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학교 뉴스레터 ④] 강의스케치
'인간다운 인간으로...'
- 닉네임 '후엠아이' 님
21세기 대한민국의 많은 부모들이 우리 부모가 그러했듯, 내 자식 잘 되길 바라는 그 마음 하나로 지금을 견디며 노후를 담보 잡아 자식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면 된다고 했는데, 그렇게 하니까 안 되고 더 힘들어지고 점점 더 부당한 것을 요구 당할까?
400여명의 수강생 각자가 이번 10기 등대지기학교를 통해 얻고자 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혹시 그중에 ‘사교육비 지출 없이 좋은 대학 보내는 비책’을 기다린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지금쯤 강의 등록을 심하게 후회하고 있을지 모른다. 자식에게 무엇을 더 해주지 말아야 할까를 생각하라는 1강을 시작으로, 자식 걱정 말고 오래 살 위험이 있는 본인 미래나 걱정하라는 2강에 이어, 거짓에 더 이상 속지 말고 인간의 방법으로 아이를 기르자는 3강까지. 안 들었으면 모를까 들어 버렸으니 뭔가 다르게 살긴 해야겠는데, 강사들이 서로 짠 듯 답은 나의 몫이라 하고...
근래에 보기 드문 불친절한 강의의 연속이다. 과연 4강은 어떨까? 미안하지만 이번엔 더 하다. 심지어 청중이 강의를 듣고 마음이 많이 불편하길 바라는 것까지 똑같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와 「진격의 대학교」의 저자이며 사회학자인 오찬호 선생님의 강의는 “사회가 병이 들면, 개인도 병이 들게 마련이다.”라는 전제로부터 시작한다. 자급자족 가능한 산 속의 도인이 아니라면 이 전제에 반하는 삶을 살긴 어렵다. 그런데 이 전제에 동의하는 우리가 실제 취하는 행동은 매우 모순되다.
점점 병들어가는 다수의 개인을 고치려면 당연히 그 개인이 속한 사회를 고치는 것에 힘을 모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나 익숙한 자세로 사회에는 면죄부를 주고 개인에겐 능력부족이란 진단과 함께 자기계발이라는 처방을 내린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자본주의는 더 악랄하고 포악해졌다.
오찬호 강사는 ‘민주주의 훼손’과 ‘체중 5kg 증가’라는 상태의 변화를 직면했을 때, 우리의 심경변화와 대응의 차이를 예로 든다. 두 가지 상황 중에 무엇이 더 내 마음을 크게 울리고, 무엇이 더 회복을 위한 움직임에 영향을 주는지를 생각해보면 된다. “우리는 지금 아이들에게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훼손 될 때 내 심장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그런 아픔을 제공해주고 있는가?”
이 시대의 많은 젊은이들이 ‘나는 차별에 찬성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렇게 자랐기 때문이다. “직접적으로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발언을 하지는 않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의미 없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환경을 만든 것에서 누가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민주주의라는 것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나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을 주며, 아이들이 민주주의라는 것을 느낄 심장의 근육을 없애버리고 있다.”
태어나서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반장선거 할 때 외에는 들어볼 일이 없는 민주주의. 대신 일상생활에서 주로 듣는 말은 ‘일단 대학부터 가’ ‘그런 건 나중에 성공하면 해’ ‘(시위하고 파업하는 현장을 볼 때) 너는 저러면 안 된다.’ 능력을 갖추면 잘 살 수 있다는 말을 믿고 그렇게 키워 대학에 보내놨더니, 결국 아이는 모든 가치판단을 능력주의로 하는 인간답지 못한 인간이 되었다.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것은 내 배 곯지 않기 위해 약자를 잘 잡아먹는 ‘힘센 동물’을 기르는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많은 부모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 다음에 인간다움을 추구하겠다고 주장하고 살아왔지만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그 다음 목표는 ‘더 잘 먹고 더 잘사는 것’이 된다. 욕망이라는 것은 끝이 없다... 인간다움이라는 것과 경제적 가치는 함께 가야하는 존재다. 우리는 그동안 역사적으로 인간다움의 가치를 굉장히 우습게 여기고 있었다. 이런 사회에 우리 모두가 동참하고 있으니까 대학생들이 포악스런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짚어내지 못하고 본인 스스로도 희생자가 되고 있는 그런 최악의 결과를 야기하게 되었다.”
낯설고 불편한 주제인 것에 비하여 두 시간 반 가량의 강의는 시종일관 유쾌했고, 들을수록 고개가 끄덕여졌다. 또 오찬호 선생님은 강의 말미에 대안적인 여섯 가지 마인드도 소개 했는데, 그것을 듣고 나니 이것들에 대해 더 깊은 이야기가 담길 그의 다음 책이 기다려진다.
이렇게 또 하나의 강의가 끝났다. 등대지기학교의 진짜 의미는 소감문 여섯 번 이상 쓰고 졸업여행 가서 졸업장 받는 것에 있지 않다. 매주 강의를 통해 던져지는 질문을 기꺼이 내 것으로 받아, 지금의 현상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성찰하면서, 아이와 함께 답을 찾아나가는 태도를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이 땅에 성적 때문에 죽는 아이가 없어야 하고, 부모와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행복한 세상에 사는 것으로 열매를 맺어야 한다.
기왕 네 번째 강의까지 들었다면 이제는 더 이상 아이의 성적에 분노하지 말고, 어쩌다 이런 사회가 되었는가에 분노해 보자. 또 아이가 다닐 학원 스케줄표를 연구하지 말고, 인간다운 아이로 키우려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연구해보자. 누가 이 악랄한 자본주의를 길들일 수 있을까, 그 분들이 알아서 좋은 세상 만들어 주길 기다려서는 희망이 없다. 나 혼자는 약하지만 함께라면 할 수 있다. 이제는 자각한 시민이 힘을 모아야 한다. 그가 말한 인간다운 연대(連帶)를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함께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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