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는 의사선생님은 요즘 진료를 하다보면 복장이 터진다고 합니다
주로 근골격계 통증에 대한 진료를 하시는데 고등학교 이하의 학생들이 오면 진료하기가 싫어진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진료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병력청취가 안된다는 이유입니다.
진료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증상이 언제부터 시작했고 어디가 아프고 어떤 양상이며 어떤 빈도로 아픈지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논리적 설명에 가장 강해야 할 학생들이 아주 엉망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제 경험상으로도 증상을 물어보면 초등학생 중학생은 말할 것도 없고 고등학생까지도 같이 따라온 엄마를 쳐다보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그러면 엄마는 아이를 대신해서 이런 저런 설명을 해주지만 아무리 엄마라도 제 3자인 엄마의 설명이 정확할 수는 없겠죠. ‘엄마 말이 맞니?’ 라고 물으면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가 요즘 대다수 학생들의 진료 자세입니다. 그나마 자기 스스로가 증상에 대해 설명하는 경우에도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언어의 사용은 정말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언제부터 아팠니?’
‘쫌 되었어요’
‘쫌 되었다는 게 얼마정도 된 걸 말하는 거니?’
‘쫌 오래 되었어요’
‘오래 되었다면 몇 달 되었다는 거니?’
‘그 쯤 된 거 같애요’
‘1개월? 2개월?...’
뭐 이런 대화가 주로 오가면서 가장 기본적인 ‘증상이 있어온 기간’이라는 정보 하나 알아내게 됩니다. 그 증상이 무슨 증상인지를 알아내는 것도 비슷한 수고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특징이 특히 지금의 학생들에게 아주 두드러진다는 점입니다. 아까 그 의사 선생님도 그 이유로 학생들 진료가 싫어진다는 말씀을 하던 것이었습니다. 특히나 오랜 시간 진료 현장에 있던 분으로 요즘의 학생들이 오히려 예전의 학생들보다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언어 사용에서 점점 뒤떨어지는 것이 더욱 분명하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똑똑하다는 것은 뭘까요? 그것은 결국 언어에서 드러나지 않습니까? 결국 바르고 명확한 언어를 구사하게 하는 것이 교육의 큰 목표 아닌가요?
그런데 지금 우리의 아이들은 밤늦은 줄도 모르게 공부를 하며 돈을 쏟아 붓는데 왜 점점 정확한 언어를 구사하는 아이들이 줄어만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생각과 논리가 자랄 여유도 없이 정답 맞추는 기술자로 키우는 우리의 교육이 그 원인 아닐까요? 익숙한 모국어로 가지런히 체계를 잡아가야할 우리 아이들의 언어중추는 어른들의 욕심으로 인해 제대로 발달되기도 전에 영어에 풍덩 빠져서 뒤죽박죽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전 정말 진료실에서 묻는 말에 엄마만 쳐다보는 아이들, 자기가 아파서 왔는데 어디가 아픈지 설명도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리도 답답한데 ‘말하는게 뭐 그리 중요하냐 성적만 좋으면 되지’라든가 ‘국제화 시대에 발 맞추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주무르고 있는 것 같아서 그 답답함이 더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얼마전 제가 아는 그 의사 선생님이 정말 놀라운 학생을 한 명 진료하게되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고1학생이었는데 말하는대로 그냥 받아적으면 바로 의무기록이 될 정도로 육하원칙에 준해서 자기 증상을 간결하고 정확하게 설명하는 아주 보기드문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너무 반가운 나머지 진료는 뒤로하고 먼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를 물어봤다고 합니다. 자기 손주는 전학을 시켜서라도 그 학교에 보내야겠다 마음을 먹으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대답인 즉 그 학생은 중학교까지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다고 하더랍니다. 이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건지.. )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해드림 회원님의 글입니다.
원문: http://cafe.daum.net/no-worry/3FW6/210
'사교육걱정없는세상 > 회원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학교정보공시 연수를 받고나서... (0) | 2008.10.27 |
---|---|
특성화중학교 의견청취를 위한 공청회- 서울시교육청 (0) | 2008.10.27 |
사(私)교육에 목메는 불쌍한 사람들... (0) | 2008.10.16 |
[사는 이야기] 아이들의 상상력-짝짝이 슬러퍼 (0) | 2008.10.16 |
[1차 토론회] 토론후기와 영어사교육 문제에 대한 저의 생각 (0) | 2008.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