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제1 대학이 제일 좋은가 보죠?
미니대학 1강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 홍세화 선생님이 맡아주셨습니다. PPT 없이 진지한 내용에 칠판을 이용한 맨손 수업이었지만, 강의안 하나 없이 가슴 속에 있는 뜨거움과 교육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며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시고, 결정적 순간에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유머를 구사하시며 명강사의 반열에 오르셨습니다. 현장 강의를 스케치해 드립니다.
6월 16일 ‘미니대학’에서 처음 뵌 홍세화 선생님은, 책이나 신문 지면에서 보았던 사진에서의 날카로운 인상과는 달리 실제로는 다정하고 유머러스한 느낌이었습니다. “공부 잘하는 애랑 못하는 애의 차이는 시험치고 나서 까먹느냐, 시험 치기 전에 까먹느냐의 차이다” 등의 촌철살인 유머들을 구사하면서 강의의 몰입도를 높이셨지요.
그렇게 해서 시작된 제 1강. 선생님은 자신은 학벌 중심 대학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 문제를 풀어내는 방법으로, 자신이 70년대 살았던 “평준화된 프랑스 대학”을 모델로 제시했습니다. 대학들이 평준화되어 대학 입학을 위한 입시 경쟁이 우리만큼 치열하지 않고, 또 대학들은 파리 1대학부터 13대학까지 같은 이름으로 대학체제가 구성되어 있으므로 학벌에 대한 차별이 있을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파리 1-13대학을 이야기하면, 제일 좋은 대학이 파리 1대학이냐, 그렇게 묻는다고 말한다고 하면서(^^), 숫자는 랭킹과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홍세화 선생님은 70년대 파리로 가서 한국 기업 프랑스 주재 직원으로 머물다가 국내 정치적 상황에 연루되어 파리에 머물렀고, 그래서 아이들 두명을 모두 프랑스 고등학교, 대학을 다니게 했다고 밝혔습니다. 아이들을 그곳에서 길러보면서 홍 선생님은, 프랑스 교육이 우리 교육과는 너무도 다르다는 것에 놀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아이들이 대학 입시 경쟁 고통이 없다 보니, 대학을 입학할 때까지는 입시를 위해서 고3일지라도 밤늦도록 공부하는 법이 없고, 실제 당신 자녀들의 경우에도 고3때까지 자신이 읽고픈 책을 읽고, 밤 11시에 자서 아침 8시에 일어나는 생활 패턴을 유지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큰 아이가 어느 날 독서 때문에 새벽 2시에 잠을 자서 학교에서 약간 졸았는데, 선생님이 가정에 통신문을 보내, 아이를 무리하게 11시 이후에까지 잠을 재우면 안된다고 경고를 했다는 일화도 소개했습니다. 그분이 보기에 프랑스의 교육철학은, 초중등 교육까지는 학생들의 기본기와 기초체력을 중시하되, 대학 단계에 들어가서 제대로 된 경쟁을 시켜야하고, 제대로 된 경쟁을 위해서라도 초중고 시절의 기초체력은 중요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것이지요.
특히, 학생들이 이렇게 대학입시 경쟁으로 인한 고통이 없는 것은, 기본적으로 대학을 들어가는데 그랑제꼴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대학이 평준화되어 있어서, 고등학교 졸업고사 바깔로레아에서 어느 정도 성적을 받으면, 대학 진학 기회를 얻을 수 있고 그래서 무한 경쟁에 몰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홍세화 선생님은 그렇다고 해서, 프랑스의 평준화된 대학들이 ‘교육 경쟁력’이 없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일단 대학에 들어가면, 학생들은 정말 피나게 공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즉, 프랑스 사회에서는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 즉 학벌보다는, 대학 생활을 몇 년 했느냐(즉, 어느 대학을 나왔니?가 아니라 대학에서 몇 년 공부했니?)가 중요하다고 지적하며, 상급학년으로 자동적으로 진급되는 것이 아니라, 진급 숫자 상한선을 제한하여 일정한 성적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들은 대학을 떠나게 한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렇게 진급 상한선이 정해져 있으니, 아이들은 피말리게 공부할 수 밖에 없고, 고교 때까지 기본기가 탄탄한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 경쟁을 하니, 그렇게 해서 공부한 아이들의 교육 경쟁력은 당연히 매우 높은 수준임을 절감했다고 말했습니다.
프랑스대학의 평준화 정책을 이야기하면 많은 분들이 그래도 그 사회에 평준화 대학 체제 위에 ‘그랑제꼴’이라는 학교 체제(고급 인적 자원을 관리 및 양성 체제)가 별도로 있지 않느냐라고 비판한다고 언급하면서, 그 나라의 경우 그랑제꼴의 경우 프랑스 모든 기관들이 그렇듯이 철저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의해 특권층화되는 것을 막는 장치가 있다는 것을 아울러 언급했습니다. 즉, 그랑제꼴의 경우 국가에 필요한 고등 인재를 길러내는 기관이고 졸업 후 국가 중요한 공직을 점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곳을 졸업해도 대학 졸업장을 주지 않음으로 ‘정치 권력’과 ‘학문 권력’을 모두 제공하지 않고, 그렇게 해서 균형을 유지하려고 애를 쓴다는 것입니다. 그랑제꼴은 말하자면, 평준화된 대학 체제 속에 일부 떠있는 섬과 같은 존재라는 것이지요. 그 위에서 군림하는 체제가 아니라 말입니다.
홍세화 선생님은 강의를 통해서 서열화된 대학체제의 문제 중 가장 심각한 부작용으로, ‘인문사회과학의 왜곡’의 문제를 특히 강조했습니다. 즉, 대학들이 날카롭게 서열화될 경우, 그 서열을 유지하기 위해 학생들을 일등부터 꼴찌까지 줄을 세우도록 요구하고, 따라서 교과 성적도 날카로운 변별력을 필요로 하기 마련인데, 아이들에게 가르칠 인문 사회 지식은 생각과 논리의 치밀함과 타당성을 요구할 뿐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학문이기에, 서열화된 대학의 변별력 요구에 학문(교과)이 봉사하는 순간 그 본연의 가치를 상실하고 타락한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경우, 교과 내용의 객관적 사실에 대한 암기는 비판 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고, 국가에서 습득해야할 내용을 이미 결정해서 그것을 외울 것을 요청하기 때문에, 비판적 생각, 뒤집어서 생각하는 것 등을 할 수 없고, 그런 학습 태도를 갖게 될 경우 좋은 성취도 점수를 얻을 수 없고, 결국 우리 학생들의 수동적인 학습 습관은 사람을 주체로 키워내지 않고, 주어진 사실을 암기하고 받아들이는 존재, 수동적 존재로 키워내며, 결국 학생들이 세상의 현실에 대해서 비판적 안목으로 보지 못하도록 하고 사회의 차별과 불합리한 요소에 대해서 눈을 뜨지 못하고 침묵하게 만드는 문제를 가져온다고 지적했습니다.
홍 선생님은 이렇게 강의를 하시면서, 우리 부모들이 아이들을 그런 맹목적 암기 교육이 아니라 세상이 돌아가는 구조에 대해서 깨어있게 만들며, 현실을 현실 그대로 보게 하는 그런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즉, 이미 사회가 기존 교육을 통해서 가르치고 ‘의식화’ 시켜온 수동적이고 비주체적인 개인을 양산하는 흐름을 꺾고, 그런 ‘의식화’에서 눈을 뜨고 자기 스스로 주체가 되는 ‘탈의식화’의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특히 선생님은 이렇게 비판적 사고를 위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독서능력과 글쓰기 능력이나, 그런 독서와 글쓰기 능력은 지금 우리 나라 대학입시제 중 입학사정관제 등에서 강조하는 독서, 글쓰기 능력과는 다름을 지적했습니다. 즉, 입시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글쓰기가 아니라, 세상을 알아가는 데 필요한 눈뜸, 자신의 주체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자기다움의 각성 차원에서 글쓰기와 독서 능력이 필요하고, 이것을 교사들과 대학들이 프랑스는 인정해 준다는 것입니다.(프랑스 교실에서 예를 들어 사형제 폐지에 대해서 글을 쓰거나 토론을 하더라도, 교사의 입장과 학생이 쓴 글의 입장이 달라도, 그 글의 논리성과 타당성이 확보되면 좋은 성적을 얻고, 같은 입장이라도 비논리적이면 낮은 점수를 받는다고 말하며, 그런 자기 관점과 판단이 교육의 중요한 핵심이라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우리 속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랭킹 의식, 세상의 모든 것을 순위를 매겨야 속이 시원하고, 랭킹 속에 행복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우리에게는 도무지 낯선 이야기였지만, 그래서 선진국이구나,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경쟁력을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성적과 랭킹이 아니면 사람의 행복, 직업을 통한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한 우리에게, 프랑스 사회는 정말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목요일 2강 강의(6월 23일, 7시)는 조기숙 교수님의 “한국대학이 베끼지 못한 미국대학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주제로 시작됩니다. 조기숙 교수님은 우리 사회가 고등교육 모델로 벤치마킹하고 있는 미국을 예로 들면서, 교육제도에서 모방하지 않은 중요한 가치를 한국대학이 회복해야한다는 것을 이번 강의에서 강조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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