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찾고자 오늘도 길을 헤맨다”
정수진 (32세, 주부, 경기 용인)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가 두 개 있다. 대한민국 최초로 여성이 대통령이 되는 이야기를 다룬 ‘대물’과 조선시대 성균관에서 벌어지는 청춘들의 성장 이야기인 ‘성균관 스캔들’이다. 아줌마로서도 꺅 소리 날 만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선남선녀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도 흡입력이 높지만 두 작품 모두 또 다른 의미로서 내게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누군가 분명히 꿈꾸고 있지만 아직은 현실 속에서 그저 어려울 수 밖에 없는 문제를 앞에 두고, 꿈을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해 생존하는 방식을 택하는가 아니면 꽉 막힌 현실 속에서도 어떻게든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내어 그것이 더 가치 있는 일임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택하는가의 문제는 비단 드라마 안의 이야기 전개뿐만 아니라 작금의 현실 속 하루에도 늘 적용되는 문제이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사교육이 만연한 대한민국 현실 속에서 갈대처럼 흔들리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라는 단체를 접하면서 등대지기 학교를 만나고 여러 선생님들의 주옥 같은 명강의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결국에 내가 늘 다시 고민하게 되는 문제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단순히 사교육을 시키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육아와 교육에 대한 마인드 더 나아가 삶의 자세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맞물려 있는 고민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 적인 30여년 전에도 사교육과 공교육의 문제는 이 땅에 늘 있어 왔고 나 또한 사교육의 혜택을 어느 정도 받으면서 자라났다. 여기서 혜택이라 함은 그 당시 어려운 가정경제 속에서도 사교육을 접하게 해 주셨던 교육에 열정적인- 어떤 방향으로든 - 부모님이 있었다는 것, 그것으로 인해 예능 쪽으로 또래에 비해 다양한 경험을 했고 공부 쪽으로는 선행학습으로 전체가 아닌 나의 수준에 맞추어진 진도로 공부를 할 수 있어 공부를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을 일찍 배울 수 있었다는 것, 그것으로 인해 외부적인 평가에서 선두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 등이다. 오직 그런 혜택만 작용한다면야 얼마나 좋겠는가. 문제는 바로 어릴 때는 뭣 모르고 부모님 손에 이끌려 다니다가 뒤늦게야 개인의 환경에 따라 여러 가지 부작용이 더 오래 더 커다란 방식으로 전체적인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엔 부모님이 ‘시켜서’ 시작하고 지도자가 예능이나 공부를 ‘시켜서’ 한 결과 자기주도적으로 흥미와 필요성을 이끌어 내어 내 자아가 꿈을 어떻게 펼칠지 내가 속한 가족과 사회 속에서는 내 꿈이 어떤 관련성을 가져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등에 대한 생각을 청소년기에 깊게 발전시키지 못했던 부작용이 꽤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많은 것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 대학 시절부터 어렴풋이 누군가에게 이끌려서 하는 사교육의 폐해가 무엇인지 느껴졌고 내가 아이를 낳아 키우게 되면 좀 더 다른 교육 방식으로 키워 보고 싶다는 소망이 자리잡았었다.
첫 아이가 벌써 몇 달 후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7년이라는 세월을 되짚어 보면 아이로 인해 내가 세상과 교육을 바라보는 시각에 작고 큰 변화들이 있었던 시간이다. 내가 낳은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면서 까만 눈동자를 빛내며 세상을 탐색하는 모습을 지켜본 부모라면 이 아이를 위해 내 무엇이든 하리라, 내가 하지 못한 부분까지 수많은 경험을 하게 해 주리라, 그리하여 두려움 없이 세상에 당당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으로 클 수 있게 도와 주리라는 눈물겨운 다짐을 해 본 적이 적어도 한 번씩은 있을 것 같다. 나 또한 그랬고 그런 벅차 오르는 아이에 대한 사랑으로 육아와 교육에 관심을 기울여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인터넷과 주변 아줌마들에게 제일 처음으로 추천 받은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고가의 유아 프로그램 구입이었다. 처음에는 건강하게 태어나 자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생각하던 아이엄마들이 교육적인 욕심을 내게 만드는 첫 번째 관문인 거 같았다. 참된 교육의 이미지로 포장한 업체들에 의해 아이에게 이런 것을 접해 주지 못하는 엄마가 더 무지하고 경제적으로도 무능한 듯 비쳐지는 시선 또한 팽배했다. 물론 적정한 시기에 아이에게 적절한 자극을 주는 데 필요한 합리적인 가격의 유아 프로그램 자체의 개발이나 선택은 긍정적으로 본다. 하지만 첫 아이를 낳고 교육 쪽에 관심을 가졌을 때 한국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처음 접하게 되는 것이 고가(내 기준에서는 충분히 그렇다.)의 유아 사교육이라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도 아이와 단둘이 집에만 있는 것보다 다양한 세상 경험을 하게 도와 주고 싶었고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고민하다 가격 또한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 다양한 분야를 접할 수 있는 문화센터를 선택했고, 나보다 더 큰 목소리와 현란한 동작으로 율동을 가미한 노래를 불러 주고, 알록달록한 교구를 만지게 해 주고, 풍선을 날리고 비눗방울을 날려 아이들이 정신 없이 빠져들도록 만들어주는 별천지를 둘째를 낳기 전까지 꾸준히 3년 가까이 경험했다. 그 와중에서도 뭘 해도 배움에는 꾸준함이 최고의 생명이라는 소신이 있었던 터라 개근상을 탈 정도로 열심히 데리고 다녔고 거기에 보답이라도 하듯 아이는 또래에 비해 말도 빨랐고 인지도도 빨라 이 엄마를 더 욕심나게 했다. 어떤 자극이 일단 주어지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속도나 즐거워하며 몰입하는 집중도가 또래에 비해 아주 높아서 다른 엄마들의 부러움도 샀다. 집에서도 꾸준히 좋아하는 책을 읽어주고 노래를 부르고 나들이나 여행을 하며 자연을 접해 주어 엄마로서 느끼는 미묘한 직감이 아니라면 누가 봐도 똘똘하게 잘 자라고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곁에서 늘 지켜보는 엄마로서 뭔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있었는데 아이는 집에 와서도 끊임없이 내가 어떤 자극을 ‘먼저’ 주길 원했고 스스로 놀이를 찾아 몰입하는 빈도가 낮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원래 부모와 같이 노는 걸 좋아해서 그러려니 하기도 했고 잘 자라고 있는데 괜히 내가 민감하다고 생각해 버리기도 했다.
누군가로부터 ‘주어지는’ 교육의 부작용을 내 자신의 경험으로 깨달아서 내 아이에겐 좀 다른 방향으로 접근하고 싶었는데 이미 내 아이에게 그런 교육을 주고 있다는 것을 가슴으로 깨달은 건 둘째가 자라는 걸 보면서부터이다. 많은 사람들이 둘째는 그냥 놔 둬도 잘 자란다고 하더니 첫째만큼의 교육적인 부분을 내가 나서서 주지 않아도 시기가 되면 자기의 성장 속도에 맞춰 잘도 자라났다. 상대적으로 문화센터는 구경도 하지 않고 자라고 있지만 그런 수업을 하고 안 하고에 따른 차이는 전혀 없었다. 아이는 무언가를 스스로 배워나가고 깨달아 나가는 힘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단순해 보이는 아이의 일상이지만 그 속에서 스스로 생활 패턴을 찾아나가며 자신의 흥미를 찾아 움직였다. 그 일상이 단순하고 심심해 보여 무언가 더 나은 배움을 다양하게 주기 위해 부모가 나서는 것은 단지 부모의 착각일 뿐이었던 것이다. 내가 할 일은 자유롭게 탐색하며 호기심을 가지는 아이에게 네가 스스로 자랄 수 있음을 믿는다는 눈빛을 보내주는 것, 안전에 이상이 없도록 최소한의 울타리를 치고 보호해 주는 것, 공감하며 들어주고 대화하며 먼저 모범을 보이는 것 등이면 충분했던 것이다.
이런 것들을 깨달아 나가며 첫째 또한 배움의 힘을 내부에서 스스로 끌어내는 변화가 일어났고, 그 시점 운명처럼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의 등대지기 학교를 만났고 교육에 대한 나의 편협된 생각이 많이 깨졌다. 주제는 각기 다른 강의들이었지만 결국에 한 방향으로 모든 선생님들이 말씀하고 계신 것은 사교육 자체를 시키느냐 마느냐의 문제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 되어져야 할 의식의 변화가 분명히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교육 ‘없는’ 세상이 아닌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인 것인데, 이 ‘걱정 없는’ 속에 담긴 뜻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아 어려운 길이기도 한 것 같다. 교육이라는 것이 아이보다 많이 알고 있는 누군가가 자극을 먼저 주고 가르치고 지적하여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 그리하여 스스로 흥미로운 것을 찾아 몰입하는 경험이 지지되는 분위기를 만들어 믿고 기다려 주는 것, 일상 속에서 아이가 선택의 경험을 끊임없이 가지게 하여 규칙을 지키면서도 자율성을 누리도록 해 주는 것, 무수하게 많은 상황 속에서 아이가 쉽게 좌절하지 않고 ‘방법’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주는 것, 삶과 배움의 성찰을 통해 부모와 아이가 유쾌하게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것, 그런 각 가정의 힘이 모여 전체적인 우리 교육의 모순을 풀어나갈 수 있는 열쇠가 되는 것, 이 모든 것이 등대지기 학교를 통해 내가 배우고 느낀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으로서의 자세다.
마술지팡이로 내리친 것처럼 이런 사람으로 하루 아침에 완전 변모하여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드디어 제대로 된 길을 찾았다는 안도감 뒤로 여전히 헤매고 고민하고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겪고 한숨 쉬고 후회하다 또 다시 노력하고 꿈꾸기를 반복하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자라나고 있는 두 아이의 엄마이다. 또한 사교육 관련 업종에 종사한 적이 있기에 공교육 외에 개인의 긍정적인 필요에 의해 접할 수 있는 깊이 있는 대안 사교육이 건전하게 존재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어떤 방식으로 그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고민에 빠져 있는 잠재 여성 인력이기도 하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을 꿈꾼다는 것이, 혼란스럽고 고민스럽더라도 교육의 참된 가치에 깨어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삶의 과정 자체라는 것을 깨닫는 기회를 얻게 되어 다행이다. 길을 찾고자 길을 헤매는 과정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함을 알게 되어 감사하다. 조선 시대 당시로서 상상하기 불가능했던 당색과 신분, 성별을 초월한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한 꿈을 꾸었던 젊은이들과 국민을 향한 참된 정치를 꿈꾸는 여성 대통령의 드라마 속 꿈 같은 이야기가 아주 일부라도 조금씩 이루어지길 바래 본다. 오늘따라 등대지기 학교 강의 중 어느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라는 체 게바라의 명언이 가슴 속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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