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기 등대지기학교가 어느 덧 총 여덟 강의 중 네 번째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시간이 참 빠르네요. 벌써 중반을 지나고, 사무실에서는 이제 본격적인 졸업여행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 강의는 얼마 전 100호를 발행한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의 발행인이시자, “야! 한국사회”라는 칼럼을 한겨레에 연재하고 계시며, “B급 좌파”, “나는 왜 불온한가”, “예수전” 등의 저서를 집필하신 김규항 선생님을 모시고 진행되었습니다. 김규항 선생님의 트레이드마크인 모자 없이 멋진 헤어스타일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강의실을 찾아주신 선생님의 강의 주제이기도 한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습관”은 김규항 선생님의 고래가그랬어 교육연구소와 경향신문이 공동기획으로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주제입니다. 강의는 7가지 약속의 순서에 따라 진행되었습니다.
1. 교육은 상품성이 아니라 인간성을 키우는 일입니다.
교육은 아이가 배움을 통해 건강하고 조화로운 사람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입니다. 아이가 첫걸음을 땠을 때 첫 마디를 했을 때의 기쁨과 환희를 기억합니다. 교육은 본디 기쁨과 환희의 과정입니다. 그런데 글자를 배우고 수학을 공부하면 기쁨과 환희가 배가되기는커녕 고통스러워지는 건 한국 교육이 교육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경쟁에서 밀리면 끝장이란 부모의 불안감이 아이들의 교육에 증폭되어 나타나면서 교육은 또래의 모든 아이와 벌이는 무한 경쟁의 레이스가 됩니다. 남 보다 앞서기 위해, 더 비싼 상품이 되기 위해 벌이는 레이스에 교육이 있을 곳은 없습니다. 교육이란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는가에 관한 일이지 ‘얼마짜리’로 자라는가에 관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공부는 '마음껏 놀기'입니다.
옛 어른들은 아이 키우고 교육하는 일은 ‘자식 농사’라 했습니다. 농부들이 절기와 때에 맞추어 꼭 해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걸 빠트리면 여지없이 농사를 망칩니다. 아이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 시절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마음껏 놀기'입니다. 군사독재시절에도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놀며 자랐습니다. 하지만 민주화가 된 후 아이들의 자유는 오히려 급격히 줄었습니다. 군사독재도 빼앗지 못한 아이들의 자유는 누가 빼앗은 걸까요? 제 때 마음껏 놀지 못한 아이는 몸도 마음도 병든 사람으로 자랍니다. 논농사 밭농사는 망친 게 눈에라도 보이지만 아이는 겉으론 멀쩡해 보이니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현재로선 놀 시간뿐 아니라 놀이도 놀 터도 마땅치 않습니다. 아이들이 살아나려면 놀이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놀아야 한다는 부모들의 합의야말로 놀이를 회복하는 첫걸음입니다.
3. 대학은 선택이어야 합니다.
한국 대학은 이미 지성의 전당이라는 본디 뜻을 잃고 취업학원으로 전락한 지 오래입니다. 최근엔 취업학원으로서의 의미도 잃었습니다. 대학 진학률은 지금 부모세대에서 20% 남짓이었지만 이젠 90%가 넘습니다. 대학 졸업장으로 경제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비율은 고작 5% 남짓입니다. 그나마 부자/엘리트 부모의 아이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 대학을 위해 아이가 겪는 고통과 부모 인생의 손실과 살림살이의 곤란을 감수하는 게 과연 ‘현실적’일까요. 대학에 갈 필요나 이유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대학에 가지 않고 살아가는 길을 모색하는 건 대학입시를 고민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입니다.
4.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게 성공입니다.
현재 한국의 직업은 1만개 가량입니다. 그런데 부모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생각하는 직업은 채 20개가 안 됩니다. 9,980개의 직업을 갖고 살아갈 절대다수의 아이들이 아무 잘못도 없이 낙오자나 실패자처럼 살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좋은 직업이란 무엇일까요. 돈을 얼마나 버는가, 남들이 어떻게 보는가보다 중요한 건 나에게 맞는 직업인가입니다. 제아무리 많은 돈을 벌고 남들이 선망해도 나에게 맞지 않으면 하루하루가 고통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가 제 재능과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세상엔 1만개의 직업이 있으며 내 아이가 그 수를 한 개 더 늘일 수도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5. 아이와 노동자가 행복해야 좋은 세상입니다.
아이들은 대부분 노동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공장 노동자만 노동자라거나 나는 시민이되 노동자는 아니라는 식의 편견이 많습니다. 노동이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보수/진보를 불문한 엘리트의 아이들이 경쟁을 선점하고 서민 노동자의 아이들은 경쟁의 들러리를 섭니다. 교육은 경쟁을 가장한 양극화와 신분세습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노동자가 행복하지 않은 사회에서 노동자로 살아갈 아이들이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노동자가 행복해야 좋은 세상 이라는 믿음, 다른 노동자의 투쟁과 고통에 대한 연대는 곧 내 아이의 행복을 위한 노력입니다.
6. 지금 행복한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행복합니다.
아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 부모들은 아이의 인생을 준비기(19세 이하)와 본격기(20세 이상)로 나누곤 합니다. 본격기 인생을 위해 고생을 좀 해도 되고 할 걸 못해도 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아이 시절이든 청년 시절이든 장년 시절이든 인생의 모든 순간은 다 소중한 인생입니다. 아이는 부모와 동무와 주변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순간순간 행복의 작은 편린들을 느끼고 또 배웁니다. 나중에 행복하기 위해 지금 행복하지 않은 아이는 나중에도 행복할 줄 모릅니다. 제아무리 빼어난 스펙과 경제적 안락을 가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는 지금 행복해야 합니다.
7. 아이 인생의 주인은 아이입니다.
아이 교육을 위해 모든 걸 헌신하는 한국 부모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러나 아이를 나와 독립된 주체로 인정하는 태도가 그 각별한 헌신에 못 미치면서 많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아이를 위하여’라는 말은 아름다운 헌신의 말이지만 내 기준과 욕망으로 아이를 억압하고 구속하는 폭력의 말일 수도 있습니다. ‘내 딸’ ‘내 아들’이라 부르지만 아이는 내 소유물이 아니라 나와 귀한 인연을 맺은 독립된 존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인연에 감사하며 최선의 양육을 합니다. 그러나 결국 아이가 어떤 인생을 살아가는가는 전적으로 아이의 권리입니다.
약속을 넘어서...
진짜 교육, 사람을 키워내는 일을 위한 이 최소한의 약속 7가지를 항상 숙지하고,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하겠지만, 우리에겐 아직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는 불안이 남아있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불안감과 심란함은 보수와 진보 등의 이념을 떠나 모든 부모들이 느끼는 것이고, 대안적이라 하는 모든 교육에 대한 운동과 철학을 한 순간에 무의미한 것으로 만드는 매우 강력한 힘입니다.
김규항 선생님은 이러한 현상이 요즘 우리가 말하는 신자유주의와 극단적인 시장화의 흐름 등 개개인이 대항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강력하고 복잡한 사회구조의 압박에서 기인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체제가 자유시장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상품만이 상품이 아니라 상품이 되면 안 되는 것들 곧, 사랑, 우정, 인격, 심지어 사람까지도 상품이 되고 돈으로 그 가치가 매겨지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거대한 사회 풍조가 돈이 없으면 행복하지도, 존경 받지도 못하는 분위기로 만연한데, 조금 더 경제적 가치에서 남보다 우위에 서기 위한 경쟁을 무시하기엔 너무도 벅찬 일인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 홈페이지 - http://www.7promise.com/)
우리 아이들의 교육 현실은 이러한 문제에 고착화되어있는 상황에서는 어떠한 노력도 임시방편일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된 우리 시민들이 먼저, 더욱 연대하고 성찰하며 손잡고 나아가야할 일입니다. 그래서 계층의 양극화를 심화하고, 세습을 옹호하는 교육이 아닌, 우리사회의 불공정함을 개선하고 올바른 시민, 행복한 노동자로 자라가도록 하는 진짜 교육이 될 수 있도록 근본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의 노력도 함께 해야겠습니다.
역시나 그 명성에 걸맞게 시종일관 거침없는 입담과 날이 선 사회·정치적 비판으로 일부 수강생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으셨을까 싶기도 했지만, 선생님의 말씀처럼 우리 사회와 교육의 비인간화를 막고, 아이를 바르고 건강한 시민으로 길러내기 위한 교육에 대해서는 이념과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 함께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교양지 발행 운동과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 캠페인 등을 꾸준히 실천해오고 계시는 김규항 선생님의 아이들을 사랑하는 진심이 물씬 묻어나는 강의였습니다.
캠페인을 담당하고 있는 수줍은 신입간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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