주간 워크샵을 하고 컨설팅을 하면서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사업을 계속해야 함을 굳게 다짐했다. 그 청소년들이 참 고마웠다. 사업은 점차 안정되었고 비즈니스 모델도 정착이 되어가면서 유명한 고객들을 컨설팅하면서 인지도와 매출도 점점 늘어갔다. 내년도 새로운 사업과 함께 전망이 밝다.
“유동적 사회. 눈 앞의 인기는 단명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표님은 본인의 진로이야기 후에 더욱 귀중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셨다. 고대언어, 해석학, 현상학을 연구하며 철학, 인문학에 조예가 깊어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 깊이가 있고 통찰력이 있는 대표님은 우리들에게 물음을 던져주었다. 지금의 지식, 창의 기반의 우리사회는 매우 유동적이다. 직업의 수명이 짧아지고 기술과 정보의 가치는 자주 변한다. 이러한 시대에서 중요한 것은 개개인이 근본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과, 끊임없이 학습할 수 있으며, 근본적 정보에 접근하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회사 직원들은 대표님이 경영, 처세술 관련 책이 아닌 현상학, 해석학 책을 연구하고 고대언어에 심취하는 것을 걱정하지만, 정작 대표님에게는 그러한 것들이 오히려 더 사회를 읽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좋은 도구인 셈이다. 그러면서 강의 초반에 이야기 한 내용은 인문학적, 철학적 깊이가 없는 기술자, 경영자들이 30~40대까지는 승승장구 할 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힘을 받고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철학, 사학, 인문학적인 지식과 통찰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더불어 지금의 시대에서 직업으로서의 소명(calling)은 때로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이다. 사회의 유동성으로 인해 우리는 수많은 직업을 가져야 할 가능성이 많다. 대표님의 표현으로 나그네의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 아이의 진로는 물론 우리의 삶이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면서 뒤돌아보면 어느새 그 삶들이 모두 의미 있는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어 있으리라 생각한다.
질의 응답시간을 통해 기술, 기능과 철학, 인문학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하셨다. “기술과 기능이 갇혀있으면 안 된다. 기술과 기능이 항상 새로워 질 수 있어야 한다. 어떤 배경에서 사용되고 어떤 상황에서 변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어야 한다. 기술과 기능이 표현되는 장에서는 굉장히 다양한 이해가 있어야 창의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모든 것에 대해 수용능력을 가지고 한 분야에서 현실적으로 깊이 들어가는 사람이 앞으로의 인재상이 될 것이다.” 또한 아시아의 향후 지식판도, 쉐마교육의 시사점, Trivium의 삼학제를 이야기 하시며 우리들에게 깊은 시사점과 생각해 볼 점들을 주시면서 강의를 마무리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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