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2011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좋은교사운동, 교실밖교사커뮤니티, 전국학교도서관담당교사모임이 주관한 [아깝다 학원비! 전국독후감대회]에서 학부모 부문 우수상으로 당선된 글입니다.
“‘베포’처럼 시간을 즐기자”
강미순님
잘하고 있는 것일까? 하루에도 서너 번씩 스스로 되물어 보면서 불안했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학원을 다니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시간의 여유가 많아 노래하고 글 쓰며 하루를 사는 우리 아들 ‘나무’를 보며 슬그머니 두려워졌다. 주변의 다른 아이들은 하루 네 다섯 시간을 학원에서 견디는데 우리 아들은 빈둥거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시간이 아까웠다.
아들 ‘나무’는 초등 5학년 때부터 1주일에 한번 사고력 수학 학원을 다니는 것 외에는 집에서 학습했다. 초등 입학 전부터 조기교육이나 사교육 시스템에 내달렸던 시간들은 지나고 나니까 너무도 아까운 시간들이었다. 더 많이 모험해봐야 할 시간이었고 아이가 한 가지에 푹 빠지는 시간도 필요했었는데 이것저것 발을 담그게 해서 ‘다재다능’에 우쭐했던 어리석은 엄마였음을 반성했다. 이후 ‘나무’는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연주도 하고 책도 마음껏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학교 수업에 집중하는 공부로 괜찮은 성적을 유지하는 편이었다. 자부심과 여유, 긍정이 우리 ‘나무’의 마음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보면서 그 동안 학원을 다니지 않았지만 공부보다 더 많은 것을 얻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학원을 보내지 않아도 잘해내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었다. 마침 교육열이 치열하다고 소문난 지역으로 지난 1월에 이사를 했고 학원가로 유명한 동네에 살게 되었다. 학원 프리미엄을 누리는 게 당연한 그런 분위기의 동네였다. 이사 후 얼마 안 돼 아이와 함께 저녁 운동을 할 생각으로 체육센터에 등록하면서 또래 친구들이 등록되어 있는지 궁금해 했더니 상담원은 그 시간에 우리 아이 또래의 아이들은 학원가서 또래 등록자는 없다고 귀띔을 했다. 마음이 서늘해졌다. 또한 선행을 하고 입학해야 아이가 힘들지 않다는 주변의 권유는 큰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아이를 설득해서 친구도 사귈 겸 전 과목을 강의하는 학원을 보내었다. 일주일을 열심히 다니던 아이는 6학년부터 이미 달린 아이들의 수학 진도를 따라잡는 것을 힘들어했다. 어느 날 심각하게 “엄마, 나 ‘정수’가 안돼.”라고 말했다. 이미 아이들은 ‘문자와 식’이라는 단원을 풀고 있었고 ‘정수’‘유리수’ 계산 개념이 없는 ‘나무’는 수업시간에 자괴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집에서의 보충이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 수학 개념 별거 아니야’라는 책을 사주고 기본개념을 익히는 한편으로는 문제를 풀기로 했다. 하지만 ‘나무’가 ‘집합’‘정수’의 개념을 잡고 고민할 동안 학원 아이들은 이미 익숙하게 ‘문자와 식’ 단원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아이들은 이미 중2 수학을 하는 애들도 있었다.
뭔가 우리 아이에게는 맞지 않는 시스템이 학원 내에 있음을 느꼈다. 초등학교 성적으로 아이에게 기대했던 학원 선생님은 아이가 수학을 힘들어하자 의아해 했다. 그러는 사이 중학교 입학배치고사를 대비한다고 학원에서는 보름 동안 전과목 학습을 시작했다. 학원은 미리 진도를 달려놓고 시험기간에는 내내 전과목 내신 준비를 시킨다는 것을 알았다. 달달 외울 정도로 학원 수업을 받아 좋은 성적을 유지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아이도 그렇지만 나도 회의감이 왔다. 다 준비해 주는, 먹여 주는 그런 공부가 진정한 공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정리 노트도 만들어보고 개념을 찾아도 보고... 당장에는 좋은 성적이 아니더라도 자생적으로 터득하는 공부법을 아이가 가지길 바랐다. 아들 ‘나무’ 역시 여태껏 자기가 알아서 시험 준비를 했었기 때문에 학원의 시험 대비 수업을 낯설어했다. 물론 반복 학습으로 기존 지식이 더 단단해지는 면은 있었지만 자기가 부족한 부분에 대한 스스로의 반복 학습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래서 한 달 만에 우리는 학원을 그만두고 말았다.
다시 집에서 자기만의 학습을 시작했다. 학습이랄 것도 없었다. 책 읽고 놀고 수학과 영어 문제집을 조금씩 풀어갔다. 수학은 인강의 도움을 받았는데 생각보다는 인강에 집중하지 못해서 결국 내가 살짝살짝 부족한 개념을 건드려주어야 했다. 그래도 말로 서로 주고 받다보면 개념과 원리가 어느 순간 ‘유레카’를 외치는 순간이 오곤 했다. 수학의 심화 문제는 여전히 아이에게도 내게도 어려운 것들이 있었지만 함께 탐구하는 마음으로 헤쳐 나갔다. 엄마들은 나이가 들어 경험지능이 높아져서인지 확실히 문장이해력은 높다. 오래전에 한 수학이지만 정말 싫어했던 수학이지만 그래도 미리 준비해 이해하면 아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아이가 요청하면 도움을 주면서도 내심 몹시 불안했다. 아이가 학원을 안가도 학교 수업에 따라간다고 하지만 심화 수학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인지, 혹은 나중에 결국 대학입학의 경쟁선에 만날 많은 아이들에 비해 우리 아이가 도태되는 것은 아닌지...
<아깝다 학원비!> 책은 바로 그 고민의 시간에 구입하게 되었다. ‘사교육 진실의 10가지, 그 명쾌한 해답’ 책의 부제가 결코 과장된 것은 아니다. “게임 중독 못지 않은 학원 중독”이라는 표현이 책 안에 있다. 이 책에서 밝힌 바와 같이 ‘학원 키즈’들은 불안해서 학원을 가고(내 경우처럼 학부모가 불안한 경우가 더 많은 듯하지만) 학교 수업은 지루해진다. 많이 알기 때문에 시시해 하는 것과 또 다른 차원에서 여기서 심각하게 지적하는 문제가 있다. 무한반복의 학원 수업으로 학생들이 배움에 대한 호기심을 상실하고 마지못해 하는 공부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향후 학생들의 미래에 엄청난 독이 될 것이다. 또한 교사의 말에 경청하지 않는 태도 역시 그렇다. 어떤 수업이든 사람의 말에 경청하지 않는 태도가 길러지는 것은 앞으로 수많은 관계와 사람들 속에서 경청해야 할 아이들의 가치관에 이미 줄 하나를 끓어 놓는 셈이다. 더구나 스스로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 학습 태도가 길러지면 더 큰 전공 공부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물론 여기<아깝다 학원비!>가 말하는 것처럼 공부를 보충, 보완하기 위한 뚜렷한 목적으로 사교육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것마저도 진지한 고민 끝의 적정한 선택이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때로는 많은 설명보다 짧은 수치가 상황이나 진실을 분명하게 한다. 이 책은 수학 때문에 지출되는 사교육비가 가장 많음에도 불구하고 수학 수능 성적 평균이 제일 저조하다는 것을 수치로 보여준다. 42.27(수리 가) 38.2(수리 나) . 몇 점 만점일까 궁금해지는 수학 수능 평균 점수다. 물론 100점 만점이다. 대학을 수학할 능력을 점검하고 평가해보는 시험에서의 수학 점수가 충격적이기만 하다. 학교 시수를 가장 많이 확보하고 학원 사교육에 가장 많이 의존하는 과목임에도 수학 성적은 이렇게 충격적으로 저조하다. 나도 이 부분을 읽으면서 충격을 받았다. 우리 아이도 수학을 공부할 때 개념과 원리를 슬쩍 넘기고 문제풀기에 열중한다. 그리고 오답이 나와도 그 개념을 곰곰이 떠져 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왜 그런 모습일까? 개념 부분을 스스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원래 그런 아이들이었을까? 스스로 탐구하기 전에 누군가가 설명과 풀이를 해주었기 때문은 아닐까. 학원에 익숙한 아이들은 충분히 사고할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 학원 수업에 익숙해서 마음이 몹시 급한 것 같다. 이렇게 학습하면 “누군가 해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한다”는 이 책의 경고를 명심해야 할 것이다. 수학이 문제해결학습이며 선행학습으로는 이러한 사고력을 발달시킬 수 없으며 어렵더라도 스스로 해결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이 책의 조언에 귀기울여야 하겠다.
우리 아이도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아직 공부를 해야 하는 동기와 목표도 부족하다. 스스로는 “많은 것을 배우며 천천히 가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지만 ‘천천히’는 있지만 여전히 배우는 자세는 인색하다. 특히 문제를 확장하며 연관시키는 폭넓은 학습이 많이 부족하다. 예전의 우리처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과사전을 찾아 정리하기보다는 인터넷 지식 검색으로 많은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 버리기 때문에 아이들은 점점 단순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아이들이 알아야 할 것은 그 지식을 남기는 사람이 자신이 되어야 하며 누군가의 지식을 얻기만 해서는 결코 당면한 보다 큰 문제를 언젠가는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만나는 수많은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는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으려면 지금 바로는 결과가 보이지 않고 헤매어서 답답할지라도 기다려주는 부모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아이의 공부량과 태도 때문에 학원에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가끔 했다. 그리고 불안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까 지금 “잘할 수 있어요”라고 큰소리치는 우리 아이의 자존감이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곧 중학교 첫시험으로 중간고사를 치른다. 스트레스 받지 않고 뒹굴며 혹은 집중하며 공부한 우리 아이의 결과는 어떨지 기대된다. 만약 성적이 원하는 것만큼 나오지 않아도 자기반성을 충분히 하리라. 그리고 더 단단한 사람이 될 것이다. 겸손과 도약의 시간이 될 것이다.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아깝다 학원비!>에 감사한다.
‘베포’는 미하일 엔데가 지은 소설 <모모>에 나오는 청소부다. 사람들이 자존감을 잃으며 회색 신사에게 자신들의 시간을 저당잡힌다. “시간을 아껴라! 시간은 금이다!”에 tjfemrekdf한다. 하지만 청소부 ‘베포’는 말한다. “때론 우리 앞에 아주 긴 도로가 있어. 너무 길어. 도저히 해 낼 수가 없을 것 같아... 그러면 서두르게 되지. 점점 더 서두르는 거야. 허리를 펴고 앞을 보면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것 같지. 그러면 더 긴장되고 불안한 거야....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해서는 안 돼. 알겠니? 다음에 딛게 될 걸음, 다음에 쉬게 될 호흡, 다음에 하게 될 비질만을 생각해아 하는 거야.... 그러면 일을 하는 게 즐겁지....그러면 일을 잘해 낼 수 있어....한 걸음 한 걸음 나가다 보면 어느새 그 긴 길을 다 쓸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우리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청소부 ‘베포’처럼 시간을, 공부를 즐기는 게 아닐까. 우리 부모들은 바쁘게 살아왔지만 우리는 늘 사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 먼저 ‘베포’ 부모가 되어 우리 ‘행복한’ 아이들을 격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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