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현 선생님 1강은 아직 못 들었는데 김선미 교수님 강의와 엄태현 선생님의 2강만 먼저 듣고 잊어버릴까봐 일단 소감문 씁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여러 학교들을 만난 이후 밤 새는 날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어요. 밤 시간이 아니면 강의를 집중해서 잘 들을 수가 없어서 자꾸 새벽에 듣다 보면 저도 모르게 날이 밝아오네요.
아무튼 이번 강의들을 들으면서 든 가장 주된 생각은 '역시 쉬운 건 하나도 없구나' 였습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아무튼 일정 정도 정해진 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얻을 수 있는 영어에서의 소득을 남들보다 쉽게, 빨리, 말하자면 '돈으로 사려고'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잠시 갔다 오면 될 것 같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결정을 할 때 쉽게 고려하지 못하고 상상하지 못하는 나갔을 때, 또 다녀온 이후의 아이들의 삶, 또 부모의 삶 그것에 대해 단편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외국에서 "생활"을 해보고 싶은 막연한 꿈 같은 것이 있었어요. 제가 대학 다닐 때도 어학연수가 거의 필수처럼 되었을 때였는데 어학연수를 가서 어학원을 다니면 한국에서 어학원 다니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 같은 상상은 가보지 않아도 되더라구요. 그런 것 말고 현지에서 현지인의 삶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서 (물론 영어를 위한 부분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궁금함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외국물"을 먹고 싶은 마음이었달까요.)
그래서 제가 체험해본 것은 work&travel (미국에서 단기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돌아오는 것), working holiday 비자로 캐나다에서 체류하기, 미국 캠프에서 카운슬러(캠프 교사 정도의 위치)로 일해보기, 이렇게 세 가지였습니다. 세 가지의 삶이 많이 달랐는데요,
work&travel로 미국에 있을 때는 놀이공원에서 일을 했어요. 미국에서 여름 동안 세계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을 하고 현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제공해주고 있는 프로그램인데,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우리의 삶이 아름답지는 않더라구요. 저희는 그저 최저임금 노동자였다고 볼 수 있지요. 하하.
그 때는 기숙사에서 셔틀을 타고 일하러 다니고 (일주일 5일, 40시간 풀타임 근무), 현지인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이 같이 기숙사에서 지내던 유럽이나 다른 아시아에서 온 우리와 똑같은 입장의 사람들과만 교류할 수 있었습니다. 그나마 모두가 대학생들이었고, 각자의 나라에서는 그래도 반듯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운이 정말 좋아 놀이공원 기념품 가게 캐셔였지, 놀이공원 청소부도 많았고, 놀이공원 말고 그랜드캐년처럼 국립공원으로 보내진 친구들은 호텔 청소가 대부분 맡은 역할이었습니다. 실제로 제 대학 동기도 제가 다녀온 이후에 같은 프로그램으로 갔었는데 두 달 동안 호텔 청소만 하다 왔었어요.
working holiday 비자(1년 동안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고 일도 할 수 있는 비자)로 캐나다에서 지냈을 때는 정말 고립의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이, 말 그대로 손에 비자만 쥐어주기 때문에, 스스로 지낼 곳, 할 일을 찾아야 하는데, 생각보다 쉽지않더라구요. 지금도 1년에 수백명의 대한민국 청년들이 이 비자를 손에 쥐고 캐나다로, 호주로, 뉴질랜드로, 일본으로 가고 있지만, 막상 현지에서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서빙을 하거나 일본 스시집, 중국 식당 등에서 일을 합니다. 역시나 최저임금 노동자이기 때문에 자급자족하려면 풀타임으로 일해야 하고 생활을 즐길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없는 편이지요.
저는 어찌어찌 일이 잘 풀려서 밴쿠버에 있던 스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거기서도 저와 같은 비자를 들고 영국에서 날아왔던 같은 처지의 친구들과만 겨우 교류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현지인을 만나볼 수 있을까 정말 많이 고민해봤지만 방법이 많지 않더라구요. 우리나라에 예를 들면 필리핀 사람이 비자 하나 들고 들어온 걸 상상하면 되겠죠. 뭘 할 수 있을까요? 어디 가서 한국인과 어울릴 수 있을까요?
(물론 저는 캐나다에서 지냈던 동안이 개인적으로 인생의 휴식기였고 참 좋았기 때문에 전혀 후회하지 않지만 영어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미국에 캠프 카운슬러로 갔을 때는 얘기가 좀 다르더군요. 일단 주어진 역할이 최저임금 받는 캐셔보다는 훨씬 나은 캠프 교사였고, 아주 소규모의 커뮤니티 속에서 현지인과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함께 섞여 있었으니까요. 이런 저런 경험들을 하면서 느꼈던 건, 현지인과 동등하게 아니면 현지인이 우호적으로 대해주는 환경이 아니라면, 아무리 오래 현지에 머무른다고 해도 영어를 배우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는 않겠구나 하는 사실이었습니다.
실제로 밴쿠버에 있었을 때는 정말 뜨어~스럽게 거기에 한국처럼 벼룩시장 같은 것도 있었는데 (한국어로 된, 정말 한국인들을 위한 정보지), 거기에 보면 과외구하는 광고가 심심치않게 올라왔었어요. 저도 처음에 자리 잡기 전에 할 일도 없고 돈도 없길래 실제로 한 가정에 전화를 걸어본 적이 있었는데, 제가 XX대학 영어교육과 학생이라고 하니까 너무 좋아하시면서 과외를 부탁하시던데요. 하하. 출국 전까지 지긋지긋하게 하던 과외를 캐나다까지 와서 해야겠냐 싶어서 돈의 유혹을 뿌리치고 접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 밴쿠버에 있을 때 처음 한 달 정도는 아빠가 아시는 분이 1년 반 교환근무를 가 계신 분이 계셔서 그 댁에 머물렀었어요. 그 집에 당시 고등학생(1학년이었던 것으로 기억) 딸과 초등학생 아들(5학년 정도)이 있었는데 그 아이들의 모습이 딱 이번 강의에 나왔던 아이들 모습이었습니다. 고등학생은 도저히 현지 친구들과는 어울리지 못하고 한국인 친구와만 어울려 지냈고 반면 초등학생 아들은 한국인/동네 중국인/백인 캐나다인이 모두 섞여서 스케이드보드를 타고 비디오 게임을 하면서 즐겁게 지내더군요.
일부러 마음 먹고 조기유학을 다녀온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단기간 교류를 하고 돌아온 아이들도 돌아와서 적응이 힘들고 특히 딸래미는 워낙에도 공부를 썩 잘했던 것이 아니었는데 심지어 1년을 버리고 고등학교 1학년으로 다시 들어갔는데도 수학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더라구요. 과외하고 난리였지만 썩 좋은 대학에 가진 못했습니다. 아들은 1년 반 체류 후 말하자면 "가벼운 생활영어"는 무리가 없을 만큼이라고 들었는데, 그래봤자 초등학생 영어였겠죠. 돌아와서 그만큼이라도 유지하려고 엄청 고생이라는 이야기를 아주머니를 통해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무튼 정말 이 강의를 듣기 직전까지만 해도 심지어 몸소 이런 저런 체험을 했으면서도 조기 유학에 대한 환상, 기러기 가족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고 해야 솔직할 것 같은데 이번 강의를 들으면서 그런 선택을 했을 때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간접 체험을 하고 났더니 저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조기 유학이나 기러기 생활은 기를 쓰고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특히 저는 김선미 교수님의 강의가 확 와 닿았던 것 같아요. 깨놓고 공개하기가 참 두려우시겠지만 사회적으로 공론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겠지요.) 모두가 덮어놓고 쉬쉬하면서 계속 더 많은 나홀로 조기유학생이 생겨나고 더 많은 기러기 아빠들이 생겨나는 일을 막아야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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