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5일(화) 자 동아일보의 A14면을 보고 참으로 ‘동아’답다는 처량한 생각이 들었다.
- 학력 키운 중 교장 인사 우대
- 서울지역 영재교육원 합격자 분석해 보니·신용산초등학교 31명 최다
- 한국말 NO! 영어 몰입 수학 교육(사진과 설명)
- ‘떠들지 마라’ 유치원생 입 테이프로···
- 서울시 교육위원도 “의정비 올려받아야”
등의 기사로 채웠는데 놀라운 것은 그 기사 아래 전단으로 어느 사교육업자와 동아일보가 공동 주최하는 ‘특목고·자사고·국제중 입시 전략 설명회’ 광고가 주먹만한 글씨로 대문짝만하게 나 있었다. 그 ‘입시 전략 설명회’는 3월 30일부터 4월 3일까지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울산 등에서 이어진다고 했다.
아, 이렇게 얼굴이 두꺼워도 되는가. A14면은 이 광고를 더욱 빛내기 위한 기사들로 채운 것이요, 학부모들을 위협하는 기사들로 배치한 게 틀림없었다. ‘동아일보’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신문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참으로 한참 지나치다 싶었다.
특히 ‘서울지역 영재교육원 합격자 분석’ 기사는 합격자 수가 많은 21개의 초등학교를 1위부터 순위대로 소재하는 구의 이름과 함께, 공사립 구분 · 합격자 수 · 합격자 비율까지 아주 친절하게 낱낱이 밝혀 놓았다.
거대 언론이랍시고 한다는 짓이 이 수준이다. 중학교도 모자라 초등학교까지 줄을 세우고, 이제 유치원 아이들에게도 입시 준비를 시킬 생각인가 보다. 이런 기사 내용에 우리나라 학부모들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뻔히 알면서, 학부모들의 욕망과 불안을 한껏 부추겨 놓았다. 사교육 장사를 잘하기 위해서는 학부모들이 충분히 불안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학부모들의 두 눈을 경쟁으로 번득이게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교육업자가 이런다면 그 나름의 생존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건 소위 메이저 신문이라는 게 이런 행태를 보여주니 기가 막힌다는 말이다. 어찌 신문사의 이름을 걸고 이렇게 사교육을 부추기는 일에 앞장설 수 있으며, 그 더러운 탐욕을 아무 거리낌 없이 드러낼 수 있단 말인가?
지난번에 실시한 중학교 1학년 일제고사 결과를 보고 서울시 교육청은 심각한 학력 격차를 해소한다면서,
· 방과후 학교 수업 강화
· 학력을 끌어올린 중학교 교장에 대한 인사 혜택
· 우수 교사 우선 배치
등 예산 및 장학 지원 사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했다.
공교육이 무너졌다고 하면서 학교에서 방과후 교육을 강조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무너진 학교 공간에다 아이들을 억지로 더 잡아놓겠다는 발상이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방과전’ 교육을 어떻게 내실 있게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그 해결책을 찾는 일이 근본이고 먼저지 방과후 교육을 강조하는 것은, 소외 학생들에 대한 배려 차원으로는 바람직하지만 공교육의 신뢰를 되찾는 일과는 거의 무관하기 때문이다.
학력을 키운 교장에게 인사상의 혜택을 준다는 건 도대체 뭔가? ‘교육’을 잘한 교장이 아니라, 노골적으로 ‘성적’을 올린 교장이라니 이제 교장들이 할 일이 뭐겠는가? 학생들을 밤늦게까지 잡아놓거나 아니면 학교에서 경쟁적으로 좋은(?) 학원을 소개시켜 주어 더 많은 아이들을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기도 할 것이다.
거대 언론도 그렇지만, 요즘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은 이명박 정권의 경쟁 교육을 가장 앞서서 외치고 실천하느라 신이 나 있다. 모르는 사람들은 믿어지지 않겠지만, 문득문득 학원 업자와 동업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까지 한다. 그가 내놓는 정책은 아이들의 건강권이나 인권에 대해서는 안중에 없고 철저히 경쟁으로 몰아가는 쪽이다. 교육감들이 유권자인 어른의 입장, 어른의 시각만으로 정책을 결정하다 보니 아이들은 더욱 소외되고 고통은 더더욱 커져만 가는 것이다.
좀 엉뚱하다 싶은 제언을 하고 싶다. 몇 년 전부터 시도 교육감을 지역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선거를 통해서 뽑고 있는데, 앞으로는 학생들에게도 선거권을 주자는 말이다. 부작용과 부정적인 측면을 먼저 생각하여 말도 안 된다고만 할 것이 아니다. 이것은 민주 시민 교육으로도 의미가 있고, 더욱 절실한 것은 그래야 학생들의 입장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정책들이 그제야 쏟아져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2008. 3. 31(월) / <시민사회신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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