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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실천/[사연읽기]수기공모전 당선작

[장려⑧] “입시 사교육에 대한 생각” (정경화)

본 글은 2010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주관한 
"아깝다 학원비" 단행본 출판 기념 국민 수기 공모전에 장려상으로 당선된 글입니다. 



“입시 사교육에 대한 생각”

 

정경화 (37세, 교사, 서울 마포구)


얼마 전에 한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났다. ‘학원은 딱딱 짚어주고, 빵빵 웃겨주는데...’ 이것은 모 외고 2학년 학생을 인터뷰하고 쓴 기사였는데, 그 학생은 중학교 때 학교 밖에서 외고 입시를 준비했던 것처럼, 지금은 대입을 위해 분위기 안 좋은 학교 공부는 포기하고 종합학원에 열심히 다닌다고 했다. 신체리듬을 학교가 아닌 학원 수업에 맞춰 공부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면서.

사교육을 말할 때 보통 그 범위는 입시 사교육으로 한정된다. 특기와 적성을 개발하고 교양을 쌓기 위한 사교육은 입시와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그다지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그런데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다니는 입시 사교육에 대해서는 부모, 교사, 학생들이 복잡한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학교 교육이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학원 강사는 프로선수 같고 학교 교사는 아마추어 선수 같다"

"학교에서는 잠을 자도 아깝지 않아요. 제 수준에 맞는 수업도 아니고, 일방적인 수업 일색이거든요. 거기다 지루하기까지 해요."

"졸업장만 아니면 당장 학교를 그만두고 집과 학원을 오가며 수능 시험을 준비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

이렇게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이 있을 것이고, 또한 일부 미래학자들은 현재의 사회 체제 중 가장 먼저 없어질 것이 학교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20~30년 안에 현재의 학교 시스템은 실제로 무너지거나 어떤 혁명적인 변화가 올지도 모르겠다. 걱정스러운 일이지만, 한편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EBS 교재가 수능에 70% 연계되면서 고3 수업은 3월부터 11월까지 EBS 로고가 찍힌 갖가지 문제집 풀이로 채워진다. 학원에서도 학교에서도 온통 EBS 문제집만 풀어대니 아이들이 수업을 듣지 않는다. 교사에 대한 배려(?)로 열 명 남짓한 아이들은 같이 진도를 나가며 수업을 듣지만, 갈수록 ‘빈 들에서 외치는 공허한 메아리’로 교사의 자존감은 한숨이 되어 날아갈 뿐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대학 입시의 하수인이나 되려고 교사가 된 건 아닌데.

그런데 만약 학교가 사라져도 입시 사교육은 롱런할까? 입시 사교육이 존재하는 이유는 치열한 대학 입시 때문인데 학교가 사라진 후에도 우리는 계속 대학 입시에 목을 매고 있을까? 아이들은 여전히 ‘딱딱 짚어주고 빵빵 웃겨주는’ 학원에 다니며 효율적으로 공부해서 국영수 성적이 오르고 좋은 대학에 가고, 그리고 행복할까?

대학이 지금처럼 존속할까? 대한민국 인구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는데? 또 평균수명이 120살쯤 되면서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진다고 하는데 그때도 여전히 열아홉 살에 치른 대학 입시가 인생의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을 결정한다고 믿을까? 나와 형제들 집안을 통틀어 한두 명 있는 아이들이 꼭 ‘천하대’에 들어가야 모두가 행복해진다는 생각이 여전히 대물림될까? 그렇지 않으리.

따지고 보면 입시 사교육은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다. 루저들에게는 기회조차 주지 않는 사회에서 내 새끼가 사람 노릇하며 살게 해주고 싶은 부모들과 어릴 때부터 사교육으로 샤워를 하고 다니는 학생들을 일제시대처럼 한 반에 40명씩 몰아넣고 교사 한 명에게 아이들 인성지도, 다양한 체험활동, 환경미화, 진로지도, 학습지도, 대인관계 훈련, 식사 훈련, 진학지도에 각종 서류 뒤치다꺼리까지 다 떠넘겨 놓고 교육의 질 따위를 논하는 우리의 후진 교육 마인드가 입시 사교육을 키운 것이다. 말로는 ‘먼저 인간이 되라’하면서 좋은 대학 못 가면 ‘니가 인간이냐?’하는 사회에서 터득한 생존전략이 ‘공부면 다 된다’는 생각으로 왜곡되면서 입시 사교육이 번성한 것이다. 아이들이 설마 진리탐구에 대한 불타는 열망 때문에 입시 학원에 다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입시 사교육, 필요해서 생겨났으니 필요가 다하면 사라지지 않을까. 그 필요를 빨리 끝내는 게 우리의 할 일인 거고. 입시 사교육 없이도 교육에 성공한 나라들이 있는 걸 보면, 우리도 사교육 없이 선진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몇 년씩이나 그렇게 노력해서 들어간 대학에서 신입생 30~40%가 학과가 적성에 안 맞아 고민하고 휴학하고 다시 시험보고, 아니면 평생 기쁘지 않은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짓 아닌가?

그렇다면 어른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입시 사교육을 당장 어떻게 줄일까를 고민하기보다는, 모두가 다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밑그림을 그리는 일이 아닐까? 사람들이 함께 꿈꾸고 만들어가고 싶은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 각자의 성공을 위해 달려가는 삶을 멈추게 하지 않을까?

독일에 간호사로 건너가 외교관이 된 김영희씨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대학 입학률이 지금의 반으로 떨어져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선진국이라도 이렇게 많은 대졸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사람들이 그렇게 기를 쓰고 대학에 가는 이유는 직업 때문인데, 대학에 안 가도 각자 원하는 일을 하면서 적당한 수입을 얻어 먹고 살 수 있는 사회를 같이 그려가면 안 될까? 대한민국에는 희망이 없다고, 이런 입시 지옥에서 내 새끼 영혼을 병들게 하고 싶지 않다고 능력만 되면 유학 이민을 떠나는데, 이젠 할 만큼 했으니 제발 우리 다 같이 좀 그만두면 안 될까?

생각해보면 가장 중요한 건 사교육이냐 공교육이냐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이 나라에서 내 새끼를 키우고 싶냐 아니냐의 문제다. 입시 사교육이 없어진다고 이민 가려던 사람들 마음이 돌아오진 않을 것이고, 사교육비를 낮춘다고 출산율이 오르지도 않을 것이다. 입시 사교육이 사라지면 또 어떤 괴물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불안한 사회 자체가 숨막히는 것이니.

결론은, 평범한 개인이 죽기살기로 경쟁하지 않아도 생존이 가능하고, 존엄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의 다음 세대를 구하고, 교육을 구하고, 대한민국을 구하고, 오늘의 우리를 구하는 길일 테니까. 그러니, 이제 누군가 깃발을 들어줘야 한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처럼 누군가 먼저 그 길을 시작해줘야 한다. 오래 그 길을 지켜줘야 한다. 변화는 30년 안에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