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간 몰아치던 강풍이 잠잠해지고 모처럼 ‘봄날’같았던 날, 로사님(최승연 선생님)을 인터뷰하러 국립중앙박물관을 향했습니다. 마음씨 착한 로사님이 필자를 배려하여 삼각지역 사무실로 오시겠다는데 저도 외근 한번 해보자며 극구 말렸던 걸 뿌듯해 하며, 삼각지역이 아닌 이촌(국립중앙박물관)역으로 출근을 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난 봄^^> 로사님은 사무실 크고 작은 행사를 푸근한 웃음으로 한결같이 지켜주시는 분으로, 명절 때마다 상근자 한명 한명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주시는 분으로 저에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노워리상담넷에서는 생활 및 심리 영역 팀장으로 활발한 상담 활동을 하고 계시지요.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 카페에서 로사님의 이런 저런 삶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선생님.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네, 무슨 이야기를 해야하나, 쑥스럽네요.(웃음) 저는 전업주부입니다.(웃음) 어떻게 하다가 상담넷 생활 및 심리 영역 팀장이 되었는데, 내가 과연 자격이 있나 싶어서 고민과 걱정중입니다. 고1이 된 딸아이가 하나 있구요. 이공계 전공을 했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인문, 역사 등에 관심이 많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교양강좌들을 듣기 시작한지 5년이 되었네요. 돈 버는 것도 아닌데,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을 요즘 실감하고 있습니다.(웃음)
노워리 상담넷의 상담위원으로 함께 하시게 된 계기가 있다면?
내가 이 단체를 위해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 생각했는데, 이 단체에는 아무래도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재학중인 아이을 둔 부모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저도 아이를 키우다 보니까 지나고 보면 아무 일이 아닌데 아웅다웅하고 걱정할 때가 참 많았던 것 같아요. ‘누구 아이는 걸음마 뗐대’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 아이는 왜 아직 못 걷나,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걱정하게 되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받아쓰기 점수 받아온 것을 보면 또 걱정하게 되고...(웃음)
저는 아이가 걸음마가 느렸던 편이어서, 돌잔치 끝나고 손님들 집에 가고 나니까 그때서야 엉금엉금 걷기 시작하더라구요. 아이가 중학교 입학하고 나서 첫 성적표를 들고 왔을 때는, ‘아 우리 애 수준이 이정도였구나’ 싶어 충격적이기도 했구요.(웃음) 그래도 그런 일들도 지나고 보면 별 일이 아니고,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를 비교적 많이 키운 평범한 부모로서 ‘지나고 보니 별거 아니더라, 그게 중요한게 아니더라’ 는 이야기를 조금 더 와닿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상담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카페에서 만난 로사(최승연)님>
고1 따님을 두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최근에는 정세청세에서 활동하는 따님 이야기를 칼럼에 써주시기도 했지요. 아이를 키우면서 선생님의 성장도 참 많으셨을 것 같은데, 아이 이야기 좀 해주세요.
제가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IT관련 회사에서 계속 일을 했었어요. IT업계가 워낙 바쁘다보니까 아이에게 미안하고, 아이가 할머니와 지내다보니 또래와 지내는 걸 힘들어 하는 것 같아, 그만두게 되었지요. 그 후에 교육에 대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어요. 인터넷에서 만난 엄마들과 품앗이 교육을 시작하고 이후에는 학교 엄마들과 품앗이 교육 모임을 하면서, 아이들과 요리 수업도 하고 박물관 구경을 다니기도 하면서 재미있게 지냈어요. 아이가 초등학교 시절 한번도 사교육을 받지 않았던 것은 그런 품앗이 교육을 하면서 사교육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이유가 컸던 것 같네요. 초등학생 때는 등수도 안나오고, (웃음)
그러다 아이가 중학교 첫 성적표를 받고는
울면서 집에 들어오길래 딱한 마음에 ‘니가 원하면 필요한 부분에서 사교육을 받는 방법도 있다’고 했는데, 아이가 그래도 자기가 해보겠다고 해서 쭈욱 사교육 없이 지내왔어요.사교육 없이 자녀를 키우게 되었던 어떤 신념이 있으셨어요? 그때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으로 활동하시기 전이었을 텐데요.(웃음)
한번은 저희 아이가
5학년 때 닌텐도를 사달라고 한 적이 있었어요. 저는 안된다고 했는데, 아이 아빠가 ‘그럼 1주일 후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해서, 아이가 닌텐도롤 사야하는 이유, 사고 싶은 팩의 개수, 닌텐도를 일주일에 몇 시간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 등등을 정리해왔어요. 그래서 가족 토론을 거쳐 닌텐도를 구입했어요. 한번은 또 그런 일이 있었네요. 집에 트와일라잇 원서가 있었는데, 아이가 원서와 비교해보고 싶다고 번역본을 사달라고 했어요. 저는 그게 낭비인 것 같다고 했더니 아이 아빠가 또 ‘1주일 후에 이야기하자’고 해서, 아이가 번역본이 필요한 이유를 3장짜리로 정리해왔지요. (헉, 3장이나!) 결국 번역본을 구입하게 되었구요.돌아보면 아이 아빠가 중심을 잘 잡아주었던 것 같고, 저도 아이의 결정은 무엇이든, 설령 독서토론 모임을 시작했다가 하루만에 ‘엄마, 나 안갈래’라고 하더라도, 아이의 판단을 믿고 강요하지 않는 편이에요. 결국 가장 중요한 건 공부가 아니라 아이와의 관계, 소통이라고 생각하고, 그걸 이루려면 아이를 믿어주는 것이 가장 필요하거든요. 가장 힘들 때 아이가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부모여야 하는데, 그건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래 걸리더라도 아이를 긍정해주고 믿어주는 것이 우선인 것 같아요.
가족끼리의 신뢰관계가 무척이나 단단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도 아이도 자랄수록 사교육을 받지 않은 것에 대해 스스로 불안해하거나, 경쟁위주의 학교문화에 두려워하거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아이는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는데, 입학식 다음날부터 야자를 시키더군요. 그래도 아이는 고등학교 3년을 재미있게, 기억에 남게 보내고 싶다면서 교지 편집부에도 들어가고, 중학생 때부터 활동하던 정세청세에서 기획팀장을 맡아, 동분서주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힘들면 전학을 가거나, 홈스쿨링을 하는 방법도 있다’고 제가 이야기하지만, 지금은 저의 걱정보다 아이가 더 밝게,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 것 같아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아이의 꿈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게 될지 앞으로 지지하며 지켜보아야 하겠지만요.
<사진: 2011년 5월, 노워리상담넷 개소식에서 로사(최승연)님>
상담넷 상담위원으로 함께 하면서 가장 성장하게 된 것이 있다면?
다른 것보다도, 답변을 달면서 제가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정리되는 느낌이랄까요? 아, 그래 이런 거였지-라는 게 더 명확해지니까 그런 점에서 참 좋은 것 같아요.
생활 및 심리 분야에서 팀장으로 활동하고 계신데, 이 영역의 질문 중 가장 인상깊었던 질문이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인상깊었던 질문은 지금 잘 생각이 안나고요, 샤바누님과 함께님의 답변이 생각나네요.(웃음) 샤바누님의 경우는 달아주시는 답변이 다 내공이 탄탄한 느낌이다보니, 아이가 하나 더 있었으면 샤바누님의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함께님은 요즘 올려주시는 칼럼을 보면서 함께님이 가르치는 아이들은 참 행복하겠다, 함께님과 함께 공부하는 1년만큼은 학습에 대해서 긍정적인 기억을 가질 수 있겠다 싶었어요. 상담넷에 참 훌륭하신 분들이 많으세요.(웃음)
상담넷에서 활동하시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으셨나요? 상담넷 뿐 아니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다양한 활동에 함께 하고 계시니, 그런 활동을 하면서 힘든 부분이 생기면, 어떻게 극복하시는지요.
작년말 6기 등대지기학교 노원구 조별 미션차 모임을 가졌는데, 아무도 나오지 않아 1~2시간을 기다리다가 혼자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간 적이 있었어요. 그날 참 힘들었구요.(웃음) 노원구 지역모임을 하면서 경험이 없는 평범한 주부가 모임을 조직하고 꾸려가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절감했지요. 김해의 토정신과학샘, 울산의 피그말리온님, 존경합니다.^^
제가 종로구 지역모임에도 참여하고 있고, 봄빛님, 억새풀님과 함께 독서 모임을 꾸리는 것도 있는데요. 좋은 분들과 좋은 책을 읽고 나누는 일이 그런 소진을 막아주는 것 같아요.
선생님, 모임을 몇 개씩이나! 진짜 바쁘시겠어요.
그러니까 백수가 과로사한다니까요. (웃음)
마지막으로, 생활 및 심리 분야 관련해서, 학부모들이 꼭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가치나 원칙을 정한다면, 어떤 것들을 꼽고 싶으신지 말씀해주세요.
자녀와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너에 대해 항상 지지한다, 응원한다’는 부모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관계 형성은 오래 걸리고 더딘 과정이지만, 아이를 믿어주고 긍정해주는 과정에서 아이가 스스로를 인식하고 행복해하지 않을까요. 아이의 자존감은 상장 몇 개를 더 받아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부모로부터의 인정에서 나오는 거거든요. 그 뿌리 깊은 인정이 자기 삶을 개척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겠지요. 부모님들이 그걸 잊지 않으셨으면 해요.
로사님의 푸근한 웃음, 짧은 인사에도 느껴지던 따뜻함의 근원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 것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평범한 학부모다’라며 손사래를 치시지만, 야무지게 성장하고 있는 딸아이와 함께 걸어온, 또 걸어갈 다정한 길이 그 자체로 다른 부모들에게 큰 위안과 격려가 되겠지 싶습니다.
이상, 노워리상담넷 생활 및 심리 영역 팀장으로 활동하고 계신, 로사님(최승연)의 인터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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