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읽으면 사교육 걱정이 사라지는 마법의 웹진. 그 중 가장 빛나는 회원 이야기 코너! ^^ 이번 호에서 만난 회원님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시자 ‘성장학교 별’의 교장 선생님이신 김현수 선생님입니다. 김현수 선생님은 2013년에 행복한 진로학교에서 강의도 해주셨죠. 의사이자 교육자로 살아가는 김현수 회원님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시죠!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인연을 맺고 계신 회원님들 중엔 의사 선생님들이 몇 분 계십니다. 이번 회원 이야기의 주인공 김현수 선생님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시면서 대안학교의 교장 선생님을 맡고 계시는, 뭔가 깊은 사연이 있을 것만 같은 분이십니다. 그 이유가 궁금해 인터뷰에 앞서 선생님에 대한 신문기사와 인터뷰 등을 찾아 읽어보았습니다. 그 사연은 대략 이러했습니다. 김현수 선생님은 힘겨운 청소년기를 보내시면서 각고의 노력 끝에 의대에 진학해서 정신과 의사가 되셨습니다. 의사자격 취득 후 교도소 공중보건의로 대체복무를 하시면서 빈곤한 비행 청소년들과의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결국 아파트 담보 대출을 받아 도시형 대안학교를 여는 대형 사고(?)로 이어졌고, 지금도 ‘모두가 사랑으로 성장하는 깨우침의 공간’이란 모토로 청소년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남부순환로 대로변에 있는 성장학교 별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대안학교는 조용한 시골이나 한적한 곳에 있을 것이란 선입견이 있던 저는 도시 한복판에 있는 것이 한편으론 신선하기도 했습니다. 찾아간 날이 마침 연례 후원행사인 ‘동네방네 별난 잔치’가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좁다란 계단은 학생들과 선생님과 손님들로 다소 북적거렸습니다. ‘별지기’로 불리는 선생님들이 알뜰히 공간을 쪼개 사용하는 그리 넓지 않는 교무실에서 김현수 선생님을 기다렸습니다. 제 기억 속에 남아있는 학창시절 교무실과는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생동감, 자유, 젊음이 느껴졌다고 할까요. 한 별지기님이 제게 차를 건내주시는데, 참 밝고 건강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길 걸어가시다가 ‘도를 아십니까’란 질문을 자주 받으실 것만 같습니다. ^^
잠시 후 김현수 선생님이 오시더니 인터뷰에 적당한 장소를 찾으십니다. 후원 행사가 열리는 날이어서 온 학교가 시끌벅적한 탓에 ‘그나마 조용한' 6층 일일 주점으로 함께 걸어올라갔습니다. 명함을 드리면서 예를 갖추어(?) 다시 한번 인사를 드리고, 휘발성 강한 저의 기억을 대신해 줄 스마트폰으로 녹음을 시작했습니다. 바쁜 의사 생활과 대안학교를 병행하시는 까닭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의 경험이 큰 영향을 줬다는 사실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아울러 선생님의 힘겨웠던 청소년기에 관한 질문도 드렸습니다.
혹시 정신과를 택하신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요?
몸을 치료하는 의사도 있고, 마음을 치료하는 의사도 있죠. 정신과를 택한 건 마음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았기 때문이랄까요? 또 정신과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편견 때문에 도움을 더욱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에, 그런 분들에게 도움을 드리고자 정신과를 지원했죠.
청소년기를 힘들게 보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신 힘은 어디서 나왔나요?
제 경우 어려운 청소년기를 이겨내는게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건 교회였던 것 같아요. 교회라는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특성, 즉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 선배와 후배 등 여러 연령층이 함께한다는 점과 함께 교회에서 이뤄지는 독서, 토론 등 다양한 문화적 활동들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한마디로 외롭게 지내야하는 상황에서 교회가 외로움을 많이 해소해주었죠. 새벽기도를 다닐 정도로 신앙 생활도 열심이었죠. 사실 새벽기도 혼자 나오는 고등학생들이 몇이나 되겠어요. 그 기도를 인도해주신 전도사님이나 목사님께 많은 도움을 받았죠. 신앙 자체에서도 힘을 얻었지만 전도사님과 목사님의 격려와 관심이 중고등학교 시절 어려움을 이겨내는데 큰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빈곤 문제를 다룬 책들을 보면, 빈곤 극복의 열쇠가 관계와 교육, 즉 사람과 배움이라고 한결같이 말하는데, 당시 제게는 그 두가지가 다 있었던 셈이죠.
요즘 청소년들에겐 그런 기회가 없다고 보시는지요?
요즘 청소년들은 워낙 많은 압박을 받지만, 청소년도, 부모님도 저처럼 새벽기도에 나갈 수 없잖아요(웃음). 다양한 문화적 체험도 많이 사라졌진 것 같고요. 요즘 청소년들은 자연스럽게 힘든 상황을 이겨나가도록 도움을 주는 공동체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인 것 같아요. 부모님들이 끔찍하게 자녀를 위한다고는 하지만 부모만으로 안 되는 시기가 청소년기이거든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문득 저의 청소년기가 떠올랐습니다. 공부에 대한 압박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입시 사교육 문제가 심각하지 않던 시절이라, 학교 친구, 동네 친구들과 피곤에 지칠 정도로 운동도 하고, 이곳저곳 놀러도 다니던 기억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가 많아서였을까요. 적어도 제 학창 시절엔 소위 ‘왕따’라는 단어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물론 20여년 전 이야기이지만). 요즘 청소년들 겪고 있는 이런 힘든 상황이 의학적으로는 어떤 의미일지 궁금해졌습니다.
의학적 관점에서 요즘 청소년들이 받는 학습노동의 강도가 과하고 위험한 수준이라고 보시는지요?
그렇죠. 청소년기엔 여행이나 모험을 한다든지, 사유하고 탐색한다든지, 이런 활동이 자아 정체성 형성에 필수적인데, 요즘은 그런 경험을 하는 아이들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볼 때는 대한민국 아이들은 청소년기를 빼앗긴 인생을 사는 것이죠.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이 전반적으로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시는 건가요?
심각하죠. 청소년들의 모든 정신건강지표가 어른들보다 심각해요. 어른들보다 스트레스도 더 많이 받고요, 더 우울하고, 어른들보다 더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죠. 실제로 청소년기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우리나라는 아이들도 힘들고,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들도 힘든 상황입니다. 사실 역사라는 게 갈수록 나아져야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과 낙관과 확신을 갖는데, 현재 30, 40대 부모들이 느끼는 한국 사회는 그렇지 않거든요. 자신들의 세대보다 더 힘든 삶을 청소년들에게 강요하는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어른들에게도 큰 상처라고 생각해요.
청소년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상처가 크다는 말씀이 유난히 귀에 남았습니다. 사실 저는 기성세대의 분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도, 점점 살기 힘든 세상을 후손들에게 물려줬다는 반감 역시 가지고 있었고, 같은 이유에서 저보다 어린 친구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게밖에 살 수 없었던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이 약간은 누그러듭니다. 하지만 이러한 힘든 상황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더구나 요즘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청소년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취업 등의 이유로 대학 졸업 후까지(어쩌면 그 이후로 평생토록) 이어지고 있으니까요.
제 대학 시절을 돌아보면, 대학생들이 공부를 너무 안 한다는 어른과 사회의 우려 섞인 지적이 있었죠. 물론 학생이 공부를 안 하는 것이 좋다고 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여행이나, 독서, 동아리 활동 등 다른 활동에 관심을 가져볼 여유가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죠. 하지만 IMF 이후로는 취업 준비 등의 이유로 입시 스트레스가 20대 이후까지 이어지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요, 10대는 물론이고 20대, 30대, 40대의 상담 주제가 다 비슷해요. 그 중 제일 많은 것이 ‘나는 누구인가’하는 문제와 관련 있어요. 달리 말하자면 모든 사람들이 청소년기에 풀어야할 과제를 해결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거죠. 헛 살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등을 모르고 사는 사람이 많아요. 한국은 인간의 정상적인 발달적 욕구를 왜곡하는 삶을 강요하는 사회거든요. 대한민국에서 정상적으로 산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를 극복하려면 학교 제도 등 기본 교육 시스템을 재설계해야 하는데, 개개인들의 용기만으론 해결될 것 같지는 않고,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할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일본처럼 될 가능성이 크죠. 더 애 안 낳고, 더 무기력해지고, 노인들만 잔뜩 있는 사회 말이죠.
‘나는 누구인가’, ‘헛 살고 있는 어른이 많다’라는 선생님의 말이 또 한번 저의 가슴을 파고 듭니다. 좋은 대학에 가고, 소위 ‘잘 나가는’ 직장에 취업해 살아가는 것이 잘 사는 것이란 말을 듣고 자란 저 역시도 자아와 삶에 대한 문제는 철학자들의 영역이란 생각에 철저히 외면했던 시절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삶은 결국 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밖에 없는 상황-몹시도 고통스러운-을 제게 안겨주더군요. 아무런 대비없이 다가온 삶의 고통이란 불청객을 만나 몸부림치며 힘들게 늦공부를 하던 지난 날이 떠오릅니다.
사회적 합의를 통한 제도 개혁은 당장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닌데,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볼 수 있는 노력은 없을까요? 어쨌든 개인은 계속 그 이런 사회 안에서 살아하는데...
개인과 집단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 쉽진 않죠.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남들이 요구하는대로 결정 내리며 살아가는 경우가 훨씬 많으니까요. 그리고 부모님들도 자녀가 무엇을 결정했을 때에 그것을 존중해 주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아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할 것 같네요.
그런데요, 요즘 아이들 중에는 어른들의 기준대로 살고 싶어하지 않는 아이들도 많이 있어요. 이렇게 기존의 교육 제도에 대한 저항에 많은 사람들이 동참해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개인적으로 별을 좋아해서 그런지, ‘별’이란 학교 이름이 예쁘게 들렸습니다. ‘성장학교’라는 단어와의 궁합도 왠지 잘 맞는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학교 이름의 의미를 묻는 질문이 식상하고 빤한 질문 같아서 할까말까 망설이기도 했지만, 자고로 이름짓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치를 압축하고 혼을 담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학교 이름을 ‘별’이라고 지은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사실 아이들을 표현할 때 별 같은 아이들, 별처럼 빛나는 아이들, 이런 표현을 많이들 쓰잖아요. 저도 학교 이름을 짓기 위해서 일기장에 이런저런 이름들을 적어봤는데요, 모든 아이들이 빛났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여러 별들이 모인 별자리가 생각났어요. 대부분 이곳에 오는 아이들은 기존 학교에서 졸업을 못하고 따돌림 당하던 아이들이라 그야말로 빛을 잃은 상태로 오거든요. 그런 아이들이 모두 어울려 빛나는 별자리가 좋겠다는 생각에 별이라고 지었어요.
그리 길지 않은 인터뷰 내내, 김현수 선생님의 휴대전화는 계속해서 바쁘게 울리고, ‘깨톡깨톡(?)’거렸습니다. 공연히 바쁘신 분 시간 뺐는게 아닌가하는 송구스러움이 몰려왔습니다.
의사생활하시는 것만으로도 바쁘실텐데...
제가 맡은 직책이 많아요. 특히 올해는 경기도 정신건강증진센터장, 안산 트라우마센터장 등을 하게 되어 많이 바쁘네요. 올해는 제게도, 국민 모두에게도 특별한 한 해인 것 같네요. 4.16참사도 있었고...
바쁘신데 시간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부모님들에게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 한마디 부탁드려요.
우리 나라 아이들은 너무 많이 혼나요. 잘하지 못한다고 혼나죠. 결국 사교육이란게 우리 아이들을 더 잘하게 만들기 위해 강요하는 거 잖아요. 저는 우리 아이들이 덜 혼나고, 강요 받지 않고, 아이들의 의사가 존중되었으면 좋겠어요. 너무 많은 아이들이 자신이 실패자이고, 좋은 사람이 아니고, 훌륭하지 않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어요.
이는 어른인 제게도 해당되는 말씀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자신의 존재에 대한 경의와 감사에 대해선 가르쳐주는 어른이 드문 상황에서, 오직 성적으로만 평가받으며 자존감 상실과 패배감을 마음 한켠에 차곡차곡 쌓으면서 학창시절을 보냈으니까요. (물론 당시엔 그렇게 살고 있다는 자각조차 없었죠.) 단단히 굳은 그 부정적인 퇴적층을 걷어내기 위해 성인이 되어서도 고군분투하던 지난 날들이 떠올랐습니다.
청소년들에 평상시에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으신지요.
포기하지 말라고 하죠. 어떤 포기든지. 왜냐면 지금은 청소년들 사이에서 자기가 잘 하지 못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문화적 현상이에요. 포기하고 무기력하게 지내고 시간을 버리는 거죠. 사실 일종의 수동적인 반항이라고 할 수 있죠. 난 하지 않겠다는 식의... 문제는 사회가 강요하는 것은 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열심히 하면 좋겠는데,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포기하면서 자기 자신마저 포기하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사진촬영을 부탁드렸는데 별지기 선생님들과 함께 찍자고 하십니다.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별지기 선생님들 모두 밝고 예쁘십니다. (노총각의 개인적 흑심에서 나온 느낌은 결코 아니란 걸 말씀드립니다. ^^) 위태롭고 삐걱거리는 세상이지만 밝은 ‘빛’을 마음에 품고 세상을 바꿔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뿌듯함을 느끼며 천천히 별들이 빛나는 학교를 빠져 나왔습니다.
나눔+팀 채수민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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