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정말 헛짓했다!”
정성희 (41세, 교사, 경기 안양)
9살, 6살 두 딸아이를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사적인 자리에서 제가 늘 하는 소리가 있는 데, 대한민국에서 아이 둘 키우면서 직장 다니는 여자가 세상에서 가장 힘들다고 소리높여 외칩니다.(메아리로 끝날 때가 많습니다만.)
둘째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2년 반 정도 하면서 같은 아파트의 큰아이 유치원 동기생 엄마들과 친하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직장만 다니다가 하루 종일 집안에서 뺑뺑이를 돌다보니 이웃아줌마(?)들의 지도조언이 정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던데요. 밥도 같이 먹고 여행도 같이 가고 일상생활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면서 큰 아이의 각종 사교육을 시키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 무렵 남편이 다른 지역으로 6개월 파견근무를 나가 있어서 더욱 밀착된 부분도 있었지요. 지역복지관에서 동화 구연, 이웃아파트에서 종이접기, 한글교육학습지, 피아노, 수영, 발레 등을 같이 지내는 아주머니들의 아이들과 어울려 조금씩 시키면서 학교에 보내는 준비를 한다고 믿었습니다. 한 가지씩 시키면서 아이의 의사를 물어봤지요. 아이도 친구들과 어울려 하는 맛에, 또는 부러워하는 마음에 한다고 말하는 걸 아이의 의사를 전적으로 존중하는 양 모양을 갖추었죠.
문제는 생일이 2월인 데, 막상 학교에 보내려고 하니 너무 애가 어려보이고 엄마가 마음이 안 놓여서 결국 유예를 시켰습니다. 유치원까지는 학교를 보낼 생각으로 한 살 빠르게 보냈는 데, 유예를 시키고 나니까 이미 다닌 유치원 7세과정을 다시 보낼 수도 없고,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은 학령기여서 받아주지 않고 혼자서 우왕좌왕하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대통령직 인수위원인 어떤 분의 “오륀지” 광풍에 힘입어 영어를 못하면 더 이상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분위기가 퍼졌습니다. 영어라는 것이 단시간에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부모 세대가 영어에 치인 설움을 아이에게 물려줄 수 없는 불안감도 있고 어차피 다닌 과정을 다시 다니느니 이 기회에 영어유치원을 보내볼까 하는 마음에, 그나마 숙제 적고 재미있게 가르친다는 외국어전문학원 유치부를 몇 개 골라 사전 조사도 하고 해서 집 가까운 곳으로 보냈습니다. 아이에게 내향적인 부분도 많고 남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많이 부담스러워하는 것을 알면서도 필요에 의해 나아지겠지하는 막연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1년이 지난 뒤 들인 돈과 시간이 아까워서 초등1, 2학년때 같은 학원 영어수업을 보내다가 올 여름에 접었습니다. 집에서 아이가 숙제을 하는 것을 보면 아무 내용이해도 못하고 의미파악도 안 되는 것 같은 데, 학원가서 상담을 해 보면 가끔 하는 테스트 결과와 작문 등의 포트폴리오를 보이며 잘 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곤 하였습니다. 외향적으로 어떤 스트레스 징후가 보인다거나 학원 그만 다니겠다는 말을 한 건 아니지만, 아이 스스로 나는 영어를 제일 못한다는 말을 하곤 하였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아니다 싶은 부분이 많았는 데, 이병민 선생님 강의를 듣다 보니까 정말 헛짓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애를 고문한 거 같아 정말 미안하기까지 하네요. 영어를 못하면(이게 무슨 의미인지 정확하지 않아요. 외국인 만나서 대화를 못한다는 소린지 문서를 읽고 정보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소리지 둘 다인지...)세상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 같이 오렌지와 “오륀지” 광풍에 휩쓸린 저의 가치관부재도 부끄럽고요.
아이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실천하는 것만이 해결할 수 있는 길 인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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