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지 하나를 놓고 고민하는 부모
우리나라 부모들처럼 고민하고 걱정하고 불안한 부모들이 또 있을까요? 이번 상담을 통해 새삼 대한민국 부모들의 갈등을 실감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엄청난 사교육비 부담은 물론 자녀교육과 관련된 고민과 갈등을 학부모들에게 떠넘기는 나라는 없습니다. 학습지 하나를 놓고도 아이들과 갈등하고 부모로서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 고민해야만 합니다. 아이들의 일상과 공부에 시시콜콜 간섭하는 것을 좋아하는 부모들이 누가 있겠습니까. 분명 '이건 아닌데' 싶다가도 습관적으로 잔소리를 하기 마련이지요.
이번 상담의 핵심 요지를 아래와 같이 정리했습니다.
‘공부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학습지를 꾸준히 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생각과 지겨운 학습지보다는 하고 싶은 일에만 열심인 아이의 마음!’
과연 가장 바람직한 해법은 무엇일까요?
■ 질문 : 부모의 생각과 아이의 마음, 무엇이 중요할까요?
■ 답변 : 부모의 생각도 아이의 마음도 아닙니다. 둘을 합쳐 더 좋은 결론에 도달해야 합니다.
■ 해설1 : 부모의 생각이 강하면 그만큼 아이의 자존감은 떨어집니다.
부모가 자신의 생각을 잘 설득하여 아이가 충분히 납득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당장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아이는 자존감 발달에 결정적인 장애를 겪을 수 있습니다. 부모의 생각을 이성적으로는 충분히 이해하고 수용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마음까지 모두 부모의 생각에 맞출 수는 없습니다. 자신만의 욕구가 있고 제대로 충족되지 않으면 불만이 생기기 마련인데 논리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는 부모에게 계속 설득을 당하게 되면 당연히 욕구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고분고분 말 듣고 순종적인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부모에게 반기를 듭니다. 그것도 매우 충격적인 형태로 말입니다. 짧게 요약하자면 자신의 마음에 차곡차곡 쌓인 불만이 반발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고, 동시에 논리적인 부모에게 맞서 합리적인 방법을 찾지 못해 결국 순간적인 충동을 그대로 표출하는 상황에 도달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변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마음이 부모에게 설득당해 결국 무시되어왔던 역사의 지극히 자연스런 귀결이라고 봐야 하겠지요. 아이의 감정보다 부모의 생각이 강하면 당연히 아이의 자존감은 떨어집니다. 부모가 자신의 생각도 중요하지만 아이의 감정을 얼마나 존중하느냐가 바로 아이의 자존감이 됩니다. 자존감이 떨어진 아이는 더욱 부모의 생각에 지배를 받기 마련이고 그 결과 다시 자존감에 손상을 입은 아이는 부모의 생각에 의존하는 악순환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의 감정보다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는 부모들이 보통 초반에는 기세등등합니다. 하지만 아이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갖기 시작하는 사춘기를 거치면서 기세등등했던 부모들은 풀이 죽은 표정을 하게 되지요. 자신의 감정을 무시했던 아이들의 반격이 시작되면 정말 난감한 처지가 됩니다.
■ 해설 2 : 아이의 마음을 무조건 수용하면 아이의 성장은 멈춥니다.
아이의 마음을 최대한 존중하는 경우는 어떨까요? 역시 당장 갈등할 이유는 없겠지만 심각한 부작용을 걱정해야 합니다. 아이의 감정은 아직 사회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본능에 보다 충실하기 십상입니다. 가끔 아이들이 보이는 충동적인 행동은 감정적 미성숙 상태에서 보이는 자연스러운 모습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성장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고 그에 대한 반응을 학습하면서 인격적인 면모를 하나하나 쌓아갑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아이의 감정에 대한 피드백인데 친절하고 자세한 피드백이 매우 중요합니다. 시끄럽게 떠들지 말라는 주의나 경고보다는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피해를 주는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면 훨씬 효과적입니다. 사람은 애나 어른이나 모두 자신이 주변으로부터 형편없는 존재로 인식 되는 걸 결코 원치 않습니다. 아이의 감정을 무시하는 것이 아이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이고 한다면, 아이의 감정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 또한 아이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직 인격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아이들의 감정 표현에 대해 짜증을 내지 않고 진지하게 피드백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아이의 감정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하지만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절제되지 않은 아이의 감정이 그대로 표출될 경우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 하나하나 친절하고 자세하게, 거부감 없이 피드백해준 부모 밑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정말 다르더군요. 자신의 감정 조절은 물론 다른 사람의 감정도 존중하는 훌륭한 인격체를 만나게 됩니다.
■ 해설 3 : 아이의 마음을 존중하면서 부모의 생각을 전달하는 방법
우리나라 부모들은 대부분 아이에게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전달하는 데 매우 서툰 편입니다. 이제는 근본적인 이유를 살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현실에서 부모 구실에 고전하고 있는 부모들은 대다수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알아차리지 못한다. 의도적으로 아이의 인격을 무시하거나 자존감을 망가뜨리려는 부모는 없다는 얘기다. 주범은 동양의 전통적인 가부장제 문화에 있다. 가부장제 문화가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인격을 무시하는 언행을 거리낌 없이 하게 만들었다. 현재의 기성세대들은 부모에게서 존중은커녕 심한 모욕과 폭력에 시달리며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지극히 자연스러운 자녀교육의 방식으로 알고 있다. 가부장제 문화를 내면화한 셈이다.’(한겨레 신문, 박재원의 공감학습 6회차, 2012년 10월 29일)
최근 유행하는 감정 코칭이나 대화법 교육을 통해 많은 부모들이 도전하고 있지만 대부분 아이들과의 대화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가 수평적인 서양문화와는 달리 우리는 특히 부모와 아이 사이를 수직적으로 바라봅니다. 상호 존중하는 문화에서 탄생한 부모역할 이론이 수직적인 문화에서 힘을 잃게 됩니다. 정말 열심히 이론을 공부하고 실습도 게을리 하지 않았지만 아이를 대할 때마다 치미는 화라는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지 못해 도루아미타불이 되지요. 부모 역할 교육을 받고 대화법을 연습해 잘 참다가 한 번에 무너졌다는 하소연을 들으면 정말 안타깝습니다. 한국 부모들에게 유난히 강한 '화'라는 감정, 아이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표출했던 사회적 습관을 만만히 본 결과라고나 할까요. 화를 참거나 아이 이야기를 경청하기 위해 노력하기 전에 부모로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야 합니다. 가장 쉽고 효과도 탁월한 방법은 바로 메모를 통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아이와 마주하는 장면에서 순식간에 일어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조절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부모와 아이 모두,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옮겨 전하는 방법을 활용하면 그 효과는 정말 탁월합니다. 소모적인 감정 충동을 예방할 수 있으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폭과 깊이를 더해 서로 흔쾌히 합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넓혀 줍니다. 특히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별다른 거리낌 없이 던지던 부모가 메모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게 되면 아이 입장에서는 정말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되기 때문에 부모를 적극적으로 이해하려는 의욕을 갖게 한다는 점에 주목하기 바랍니다.
아이의 성장과 부모의 역할
종종 상담을 하다보면 아이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우선 부모의 생각이 강한 경우에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 눈치를 보느라 자기 할 일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모범생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눈치 밥을 먹고 있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반대로 아이의 마음을 대부분 부모가 수용하는 경우에 아이들은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떼를 쓰고 있습니다. 부모로서 아이를 위해 애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사실은 충동적인 인격을 조장하는 것으로 봐야 옳습니다.
아이의 마음속에 부모에 대한 고마움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경우도 드물지만 있습니다. 자신의 어린 마음에 성숙한 부모의 생각이 더해져 결국 자신에게 도움이 된 경험을 하다보면 당연히 자신을 도와준 부모를 고맙게 생각합니다. 아이의 마음을 존중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아이가 쉽게 수용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데 능숙한 부모들을 보면 정말 행복합니다. 아이 마음과 부모 생각이 어긋날 때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화학적인 융합을 통해 아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됩니다. 재미없는 학습지보다는 재미있는 놀이를 좋아하는 아이의 마음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하지만 뭔가 꾸준히 하는 습관도 소중하다는 부모의 생각을 아이에게 어떻게 잘 전달할 것인가, 이런 고민을 하다보면 분명 부모도 아이도 모두 행복하게 성공할 것입니다.
아이의 마음을 부모가 존중하는 만큼 부모의 생각이 아이의 마음속에 잘 스며들게 되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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