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북녘 사람들을 아주 가까이서 만난 것은 2005년 여름 금강산에서였다. 금강산에 도착해서도 자꾸 실감이 가지 않아 하늘과 산을 보고 또 봤다. 줄기차게 내리는 빗속을 걸어 상팔담까지 가면서 서른 살이 좀 넘은 듯한 안내원과 짧은 대화를 했는데 그는 우리들의 질문에 당당하고 분명하게 대답하였다. 기독교와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아주 비판적이고도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남과 북의 아주 특별한 관계
저녁에 식당에서 만난 여성 종업원들에게서 느낀 것도 역시 당당함과 자신감이었다. 그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상대방을 주시하였고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 눈빛들은 낯이 설면서도 신선한 매력을 느끼게 했다. 그 때 묻지 않은 눈빛은 남쪽이 가지지 못한 ‘순수한 힘’으로 다가왔다. 농담을 걸면 제법 여유를 가지고 받아들이기도 하여 뜻밖이었다. 밤에 이어진 공연은 가슴 뜨거웠다. ‘다시 만납시다’를 따라 부를 때는 가슴이 벅차오르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지금도 금강산, 그 북녘땅을 밟았던 기억이 꿈만 같다.
요즘 금강산의 감동이 어떤 불안감으로 바뀌고 있어 안타깝다. 인수위가 통일부를 없애겠다는 것을 시작으로,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통일부장관, 외교통상부장관, 합참의장 등의 발언들이 결과적으로 북을 계속 자극하였다. 북의 반응은 너무 날이 서서 ‘군사적 대응 조치를 취하겠다’는 표현까지 하면서 경고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직접 대화의 과정과 진의에 대한 확인 절차도 없이 이토록 조급하고도 과격한 반응을 하는 북쪽의 의도는 무엇일까. 새 정부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긴다. 절망감을 느끼지 않고서야 어찌 국가 원수에게 대놓고 ‘역도(逆徒)’라는 극언까지 할 수 있는가.
더욱 답답한 것은 북측의 그런 반응에 대해 우리 측의 대응이 참 궁색하다는 것이다. 우리도 대놓고 김정일을 비난한다고 해도 우습고, 또 그리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남쪽은 북을 무시하고 북쪽은 남을 극도로 증오해서 서로 얻을 것이 무엇인가.
새삼 현 정부의 대선 공약인 ‘비핵 · 개방 · 3000 구상’을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비핵 · 개방’은 우리가 절실히 원하는 바이고, ‘국민 소득 3000달러’는 북측에서 절실한 항목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3000달러’ 문제마저도 북으로서는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닐 듯하다. 핵을 완전히 폐기하고 개방을 하면 1인당 소득 3000달러가 되도록 지원해 준다는 것이니, 북의 입장에서는 자존심을 건드린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가 잘 살게 해 주겠다’는 표현으로 북측이 들었다면 자존심을 건드린 것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적이라면 ‘특별’한 적이요, 하나가 되어야 할 적이다. 미움보다 안타까움이 먼저요, 증오보다 연민이 먼저다. 이성적인 논리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 남북 관계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퍼주기를 중단하라’고 말하지만 새 정부의 ‘국민 소득 3000달러’도 따지고 보면 퍼주기다. 퍼주기라고 비난해 왔던 새 정부마저도 이런 ‘퍼주기’ 정책을 내세운 것은 남과 북이 이렇게 특별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남북 관계는 그야말로 깊은 지혜와 엄청난 인내심을 요구한다. ‘실용’이라는 잣대를 어설프게 들이대면, 정작 ‘실용’과 아주 동떨어진 예기치 않은 결과가 올 수 있다는 것을 늘 생각하여야 한다. 우리가 북을 향하여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면 일방적으로 북을 향하여 던지는 식으로 해서는 일을 그르치기 쉽다. 직접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통하여 밝히는 방법을 쓰되, 그 대화는 아주 길고 충분해야 한다.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간절한 뜻을 깊고 충분한 배경 속에 버무려서 전달해야 한다는 말이다.
통일의 싹은 밟지 말아야
지난 정부가 10년 동안 공들인 탑을 너무 쉽게 무너뜨리는 것 같아 참으로 답답하다. ‘퍼주기’라고 무수한 비난을 받으면서 이룩한 통일의 싹을 이렇게 쉽게 밟아버리고 마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새 정부가, ‘우리의 본심은 그것이 아니다’라는 해명을 하고 있어 다행이지만, 얻는 것은 별로 없고 너무 많은 대가를 치르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앞서니 마음이 참 어둡다.
2008. 4. 7(월) / <시민사회신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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