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업체들의 인터넷 주주 게시판에 들어가 보라. 정부 정책으로 말미암아 사교육이 늘어날 것이라 기대될 때마다, 주가 상승을 기대하는 투자자들의 설렘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물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들의 기대는 한껏 높아진 상태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정부도 이들의 기대에 기꺼이(?) 부응하고 있다.
그래도 지금까지 주식시장에 진출한 교육업체들은 대체로 출판이나 학습지, 온라인 강의 등을 핵심 업종으로 삼았고, 일반적인 오프라인 학원업에 주력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오프라인 학원업체들이 거액의 자본을 유치하여 몸집을 불리고선 ‘우리 한번 코스닥 가 보자!’고 외친다. 작년에는 무려 600억원의 외국계 자본을 끌어들인 사례도 있었다. 대치동의 잘나가는 학원치고 인수·합병 제안을 받지 않은 경우가 없을 정도다.
이들의 주된 사업 영역은 전통적인 대입 시장이 아니다. 대입 시장은 이미 거의 포화돼 더 규모가 늘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들의 주무대는 특목고·자사고 입시와 영어시장이다. 이들은 하루빨리 이명박 대통령의 ‘자사고 100개’ 공약이 가시화되고, 경기도 교육감이 발표한 특목고 증설 계획이 실현되기를 바란다. 과학고 정원을 갑절로 늘린다니, 박수를 칠 일이다. ‘아륀지’, ‘영어 몰입교육’ 파동이 몇 번 반복되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제 이들은 인터넷 강의와 출판에서도 매출이 발생하도록 적당히 사업 포트폴리오를 꾸민 뒤 코스닥 진입을 시도할 것이다. 이들이 주식시장으로 진입하는 순간, 이 업체들의 주식을 매수한 투자자들은 이들과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지게 된다. 주주들로서는 학원에 불리한 정책에 반대하고 유리한 정책에 찬성할 게 당연하다.
여기까지만 해도 심기가 편찮은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끼워넣으면 얘기는 ‘괴담’ 수준으로 격상된다. 어떤 미국 자본이 한국의 사교육 업체에 투자했다고 해 보자. 그런데 한국 정부가 갑자기 사교육을 축소하고자 특단의 대책을 내어 시행했고, 그래서 그 미국 자본이 상당한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면? 만약 당신이 그 자본주라면, 당신은 틀림없이 자유무역협정에 보장된 ‘투자자 국가 제소제’를 활용하려 할 것이다. 한국 정부의 정책이 당신에게 손해를 입혔으므로 당신은 한국 정부를 제소하여 배상을 받아낼 수 있는 것이다. 충분히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어이없는 일이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면 우리 정부가 사교육을 위축시키는 적극적 규제책을 펴는 데 상당한 제약이 따른다.
우리나라의 사교육비 비중은 세계 최고다. 사교육이 이처럼 팽창해 온 데는 한편으로는 대학 서열화와 성적순 학생 선발이, 다른 한편으로는 학생 개개인을 돌보지 않는 무책임한 학교교육이 큰 몫을 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어렵더라도 학교체제와 선발방식을 개선함으로써 사교육을 제어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한국의 사교육업체들은 주식시장 진출을 통하여 일반 주식투자자들을, 그리고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계기로 미국 자본을 자기 편으로 만들 참이다. 이미 교사 수와 맞먹는 학원 종사자들이 학원업에 이해관계를 걸고 있다. 여기에 더해 주식투자자들과 미국 자본이 이들의 우군으로 편입된다면? 드디어 사교육이 한국 사회라는 숙주에 ‘기생’하던 시절을 청산하고, 숙주와 완전히 일체화하는 데 성공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적어도 광우병 쇠고기만큼 무서운 일이다.
이범 곰TV 강사