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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걱정없는세상/[삼각지통신]사무실얘기

[영유아사교육] 일제시대에도 '영어유치원'이 있었다?!

'기쁨무한'님의 영유아사교육포럼 국회 토론회 참관 후기

 

지난 95일 국회에서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김상희 국회의원의 공동주최로 영유아사교육 포럼의 토론회 (‘영유아 사교육 실태 분석 및 대안을 모색한다’)가 있어 참석했다. 정확하게는 영유아 자녀를 키우고 있는 학부모 자격으로 영유아 사교육 경험을 발표하는 논찬자로 참석했다. 참석해서 여러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1. 첫 번째, 내가 놀란 것은 영유아사교육의 과열 현상이 그 뿌리가 깊다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대학 입시가 심각했고 특목고,국제고 등이 생기면서 중학생들의 경쟁이 치열해졌고,그러다보니 사립초등학교를 보내고, 사립초등학교를 보내기 위해 영유아 대상 영어학원을 보내야 할 수 밖에 없어서 사교육이 과열된다고 알고 있었다. 또한 입시사교육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사교육 업체들이 영유아 영어쪽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마케팅을 집중하는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토론회에 나오신 육아정책연구소의 이윤진 연구위원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일제 시대에도 일본어로 교육하는 유치원이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인과 조선인 유아들이 함께 다니는 이른바 애국 유치원이 있었단다. 일제치하, 일본인들과 어울려 출세하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일본어를 가르치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이 오늘날 남들보다 빨리 영어를 가르치고 싶어 영유아 대상 영어학원을 보내고 국제학교를 보내는 부모의 마음과 무엇이 다를까? 뿌리 깊은 영유아 사교육의 역사를 생각하며 나는 놀랐다.

 

1970년대 고교평준화가 도입되기 이전에는 어땠을까?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라 상상이 안되지만 중학교를 가기 위해 재수, 삼수를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지금의 지나친 사교육, 입시 경쟁은 결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뿌리가 깊다면 그만큼 더 근본적이고 과감한 해결방법이 필요할 것이다.

 

19세기 후반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폐지되고 개인의 능력을 중시하는 시대가 되었다면 이제 21세기에는 개인의 이익만 추구하는 경쟁력보다는 사회에 도움이 되는 공헌력실력으로 간주하는, 시대를 바꾸는 또 한 번의 개혁이 필요하지 않을까? 지난 시대의 가치관으로는 새로운 21세기를 만들어 나갈 수 없을 것이다.

 

 

#2. 두 번째, 부모인 나보다 전문가들은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영유아대상 영어학원이 그렇게까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남들이야 돈 있으면 보낼 수도 있지, 하지만 나는 보내고 싶지 않다는 정도의 생각만 있었다. 영어를 가르치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어린 시절의 영어공부는 효율성이 떨어지니 그 시간에 다른 걸 하자, 이런 생각이었다.

그런데 전문가들의 의견은 심각했다.

 

1) 고비용의 영유아 사교육은 교육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고소득 부모의 부의 대물림을 조장해 오히려 교육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계급의 재생산이란 말도 나왔다. , 그렇다면 돈이 있어서 시킬 수 있다면 좋다는 거 아닌가? 고비용의 사교육을 시키면 나중에 돈도 많이 벌고 더 높은 계급에 올라갈 수 있다는 말이니까. 이럴 때는 죄수의 딜레마 때문에 영유아 사교육을 시킬수록 더 현명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

 

2) 영유아사교육은 아이들에게 사회정서적 문제를 발생시키는데, 자기주도성과 자신감이 없어지고 수동적인 인격을 만든다는 것이다. 지나친 사교육은 아이들의 정상적인 발달을 방해한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엄마들이 반신반의 하는 대목이다.

 

한 지역에 유아대상 영어학원 10개가 생기면 소아정신과 1개가 생길 정도라고 한다. 아이들에게 영어, 한글 등 교과목의 학습부담이 주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매우 크고, 전인발달에 어려움을 준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들의 속마음은 가난한 공장 노동자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수동적이고 자신감 없어도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게 아닐까?

 

나는 약국에 근무하면서 손가락 잘린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근처에 정형외과가 있는데 공장에서 일하다가 다친 사람들이 자주 온다. 그들의 굳은 살 박힌 투박한 손을 보면서 내가 이렇게 일해야 한다면? 내 아들이 이렇게 일해야 한다면?’ 걱정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었다. 내 안에도 노동에 대한 천시, 거부감, 두려움 같은 것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사회계급적 차이가 심할 때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쉽게 포기하게 되지 않을까. 속이 어떻게 문드러지든, 일단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 가면 안심이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렇게 생각하니 아무리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해도 엄마들이 사교육 시키는 걸 막을 방법은 없을 것 같다. 개인들은 눈앞의 경쟁에서 앞서나갈 궁리만 하게 되니까. 그런데 이렇게 경쟁력은 있지만 속은 썩은 아이들이 자라서 만드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3. 결국, 대만과 같은 과감한 결단이 필요...

 

결국은 교육부에서 나오신 분이 "개인적 의견"임을 강조하며 내린 결론이 정답일 것 같다. 사교육 문제는 공급자 규제로 풀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완전 금지로 할지, 총량규제로 할 지는 논의가 필요하지만 국민적 합의를 통해 법적 근거를 만들어야 하고 처벌규정도 필요하다고 하셨다. 그 분은 공무원이라 자신이 한 말이 정부를 대변하게 되니 말 한 마디도 조심스러웠을 것 같다. 그래서 공직적 멘트는 그야말로 공식적으로 당연하고 보편타당한 이야기가 되었지만 개인적 의견은 평소 생각하던 진심이 아니었을까? 현재의 법적 테두리 안에서 아무리 단속을 해봐야, 유치원, 어린이집 규제를 강화하는 것 밖에 더 있을까?

 

교육문제는 정말 엉킨 실타래 같아서 생각하다보면 이것도 걸리고 저것도 걸리고 너무 복잡해서 결론을 내리기가 힘들어진다. 하지만 숙제를 금지한 중국과 캐나다처럼, 어린이 영어교육을 금지한 대만처럼, 우리도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나갈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