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부모들은 실패한 CEO로 살고 있다.
부모자녀간의 관계에서 아이들은 큰 것들이 괴롭히지만 않으면 불안해하지 않아요. 인류역사상 어린것들이 큰것을 괴롭힐 수 없었습니다. 말빨과 경제력에서 딸리고 도덕적인 압박을 받기 때문이죠. 그런데 우리는 애들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고 하죠. 그건 부모의 불안, 나르시즘이(자기애)이예요. 한국의 부모들은 실패한 CEO로 살고 있어서 불안해합니다. 아직 못 오른 CEO들이어서 옆집 연봉에 그렇게 민감하죠. 몸 안에 그런게 들어가 있어요. 자발적 가난은 해방인데 실패한 CEO로 사니까 너무 힘들죠. 그리고 이게 내새끼한테 재생산 된다고 하니까 못견디고 내 아이한테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짓을 해대는 겁니다.
진로훈련은 삶 살기다. 우리 몸속의 유전자가 어떤 내용의 행복과 성공을 담고 있는지 부터 정립하자
진로교육은 한번밖에 없는 삶을 사는 교육이예요. 삶을 살아나가는 힘을 주는 교육이죠. 더군다나 취직과 멀리 있는 아이들에게 할 때는 그게 직업 훈련일 수가 없습니다. 진로교육은 삶 살기입니다. 미래사회 변화와 연결하면 여러분이 겪지 못한 직장을 아이들은 겪을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일이 무엇이고 그것을 통해 추구할 수 있는 행복이 무엇인지 부모와 교사들이 미리 성찰해야 해요. 여러분이 자녀들과 진로교육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여러분 몸속의 유전자가 행복은 어떤 내용을, 성공은 어떤 내용의 성공을 담고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합니다. 어떤 진로를 가느냐는 그 행복 추구에서 떨어질수 없어요. 그리고 그 분야에서 성공해야 하기 때문이죠. 부모들의 삶살기와 떨어질 수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온몸으로 삶을 보여주면서 그것과 질적으로 다른 진로 선택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안됩니다.
아파만 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아파하면서 한 발짝 전진 하는게 좋은거 아닌가.
원치 않는 죽음에 이를 짓이 아니라면 난 생고생을 해도 의미 있을 것 같아요. 여러분 같은 부모를 만났으니까 인생의 느낄 수 있는 깊이만큼 느껴야 하지 않으까요? 좀 의미있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아이가 농고에 다니는데 꼭 대학을 가야 하나요? 인생자체가 힘든건데 한 어께에는 니 인생을 다른 어께엔 세계의 고통을 짊어지면 안되겠니? 아파만 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그 아픔을 관계시켜서 뭔가 한 발짝 실천하는게 중요한 거예요. 거기서 아파만 하면서는 느끼지 못한 삶의 의미와 깊이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일 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기쁨을 주어야 해요. 일이 삶을 실현시켜야 하고 그 일이 해방이어야 하고 그 일이 남들은 범접할 수 없는 자유함을 느끼게 해주어야 합니다.
진리를 찾으려 하는가 살려하는가
미래사회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진로를 택하고 삶의 경로를 정할 때 무엇이 중요할까요. 김예슬 학생의 글을 아주 감명깊게 읽었어요. 그 글을 읽으니 누가 뭐라고 한것도 아닌데 교수도 누군가 그래야 할것 같은데..... 그 글중에 이런말이 있습니다. “길을 찾으려 하는가 걸으려 하는가. 진리를 찾으려 진리를 살려 하는가. 사랑을 배우려 하는가 사랑 하려 하는가.” 이게 매우 중요합니다. 저게 대학 3학년 아이의 성찰에서 나온거예요. 그래서 그 아이가 삶의 경로를 달리한겁니다. 이게 진로입니다.
법정 스님이나 갈 수 있는 길은 대안이 아니다.
우리는 기존질서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대안이 안보이는 것이예요. 만약에 법정스님이나 갈수 있는 길이라면 그건 대안의 가치를 상실하죠. 누가 참여할 수 있을까요. “대안적 삶이 필요하세요? 다버리세요.” 그게 쉽지 않으니까 이러는거 아닙니까. 그걸 대안이라고 하면 안되죠. 말하긴 쉽습니다. 그런게 대안이 아니라 누구라도 크게 포기함이 없이 참여할 수 있는게 대안인거지 완전 득도한 사람만 대안이라고 하는건 말이 안되요. 근데 왜 그 대안이 안보이나? 너무나 기존 질서에 익숙해져 있기에 바로 옆이 있는게 안보이고 보여고 손을 뻗지 못하는 것입니다.
당근 먹이면서 체찍질하고 있다.
자기들 삶은 없으면서, 지금조건에서 어떻게 다르게 살 수 있는가를 부모가 보여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큰 영향을 받으면서 “넌 다르게 살 수 있어.” 그러면서 자기들 삶은 없고 매일 아이들만 바라보죠. 그러니 아이들이 어떻게 될까요. 질식합니다. 부모가 자기들 삶이 없어요. 저질스러워요. 부모들이 모두 당근과 채찍을 사용하는데 우리 부모들은 잘못 사용하고 있습니다. 당근 먹이면서 채찍질 하고 있어요. 먹으면서 맞는 채찍질이 제일 아픕니다. 차라리 채찍질만 하던지 아니면 먹는 동안은 채찍질 하지 않던지. 너무 잔인해요. 자기 위로 하려고 당근은 먹이고 불안해서 계속 채찍질하는데 그게 얼마나 아픈지 여러분도 맞아봐서 알것 아니예요. 왜 그런짓을 무슨 신념을 가지고 또 하는 건가요.
대안이 안보이는게 아니라 잡을 용기가 없는 것이다.
학벌주의, 학력주의가 시대 변화에 우리 아이들도 아름답게 살아야 할 권리를 근본에서부터 침해 하고 있어요. 근데 그걸 아파하지 않는 이유가 그 체제에서 우리의 물질적 풍요와 안락을 어느정도 보장해 주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힘들도 갈등합니다. 여기서 이런 강의를 들어도 집에가서 송곳으로 갈등을 다스릴 수밖에 없는 것이죠. 대안이 안보이는게 아니라 대안을 잡을 용기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은 포스(force)가 아니라 파워(power)가 필요해요. 자녀를 위해 변화해야 합니다.
동물 중 가장 무서운게 개천에서 난 용이다.
지식이 산업사회에서는 안중요했나요? 핵심동력이 아니어서 다른 사람도 나눠쓸 수 있는 여지가 있었을 뿐입니다. 개천에서 용 날 일이 있었죠. 그런데 이 지식이 제일 중요해 졌어요.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 이게 나눠지고 있나요 독점되고 있나요. 그만큼 개천에서 용 날일이 줄어 든거죠. 개천에서 용 날일이 없지만 그래도 가끔 난 용이 있을 수 있죠. 동물 중 가장 무서운게 지금 개천에서 난 용입니다. 개천에서 용이 날수 있는 상황에서는 그렇게 된 용들 중 순한 것도 있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난 용들은 가장 사나운 동물이 되는거예요. “니 빈곤은 니 탓이야. 난 너 때부터 출발했어. 실력 없는 애들이 저렇게 이야기 하더라.”하는 거죠.
지식과 맺는 관계가 잘못 된 것이지 필요 없는게 아니다.
우리는 다음 시험을 위해 벼락치기를 했어요. 그리고 또 다른 시험을 위해 새롭게 채워넣어야 하니까 오늘 배운걸 다시 잊어버리고 했죠. 우리가 지식과 맺는 관계가 잘못된겁니다. 여러분이 대안교육을 이렇게 편협적으로 이해해서는 안되요. 지금까지 지긋하게 지식과 관계를 맺었으니 이제 체험으로 간다? 아닙니다. 지식이 불필요한게 아니예요. 세계경영학의 대부가 미래는 95%의 지식과 5%의 인문학적 상상력이라고 말했습니다. 미래서적이 당신들의 현재 지식은 쓰레기가 될거라고 이야기해요. 그러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5%의 인문학적 상상력을 가지고 재생산하는 과정을 거쳐 자원화 시켜야 합니다.
존재자체가 아이에게 호기심을 주어야 한다.
부모나 교사의 존재자체가 가르치려는 삶을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녀가 느끼는 세상은 여러분이예요. 여러분은 바깥세상을 보지만 여러분의 자녀는 여러분을 봅니다. 여러분이 오늘 바뀌면 여러분의 자녀는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어떠냐에 따라 확 달라져요. 자녀와 사는 삶 자체로 아이에게 호기심을 주어야지 경악심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아니 그랬던 사람이 이렇게 살아?”는 아닌거죠. 존재자체가 아이에게 자극이 되고 호기심을 주어야 합니다. ‘아, 이런 세상속에서도 저런 삶이 가능하구나’를 보여주어야 하는거죠. 그래서 진로교육은 부모의 삶 살기와 땔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순간 직업훈련이 되는 거죠
이 시대의 젊고 꿈으로 가득한 대학생 자원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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