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지기 학교 세 번째 시간은 우리 교육을 새롭게 하는 일을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아이들의 행복한 교육제도를 고민해오신 좋은교사운동 정병오 대표님께서 함께 해주셨어요. 삶 자체를 통해 윤리를 가르쳐 온 교사이시고 PPT 없이 강의하시는 전설의 강사시죠. 교사의 현장경험으로 제도와 문화까지 바라 본 <아이들이 행복한 미래형 교육제도를 그린다>라는 제목으로 강의해주셨습니다. 우석훈 박사님과 조국 교수님의 사이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지만 본인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전문가라며 유쾌하게 강의의 문을 열었습니다.
‘뻔한’ 답이 아닌 ‘정직한’ 답을 적어주는 선생님
정병오 대표님은 가르치기 제일 막막하다고 손에 꼽는 남학생 중1담임을 맡은 경험을 들려주셨습니다. 이 막막함을 뚫기 위해 ‘일기쓰기’를 했는데 아이들이 처음에는 3-4줄 정도의 평이한 일기를 써왔다고 해요. 선생님은 항상 일기마다 10줄 이상 답을 써주셨고 한 줄 한 줄에 의미를 부여했더니 아이들이 일기쓰는 분량이 조금씩 늘어갔다고 합니다. 또 선생님과 신뢰가 쌓이면서 자신의 마음을 써내기 시작했고 그 속에 아이들의 고민이 담기는 것을 발견하셨다고 합니다. 그때 정 대표님은 아이들에게 ‘뻔한 답’이 아닌 ‘정직한’ 답을 적어주는 선생님이 되기로 하셨다고해요. 10년, 20년이 지나서 다시 일기장을 보아도 이때 선생님이 자신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대해주었다는 느낌이 들도록 말이죠. 정 대표님은 이 시절, 아이들의 고민 속에 시대의 모순이 녹아져있다는 것을 알게 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아이들의 고민 속에 들어가 그 고민에 대해서 정직하게 응답한다면, 이 시대의 문제에 응답하는 일이 되겠다고 다짐하셨다고 합니다. 정 대표님은 강의의 초입에서 갈수록 교육이 이 시대 모순의 핵심이 되어 아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쳐 마음이 아프다며, 현재 한국교육이 지닌 모순 속에서 아이들의 행복한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고민을 공유해주셨습니다.
비효율적인데다 의미 없는 교육
강의안에 인용된 문래 중학교 아이의 글이 명문이었습니다. 정병오 대표님은 이 글에서 아이들이 학교와 학원의 이중생활로 많은 시간을 공부하면서 보내고 있음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한국 아이들은 일주일에 평균 50시간이상 공부로 매우 많은 시간을 보내는 반면,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와 같은 북유럽의 아이들은 절반 정도 되는 평균 30시간정도 된다고 해요. 하지만 PISA 평가에 따르면 북유럽 아이들의 성적은 한국의 학생들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하는데 모두가 의아해했습니다. 이는 한국교육의 효과가 상대적으로 비효율적이라는 의미이니까요.
또한 ‘매우 잘했다’, ‘잘했다’, ‘보통이다’ 등등의 등급으로 분류해서 평가하는 유럽의 방식은 등수로 순위를 매기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평가방식이지만, 교육전문가들이 본 학습효과는 그 이상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공부를 매우 많이 하고 또 잘하는 친구들은 사실 비효율적으로 공부하기에 고통스럽고, 다른 아이들은 열심히 해도 상대평가에 의해 등수에 변동이 없어서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지요. 정 대표님의 딸의 경우는 “공부할수록 업적이 많은 즉 외울게 많은 위인들이 싫다며 김구 선생님이 제일 싫다”고 하여 강의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습니다. 즉, 한국의 교육은 ‘상대평가’라는 시스템 속에 불안심리가 작동해서 학생들이 많은 시간을 공부에 매달리지만 그 효과는 비교적 낮다는 것이었습니다.
선발과 배제의 패러다임 속에서 진짜 공평성을 찾아야 한다
정병오 대표님은 한국이 좋은 교육과 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교육에 대한 문화적 의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이 가진 특징인 ‘선발과 배제의 패러다임’이 교육의 근본 철학이자 인재를 선출하는 과정에서의 ‘공정한 방식’으로 생각해왔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교육이란 ‘사람을 키우는 과정’이라는 것이 주요한 본질이며 또한 어떤 시험제도도 100% 완벽하고 공평하게 학생들의 실력을 입증할 수도 없고 일부만을 평가할 뿐이라고 정 대표님은 주장합니다.
한국교육이 사회변동을 혁신하는 기능을 하고 있어서 가난한 사람도 교육을 통해 성공할 수 있는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대학입시라는 것이 암기과목 중심으로 단순할수록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공평한 기회를 제공했었지만, 다양한 인재를 선출하고자 시도했던 수능, 특목고, 수시, 논술 등은 오히려 사교육의 수위를 완전히 변화시켰습니다. 이러한 입시과정들은 다양한 측면(사고, 글쓰기, 면접능력 등)을 요구하면서 소위 문화자본이 없으면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만들곤 합니다. 따라서 진짜 공평성 있는 교육환경을 만들기 위해 정병오 대표님은 기회의 균등만으로는 안되며 결과의 보상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미국의 지역 할당제와 국내의 서울대 지역균등선발과 같은 제도 말이죠.
교육제도의 변화는 사회의 현실과 닿아있다.
정병오 대표님은 교육제도는 사회의 일부이기 때문에 사회적 상황이 변화에 있어 중요한 요소라고 말합니다. 북유럽 학교는 중등과정까지 평등화 교육, 고등학교 과정부터는 다양화 교육을 통해 각 분야의 인재들을 고르게 선출하는데 그것은 근본적으로 그 사회가 격차 없이 평등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회보장제도, 임금, 문화격차 적기 때문에) 사회가 불평등 할수록 교육은 획일화 되는데, 사회격차에 대한 불안감을 극복하지 못하면 아무리 교육의 본질적인 부분 “다양하게 살아라”, “창의적인 인재가 되어라”라고 외쳐도 소용이 없다고 정 대표님은 조언합니다.
또한 대학입시에 대한 마인드를 ‘선발과 배제의 방식’에서 ‘발견과 발굴’의 과정으로 나아가야한다고 합니다. 정 대표님은 북유럽국가에서 수많은 교육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들이 가지고 있는 교육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과 아이들의 재능을 발견하고 발굴하는 평가 시스템에 대해 많이 부러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 대표님은 참가자들에게 국어 86점이 가진 의미가 대체 무엇인가 반문했습니다. 그것은 아이들의 속성을 반영할 수 있는 객관적인 수치가 될 수 없으며, 무엇보다 공교육에서 아이들의 됨됨이와 내재된 재능이 발견되고 기록되는 문화로 바뀌었으면 한다고 소견을 붙였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 교과과정 개선, 평가시스템 및 관료적 학교구조 개선 등 해결해야할 숙제는 많지만 강의를 듣는 내내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건강한 자의식을 형성하는 일에 힘쓰려면
아이들 대부분의 주요 고민은 단연 공부라고 합니다. 하지만 공부의 목적에 있어서는 너무나 개인적인 성공에 치우쳐져 있는 것은 우리사회가 교육을 철저하게 ‘사적인 영역’으로 치부했기 때문이라고 정병오 대표님은 지적합니다. “3년 동안 뼈빠지게 공부해서 평생 안정적으로 살고 싶다.”라는 실제 공부를 매우 잘했던 학생의 대답은 기가 막히지만 부인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을 담고 있었습니다. 아이들 뿐 아니라 학부모 역시 아이들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선행학습’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 과정에서 교육의 진정성도 상실되고, 공부에 있어 가장 중요한 동기부여인 ‘흥미성’도 잃는 등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병오 대표님은 학생들이 공부의 목적에 대한 건강한 자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합니다.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일방적인 결정이 아니라 충분한 대화를 통해 함께 동기를 마련해가는 노력이 중요하고, 이 과정에서 학생과 부모를 다리놓아줄 수 있는 제 3자가 객관적으로 필요를 조절하는 일도 중요한 포인트라고 합니다. 교사의 역할도 매우 중요한데, 외국의 경우처럼 학생과 교사가 갈등할 경우 세부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매뉴얼이 있어서 성숙하게 학생을 지도하고 학생들도 교사를 따르며 자의식을 건강하게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교육은 행복한 삶을 위한 전제가 되어야 한다.
학생들에게 정직한 답을 써주면서 교육제도의 구조적인 모순까지 직면했던 정병오 대표님의 강의에서 진하게 ‘스승’의 마음이 묻어져 나왔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학부모의 입장에서 또 가르치는 교사의 입장에서 무엇이 진정 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인가 라는 질문은 너무나 울림이 되었습니다. 말로만 좋다 좋다 들었던 북유럽 국가들의 사회와 교육환경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어서 좋았고, 한국의 실정에 맞게 좋은 제도와 문화가 점진적으로나마 실현되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학생, 학부모, 교사 그리고 한국 사회가 ‘행복한 삶’을 이뤄가는 데 역할하는 ‘교육’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성숙함을 찾아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대학체제 개편'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정보를 소통하고 많은 이들과 함께 그것을 구현해나가는데 기쁘게 달려가고 싶은 커뮤니케이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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